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7.나무날. 비

조회 수 1258 추천 수 0 2011.04.18 04:40:38

 

 

 

비.

일본 원전사고로 방사능비가 걱정된다는 여러 어른들의 연락이 있었고,

다른 때라면 맞아도 될 만한 잔비였으나

신신당부를 들은 아이들은 우산을 쓰고 다녔습니다..

활동은 가능한 한 안에서였지요.

 

오늘 해건지기에서 ‘아침에 드리는 말씀’은 이러하였습니다.

‘수행도 일도 흔쾌하게 받아들이자,

작은 일도 정성스럽게 하자,

정성껏이 쌓여 실력이 되고 힘이 되고

공부도 그 무엇도 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하려는 것에 이를 수 있더라.’

오늘 아침은 다형이가 곧잘 동작을 잘 따라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선재가 젤 눈에 띄게 그러하더니.

흔쾌하게 하자, 긍정적으로 받자,

그 말이 닿았던 걸까요?

 

비 오면 산골마을이 한산하지요.

게다 이번 주는 설렁설렁 보내며 이곳에 익기가 가장 큰 목표입니다.

아이들은 오전을 뒹굴거리며 보냅니다.

윷놀이, 독침놀이, 손가락접기, 돈까스, 손병호게임...

갖가지 놀이들이 등장하고

더러는 수행방 이불 위에서 뒹굴기도 하였지요.

 

점심은 냉면입니다.

어제 김장독에서 꺼낸 김치를 넣으며

냉동실을 정리하다 나온 것이었지요.

물냉에 비빔냉에 열무냉면도 차렸습니다.

“와, 얼음도 있어!”

얼음도 둥둥 띄우고 말이지요.

선재와 강유(강유진을 김유진과 구별하기 위해)가

양파 가는 것을 도왔습니다.

야채통에 있던 피망도 갈던 강유는

선재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하였네요.

김치부침개를 곁들였고,

후식으로 얼려두었던 곶감을 먹었습니다.

역시 냉동실을 정리하다 나온 것으로

지난 가을 아이들이 따고 깎고 그리고 걸었던 곶감이랍니다.

 

“판소리 한번 해요!”

희영샘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고,

판소리하러 모여 들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물꼬가 전하는 이야기를 슬쩍 합니다.

오늘은 사람 둘 이야기를 전합니다.

첫 번째는 사람의 도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소사아저씨가 교무실에 연탄을 들이며

문을 열어놓고 하면 수월하였으련만

굳이 문을 열고 닫고를 반복하고 있었지요.

안에서 일하던 사람이 추울까 하는 배려였습니다.

“배운 것 많지 않은 분이시나 어떤 이보다 사람의 도리를 알고 계시니

큰 배움을 지닌 분이십니다.”

두 번째는 겸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준환샘이 어디 저보다 모자라 제게 수업을 하라셨겠는지요?”

겸손하여 선생으로 날 불러주었다,

겸손은 사람에게 첫째로 꼽을 미덕이다,

그런 이야기였더라지요.

김세종제 춘향가의 전 대목을 이야기와 판소리로 짧게 들려주었고,

목을 푸느라 일제강점기 해방을 꿈꾸며 불렀던 ‘돈돌라리’를 배웠으며,

뱃노래 한판 신명나게 불렀지요.

아이들이 내내 흥얼거리고 다녔습니다.

 

이어 포트에 씨앗을 넣었습니다.

빨래방 비닐하우스 아래였지요.

거름 흙을 먼저 넣고,

한 구멍마다 단호박 꽃호박 옥수수 씨앗들을 둘씩 넣었습니다.

“니네 아버지가 모씨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니네 아버지 성함은 OOO지?”

“어, 어떻게 알아요?”

“얼굴에 딱 그리 써 있구먼, 나는 누구 아들하고.”

“샘, 샘, 그러면 저희 아버지 이름은요?”

“음... 좀 더 두고 보자. 지금은 희미하니까.”

곁에서 아이들에게 던지고 있는 제 말을

다른 샘들은 들으며 “이미 신상조사하셨구나.” 했다나요.

뭐 할라구 그런 걸 조사한답니까.

딱 얼굴에 써있더라니까요.

(물꼬 홈피 방문을 하셨더랬답니다, 하하.

 안 그러면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요.)

 

저녁엔 떡국을 먹었습니다.

양이 조금 모자란 듯하여 두부를 총총 잘라 넣었지요.

밥을 먹을 땐 준비한 사람들이 밥안내를 하기로 합니다.

밥상을 차리면서 일어난 일이며

무엇을 어찌 준비했나, 어떻게 먹으라 따위를 들려주는 거지요.

