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4.달날. 맑음

조회 수 1056 추천 수 0 2011.04.13 17:22:07

 

쌀을 찧었습니다.

아이들이 옵니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먹는 기세를 생각하면

아무리 안 먹어도 달에 한 가마니는 넘을 겝니다.

아고! 서랍이며, 냉장고도 손이 덜 간 칸이 있고,

또, 또, 빠진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미처 맞이할 준비가 부족한 것은

와 있는 중에도 채워나가면 되리라 변명합니다.

날이 다가오자 기분 좋은 설렘이 봄바람에 다름 아니네요.

 

해가 진 산마을에

개구리 울음 넘치고 있었습니다.

아, 아이들이 오는구나, 환영인사구나 싶었습니다.

덩달아 마음이 달아오릅니다.

 

오전에는 달골을 청소했더랬습니다.

욕실 바닥 배수관도 일일이 떼어내 문질렀습니다.

구석 구석을 그리 하자니 시간 더딜 밖에요.

오후에는 본관을 청소했지요.

이른 아침 못다 빨았던 이불 빨래도 마저 돌립니다.

소사아저씨는 방치되다시피한 우물의 가장자리를

최대한 꼴을 복원했지요.

그가 아든 모르든 사람맞이는 이런 정성입니다.

사는 일이 이런 지성입니다.

 

이번 학기를 여기서 보낼 서울의 한 대안학교에서

어제던가 예산편성을 보내왔습니다.

보며 순간 서운함이 일었습니다.

‘작년에는 50일인데, 올해는 날 수가 그 배인데,

예산 규모를 똑같이 했네.’

아, 그 순간 화들짝 정신이 들었습니다.

내가 계산하고 있구나...

내가 우리 아이들이란 생각을 못하고

저 학교의 아이들이네, 남의 아이들이네 하고 있구나,

정신이 번쩍 든 것입니다.

시간이 더 흐른 뒤 그런 생각 들지 않아 참말 다행이구나,

아이들 오기 전에 그런 제 마음 읽어 다행이구나,

온 마음으로 오직 만나야지,

아, 엎드리고 또 엎드려야 하리, 반성했지요.

 

아이들에게 불편을 줄여주려는 것과

그래도 불편함 속에 느끼는 풍요를 주려는 것은

자주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 적절한 수위를 조절하는 것도

안내자의 큰 역할일 겝니다.

때로 불편을 안고 가면서 자기 앞에 놓인 편리함에 감사하기를,

한편 불편 속에 함빡 안겨오는 풍요를 누리기를,

전체 움직임 구조를 여러 차례 그려보며

거기 필요한 동선도 점검합니다.

아, 아이들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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