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11.불날. 맑음

조회 수 1249 추천 수 0 2011.04.20 02:26:08

 

 

비가 다녀간 지난밤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짱해진 아침입니다.

오늘은 이웃 유기농가 광평농장에 손 보태러 가는 날입니다.

늘 하는 표현, 하늘이 고마운 산골살이를 넘어, '기적'이지요.

 

동작을 하나씩 보태며 조금씩 길어지는 아침 해건지기입니다.

이 조각들이 모여 전체 아침수행을 엮게 될 것이지요.

밥을 먹고 차 두 대에 나뉘어탔습니다.

아이들이랑 차라는 공간에서 같이 앉아 있으면

가까운, 앉은 거리만큼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지요.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하거나 잘 눈에 들지 않았던 아이들도

기회처럼 들여다보게 됩니다.

정토와 천국을 늘 그리 만나지요.

갈 땐 여자 아이들이, 올 땐 남자 아이들이 저랑 같이 왔습니다.

즐겁게 떠난 긴 여행 같았지요.

 

광평에 닿았더니 영동 한살림생산자 회장이기도 한 조정환샘이

마중을 나와 계셨습니다.

장갑을 하나씩 챙겨 바로 뒤를 따라갔지요.

포도밭에 차광막을 깔았습니다.

“포도나무가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미생물들은 잘 살 수 있게...”

깐 막과 막을 폐전선으로 사이를 묶으며

아이들은 포도밭에서 입으로 포도수확을 열두 번도 더하였지요.

포도를 좋아하는 선재, 강유랑 포도농장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더라나요.

 

점심으로 현옥샘을 도와 갖은 야채로 비빔밥을 내고

된장국과 물김치, 그리고 호두조림을 냈습니다.

“밥값을 하긴 했나 모르겠네요...

와서 밥해줘야지, 참 줘야지, 하루 일 못하고 안내 해야지...”

아이들이 힘이 되었으면 얼마나 되었을라구요.

그래도 늘 그렇게 아이들을 맞아주는 당신들이십니다.

농사스승으로, 좋은 이웃으로, 얼마나 큰 그늘이 되어주시는지요.

헌데, 아이들이 배고픈 가락으로 고추장을 듬뿍 떠서 비볐는데,

이게 또 짜고 매우니 밥을 더 넣고,

그러다보니 생각했던 양보다 밥이 많게 되고,

그만큼 많이 남기게 됐습니다.

죄송했고, 한편 아이들은 밥 양 조절에 대해 가늠해보는 시간 되었네요.

 

점심을 먹는 가운데 병아리가 도착했습니다.

유기양계를 얼마 전 시작하셨지요.

아버지를 따라 유기농을 업으로 하려는 듬직한 막내아드님이 있으십니다.

병아리 1만 5천 마리 입수!

준환샘이 먹던 밥을 밀치고 나가셔서 돕자

아이들도 여럿 따라 나갔습니다.

“다 나갈 필요 없는데... 하다야, 네가 좀 나가.”

현옥샘은 병아리들이 스트레스 받을까 하여

아무래도 예서 주에 한 차례 머슴살이 하던 류옥하다만 가면 좋겠다 하는데,

그래도 조정환샘은 모두에게 경험을 주고파하셨습니다.

그런데, 병아리상자를 들이는 과정에

양계장 주인인 민재씨가 애가 탔단 후문입니다.

병아리가 추울까, 또 이동에 충격이 있을까 하여

서둘러 넣어야 된댔지요.

헌데,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조심스러우니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을 겝니다.

“애들이 되게 말 안 들어...”

민재씨가 슬쩍 그리 한마디 중얼거렸던가 봅디다.

저녁에 마침 이 일로 준환샘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애들 정말 말 안 들어’라고 했던 부분에 대해 생각들을 좀 해보자,

그리 숙제 하나 주셨더랬지요.

 

2시, 지역 어르신 특강, 그 첫 시간이 있었습니다.

2층 방에 모여앉아 60세가 가까운 40년 농사꾼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지요.

포도 4,500평, 사과 2,000평, 텃밭 1,200평, 논 800평,

그 모두를 유기농으로 하는 광평입니다.

그것도 1만평 농사가 올해 좀 준 것이라지요.

“생명은 생명 속에 속해 있다.

땅에서 난 것들 내가 먹으니 땅이 나를 만든다.

대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대자연이 존재해야 인간사도 그리 간다.”

어렵지만 먹는 게 중요하고,

꿋꿋하게 뜻을 세운대로 살아간다셨습니다.

콩 세 알 심어 하늘짐승들 한 알, 땅에 것들 한 알,

그리고 사람이 한 알 먹는다는 계산법도 일러주셨답니다.

졸던 아이들도 어느새 잠을 깼지요.

‘욕심을 버리고 유기농으로 천천히 자연을 사랑하시는 것에 존경이 일었고

자신은 어떤 사람이 될지 생각해봤다‘는 강유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오후엔 사과나무 전정한 가지들을 옮기고,

닭똥도 퍼내 옮기고,

그리고 병아리 실어온 상자와 비료포대를 정리하였습니다.

저는 안에서 농사일에 밀려 미처 하지 못한 집안일들을 도왔는데,

류옥하다가 소형트럭에 아이들을 태워 실어가기도 한 모양이데요.

조정환샘도 트럭과 경운기로 아이들을 태워주기도 하셨구요.

류옥하다는 굴삭기 운전도 시범을 보였다나요.

그때 우리의 준환샘, 역시 지리산 아래서 농사지어본 솜씨로

익숙하게 굴삭기에 올라 한 솜씨 보여주셨더랍니다.

참으로 고구마튀김과 사과즙, 그리고 사과를 냈습니다.

행복해하는 아이들이었다마다요.

 

해지는 저녁, 새경으로 닭똥거름을 얻었습니다.

“트렁크에 몇 부대나 들어가겠어?”

조정환샘, 트럭에다 한가득 닭똥을 싣고 따라나서셨지요.

말이 일을 도우러갔다지 숫제 일만 만들어드렸다니까요.

오는 길에 광평에서 머잖은 곳에 자리 잡은 중국집을 들렀습니다.

아주 멀리서도 사람들이 온다는 맛난 집이지요.

외식입니다; 쟁반자장.

소사아저씨도 버스 타고 나와 합류했지요.

“물꼬에서 해오는 거예요, 사먹는 거예요?”

“물꼬에서 해서 그 집에 배달해 둔 거지.”

농담인줄 알아도 농담인가 다시 곱씹어보는,

여전히 상상과 환상이 공존하기도 하는 순진한 중등새내기들이지요.

자장면을 먹는 저녁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들이었더랍니다.

저들요? 말해 뭣합니까. 오달지게 먹었습니다.

어둑해서야 대해리 들어왔고,

운동장 한켠 거름이 부려졌습니다.

류옥하다가 삽 들고 먼저 올라서데요.

그래도 일 해봤던 놈이라고 좀 낫습니다,

다른 게 많이 부족하더라도.

그래요, 누구나 이게 좀 부족하면 저게 낫고

저게 모자라면 이게 좀 채워지고

그렇게 균형을 잡으며 우리 한 생을 사는 것일 테지요.

 

아이들과 웃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저들을 보고 배가 아프도록 웃고 있으면

어느 순간 빤히 보는 아이들입니다.

“뭐가 그리 재미있으세요? 그냥 평범한 얘긴데...”

사는 일이 고마워집니다.

살만 하다 느낍니다.

세상이 망하지 않고 굴러가는 까닭이 바로 저것들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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