때로 밥이 탔거나 간이 맞지 않거나 하는 일을

미리 변명할 수도 있게 말입니다.

그런 다음 물꼬의 음식게송을 읊고 밥노래를 부르지요.

후식으로 인절미팥죽을 냈습니다.

어제 호박죽에 넣고 남은 팥이 있었던 거지요.

“어떻게 한 거예요?”

“더 없어요?”

“또 해주세요.”

“오야.”

 

오늘 아침부터 아이들이 밥바라지로 붙기 시작했습니다.

두어 주는 샘들이 중심에 서지만

(17일까지 아침은 제가 진행하는 해건지기로 다른 샘들이,

 다른 끼니는 제가 준비하기로 합니다.)

아이들끼리만 하는 시간이 등장할 테지요.

1모둠: 여해 진하 김유진

2모둠: 선재 강유진 승기 해수

3모둠: 가야 하은 다형

4모둠: 다운 준 하다

 

그런데, 저녁밥을 같이 하던 모둠,

같이 일을 하다보면 힘을 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잔뜩 화를 내거나 억지로 하거나 툴툴대거나 하면

같이 하는 사람이 힘이 들지요.

그래도 어른이라면 경우란 걸 알아서

엄청 화가 난 일이 있어도 상대가 불편할까 하여 일단 접어두고

애써 마음을 끌어내며 갈텐데,

아이들은 또 아이들인지라 그게 쉽지 않을 겝니다,

서로 서로 참고 가기도 하련만.

며칠 전 대학교수인 한 선배가 고 3 딸아이 때문에 속상해서

한밤에 전화를 해온 일이 있었습니다.

“고 3 공부하는 게 무슨 유세냐?”

“형, 요새 세상엔 그게 유세야.”

말은 그리했지만, 그게 무슨 유세입니까.

청소 하나 밥 한 끼 하는 게 무에 그리 유세할 일인 건지요.

울 어머니들이 울 아버지들이 살아가며 그리 유세하던가요? 

곁에 있는 사람들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게 어떤 걸까,

흔쾌히 해얄 테지요.

한편 열정이 지나쳐도 함께 하는 이가 힘들 수도 있을 테고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더뎌도 그럴 수 있을 겝니다.

지나치지 않으면서 같이 일해보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

아이들도 저도 좋은 숙제로 삼았으면 싶은 날이었더랍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한데모임에서 그 마음 전하였지요.

 

준환샘이 눅눅한 날씨에 조금 앓았습니다.

운정샘이 와서 교사가 넷 머물고 있으니

(통합학급 아이가 있어 운정샘이 지원을 오신 게지요.

 흙날까지 있다 희영샘과 같이 서울로 돌아갈 것입니다.)

샘들이 달골에서 좀 쉬라고 오후에 올려보내드렸지요.

야채죽을 끓여 올라갑니다.

아이들도 모과차를 달여 멕였습니다.

이동에 대한 피로일까, 다들 조금씩 찌푸둥해하고 있지요.

방도 온도를 훌 올려놓습니다.

 

해지면 집이 그립다는 승기,

안아줍니다.

해수는 오늘 젊은 할아버지 고맙다 했습니다.

해우소를 갔는데, 하필 화장지가 떨어졌더라는데,

소리 소리 지르니 소사아저씨 나타났더라지요.

해수는 이십년 전 만났던 현석이를 떠올립니다.

저렇게 예쁜 아이가 잘 살 수 없는 세상이라면 싸워야 한다,

그런 생각을 했던 젊은 날이었습니다.

해수의 저 맑음을 지켜줄 수 없는 우리라면, 죄일 것입니다.

꼽등이에 대한 아이들의 변화도 재밌습니다.

끔찍해하던 다형이만 해도

이제 장갑을 끼고 잡아 밖으로 보내고 있었지요.

곱등이 편에서 갑자기 달골에 나타난 사람들을 어찌 보고 있을까를 생각해본

하은이의 곱등이이야기 덕에도 유쾌했습니다.

말을 더 예쁘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주던 하은이가

또 그런 예쁜 모습 지니고 있었지요.

 

희진샘,

곱등이와 개구리에 경악하는 아이들한테 적이 실망감도 생기더라나요.

곱등이 폴짝거리며 우리 몸에 붙고,

개구리가 산길을 오르는 우리 발 앞에서 뛰어오르는 것,

그게 우리를 둘러싼 현상(현실?)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 그게 생태이지요.

생태가 어디 머리인가요? 가슴이고 생활이고 삶입니다.

혹 생태란 것에 대한 접근이 머리였다면

가슴이 되는 것이 이곳에서 우리가 보낼 시간이 될 것입니다.

 

밤, 샘들이 거실에 모여 차 한 잔 마셨습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짚어보는 자리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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