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6.물날. 맑음

조회 수 1276 추천 수 0 2011.04.15 01:30:20

 

 

한식.

한식에 찬밥을 먹는 것은 개자추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버드나무로 새로 불을 일으켜 나누느라 아궁이에 불이 없을 때입니다.

모든 사물은 생명을 지니며

생명이란 오래되면 소멸하기에 주기적 갱생이 필요한데,

불 또한 다르지 않다고 오래 쓰던 불을 끄고 새 불을 나누는 날,

이번학기 아이들의 첫 해건지기가

그런 의미 있는 날 이루어져 마음 새롭기 더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고래방에서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공기를 바꾸고, 다시 바닥을 쓸고 닦고, 깔개를 깔고,

먼저 수행 하며 공간 기운도 바꾸고,

그 위로 노래를 가득 채웁니다.

아이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지요.

그저 아침이 와서 깨어나는 게 아니라

그 아침도 의지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아침을 외려 흔들어 깨우기,

그래서 이곳에서의 아침수행을 ‘해건지기’라 부릅니다.

평생을 지니고 가는 몸입니다.

일평생 우리의 생각을 짊어지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잘 먹어야 하고 잘 단련해야 합니다.

왜 수련하는가, 말이 필요 없는 것이지요.

몸만 그러한가, 마음도 그러합니다.

마음의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살얼음이던가요.

그러하니 다지고 또 다져야할 테지요.

그리하여 마음이 튼튼할 수 있다면 만나는 어려움들 훌쩍 뛰어넘을 힘이 있을 것이고,

명상은 그 마음을 강건케 하는 좋은 방법이지요.

그런데, 먼 길 와 늦게까지 자지 못한 아이들,

곤하니 더욱 심드렁한 해건지기가 되고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일, 길은 두 개다; 사느냐, 죽느냐.

 살자고 하니 잘 살아야지,

 지극하게 애쓰며 열심히.

 이런 순간들이 모여 내 생을 이루지.

 실력도 그런 거,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쌓이고 쌓여 실력이 되지.

 그러다 자신을 위해, 또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동작 하나 하나 애쓰자.’

 그렇게 권했더랍니다.

 

이번 주는 밥바라지를 제가 하마 합니다,

사람들이 두루 정리하며 몸이 이곳에 익을 동안.

며칠 뒤엔 서넛씩 밥바라지 모둠을 정해 움직이되

17일까지, 모두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제가 밥공양을 마저 이어가마도 했지요.

하지만 해건지기를 제가 진행하니

다른 샘들께 아침은 준비해 주십사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밥상을 준비하면

아무래도 어른만큼 알차게 하긴 어렵지 않을까,

그러하니 아이들 좀 실하게 먹는 밥상을

주에 한차례는 준비해주자 싶었습니다.

더하여, 아이들이고 샘들이고 해날 하루는 부엌을 벗어나라고

해날마다 제가 종일 ‘해날큰밥상’을 준비하려지요.

밥바라지의 윤곽은 그리 그려집니다.

 

오전 활동 시작 전 잠시 나누고픈 이야기 있었습니다.

달골 햇발동의 곱등이로 간밤 아주 난리였지요.

최근 1년여 인터넷에 떠도는 무수한 오해들로

아이들의 곱등이에 대한 적대감은 광기에 가깝습니다.

정말 그런 존재일까,

벌레에 대해 인간의 오해는 얼마나  깊던가,

특히 살충제회사로부터 만들어진 오해는 얼마나 많던가요.

좋은 얘깃거리가 생긴 셈입니다.

“여러분들은 ‘생태’를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아이들도 샘들도 저마다 대답을 합니다.

다 맞는 말일 겝니다.

“생태란 것, 작고 여린 것들을 두루 헤아리고 살피는 거 아닐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곱등이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왜 곱등이인가,

얼마나 사는가,

청각기관이 없고 모든 감각이 퇴화되어 있고,

연가시가 체내에 기생하는 일이 많은 편이나

해를 가하진 않는다,...

질병관리본부의 연구원에 따르면 무해하다 하고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사에 따르면

병 옮기거나 물지 않으며 농산물을 갉아먹지도 않는답니다.

습하고 일조량이 적어지면서 그들의 서식환경이 좋아져

일이년 새 부쩍 많아졌지요.

그 작고 여린 것한테 우리 너무 심한 반응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물었더이다.

싫은 감정이 쉬 사라지기야 할려구요.

하지만 올바른 정보가 생각을 바꾸게 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테지요.

 

오전 활동은 김장김치 꺼내기.

2006년 3월 24일 미국의 건강전문지 헬스가 선정한 세계 5대 건강식품;

한국의 김치, 스페인의 올리브유, 그리스의 요구르트, 인도의 렌틸콩, 일본의 낫토.

아이들도 들어봤다 했습니다.

김치의 영양과 효능에 대해서도 짚지요.

낮은 칼로리, 높은 영양가, 유산균공급, 면역증강,

기타건강기능(섬유소풍부 소화촉진과 대장암, 동맥경화, 빈혈 등을 예방),

고추 마늘 생강만 해도 항암식품이지요.

