2011. 4. 1.쇠날. 맑음

조회 수 988 추천 수 0 2011.04.13 17:20:54

 

서울서 커다란 상자가 보내져왔습니다.

몇 해 이곳에 아이가 오간 인연입니다.

최근 그 아이를 위해 마음 쓴 일이 있는데,

마음 쓰는 일이 젤 쉬운 걸,

그걸 또 고마움으로 새기고 인사를 한 것이지요.

그 인사가 또 고마우니

더욱 마음을 내자 싶습디다.

산골서 귀한 건해산물이 잔뜩 들어있었습니다.

김수진님, 고맙습니다.

 

나무 정리하기 여러 날입니다.

어디서 그 나무들이 다 나왔던가요.

날마다 보고 살아도 어느 날 작정하고 보면

그렇게 다른 풍경이 앞에 펼치지는 겁니다.

간장집 뒤란 처마 아래로

자른 나무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답니다.

 

고등학교 은사님 한분 뵙고 왔습니다.

머잖은 곳으로 부임을 하셨지요.

긴 세월이 그 사이 있어선지

선생님은 꼭 공대를 하십니다.

점심을 먹었지요.

이 시대 양극화에 대해 누군들 한숨 겹지 않을까요.

제자들의 삶이 극명하게 갈리는 걸 보며

자주 마음 아리신 듯했습니다.

이제 두어 해면 정년이시던가요.

아이를 위해 줄넘기며 배드민턴이며

몇 가지 운동기구를 챙겨주셨습니다.

제게 선생님이셨던 당신은

이제 아이에게 할아버지이시고 계십니다.

 

이웃 유기농장 광평에서 한 살림을 챙겨왔습니다.

대파를 마저 다 뽑아왔고,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은 사과를 실어왔으며,

즙과 막 담은 고추장과 포도주를 두 병 나눠왔습니다.

“좀 쉬다 하셔요.”

오래된 나무를 패내고 있던 사과밭에서

지난 몇 달의 일을 바람결처럼 흘렸습니다.

하소연을 하며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으나

처지와 속을 헤아려주셨고, 위로해주셨고, 그리고 힘 주셨습니다.

다녀와 가져온 고추장을 씨앗으로

고춧가루를 좀 더 버무려 양을 불렸지요.

지난 해 콩금이 너무 높아 메주 쑬 엄두를 내지 않았고,

고추장 또한 담지 않은 데다 그만 빗물이 들어가 항아리 하날 버렸더니

남아있던 다른 독이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지요.

낼모레 아이들이 오니 장들도 두루 살피게 됩니다.

사서 먹여도 될 것이나

좋은 미생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걸 멕이고 싶은 게지요.

 

오늘은 끄달리던 일, 삶에 대해 반성문(?) 하나 씁니다.

1. 사람을 잘못 봤다면 자신의 눈을 찔러야 합니다, 내가 잘못 본 것이니.

2. 고마운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솝우화에서 언 뱀을 품다 물려죽은 농부처럼 된다면 어리석은 일이겠습니다.

3. 순하고 선해야 함이 옳습니다. 그러나 화도 필요합니다.

4. 사람 뒤 사람 있는 법입니다. 홀로 안고 가려했으니 자신의 고생이 클 수밖에요.

5. 아이에게 소통법 해결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오래가면, 결국 막무가내인 사람과의 일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아이에게 그렇게 인생에 대한 좌절을 줄 수도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6. 끝끝내 살아가기!

살라고 하는 짓이지 죽자고 하는 짓이 아닐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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