바로 그 김치를 우리 꺼내러 가자 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먹을 것이고

계자며 겨울에 이르기까지

아이들과 김치부침개며 국밥이며 만두며 고명이며에 갖가지로 쓰일 것입니다.

유기농포도즙을 참으로 내니 맛나다고 아주 난리였지요.

 

점심.

호박죽을 전채로 먹었습니다.

냉동실로 김치를 들이며 자리를 차지하던 것들을 꺼냈지요.

껍질 벗겨 다듬어놓은 늙은 호박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팥을 삶아 넣고 찹쌀가루를 끼얹었지요.

마을 할머니들 댁도 서너 집 나누었습니다.

다운이와 하다를 보냈지요.

아이들이 음식을 들고 나누러가는 풍경,

마음 퍽 푹했습니다.

 

오후는 쉬엄쉬엄 저마다 보냈지요.

아이들은 희영샘을 따라 쑥을 캐러도 가고

책방에서 마당에서 읽고 뛰었습니다.

새참으로 은행을 구워주었네요.

캐온 쑥으로 저녁엔 쑥국을 끓였습니다,

콩가루 묻혀.

“물꼬엔 없는 게 없다니까요.”

맞습니다.

왜냐면 없으면 안 넣으면 되니까요.

그러니 다 있는 게지요.

후식으로는 유기농사과를 잘 먹었답니다.

 

한데모임.

하루를 돌아보며 닫는 시간입니다.

물꼬가 들려주고픈 이야기 있었지요.

1. 하다보면 그 일이 주는 재미가 있다.

    재미는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찾는 것이기도 하다.

2. 정리하는 건 책임지는 것.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던 것도 책임지지 않은 개인의 불성실이 빚어낸 결과.

    환경이 이 지경이 된 것도, 정치가 저 지경이 된 것도

    누구도 책임지려 들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

    책방에 가서 책을 읽는다면 꽂아야지,

    피아노를 쳤으면 덮개를 덮고 뚜껑을 닫고 의자를 정리해야지.

    자잘한 일상의 정성과 습이 결국 자기 생을 뜻한 바대로 이룰 수 있게 한다.

3. 놀아야 한다. 잘 노는 것 중요하다. 행복은 중요하다.

    사는 게 힘들어 자살하러 20층 옥상에 올라가서도

    행복한 경험이 뛰어내리지 않고 뒤돌아 다시 계단을 내려오게 한다.

 

달골의 밤은 곱등이를 잡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전히 적대적이지만 당장 조금씩 가까울 수 있을 겝니다.

“여기요!”

“아, 여기도 좀 잡아주세요.”

곱등이, 그 작은 게 무슨 힘이 있다고

우리가 그토록 거칠게 그들을 내몰겠는지요.

생태가 무엇이더란 말입니까.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요.

내일은 더, 모레는 더욱 더,

금새 친해지기까지 할 수는 없을 지라도

‘사이’에 변화가 생길 겝니다.

 

작년 녹동에서 이동학교를 진행했던 희영샘의 움직임이

아이들 자리를 잡는데 도움이 큽니다.

처음 진행하는 준환샘과 희진샘한테도 보탬일 테지요.

어제도 아이들 가져온 반찬을 정리하는데

척척척척 어찌나 손이 빠르고 몸을 아끼지 않던지요.

젊은 친구가 기특하고, 고맙고, 배울 게 많았습니다.

이번 주말엔 돌아간다는데,

더 오래 머물러주었음 싶데요.

오랜만에 벗이 찾아와 함께 보내는 듯하여

맘도 푹했답니다.

그런데,

어제 반찬들을 정리하며 돌아갈 때까지 다른 반찬 안 해도 되겠다고들 했는데,

겨우 하루 지났건만 푹 굴었습니다.

사람입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주를 가면 오래가는 걸 걸요.

 

물꼬 쪽 움직임이 대략 그려집니다.

들나물산나물 채취수업이 주에 두어 차례,

그리고 요리수업도 해주십사 부탁하네요.

나물 캐서 그걸로 요리로 이으면 될 겝니다.

놀이수업도 하심 어떻겠냐는데, 그건 좀 미룹니다,

여러 샘들 계시니.

바느질수업도 해주면 좋겠다 하는데,

그때 이곳에서 필요한 것 만든다 생각하면 되니

어려울 것 없지요.

지역 어르신 초청특강이 주에 한 차례 있을 것이고,

미국인 영어샘과 풍물샘과 한국화샘이

주에 한 차례 들어오실 것입니다.

당연히 농사야 기본이구요.

아이들의 안전하고 즐거운 자전거여행을 위해

수십 년 자전거동호회를 이끌고 계신 인천의 이소희 선배님께도

한번 다녀가십사 오늘 전화 넣었습니다. 

 

하루종일 깔깔대다

문득 부모님들은 이 아이들 보내놓고 적막을 느끼실지도 모를 일이다, 싶데요.

여기 참말 유쾌한 대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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