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12.불날. 맑음

조회 수 1143 추천 수 0 2011.04.20 22:57:44

 

 

살얼음이 얼었더라니까요.

오늘은 바람으로 한낮에도 여전히 좀 쌀쌀하였으나,

어제만 해도 낮은 또 한여름이었더랍니다.

아이들이 오돌오돌 떨고 내려왔습니다.

“어, 따뜻하다!”

일찌감치 고래방을 좀 데워놓았더랬지요.

아침 해건지기였습니다.

 

서울은 골목골목이 다 큰 빌딩으로 막히고

초록색 보기가 힘든데, 하늘보기도 힘든데,

여기서는 그냥 고개 들면 산 보이고 하늘 보인다고,

고운이다운이가 그랬습니다

(이곳의 고운 풍경을 누구보다 많이 안는 듯하니 이리 부르기로 했다지요).

준환샘은, 이렇게 좋은 시골 두고 왜 다들 서울서 사나,

그런 생각 든 하루였다지요.

그 좋은 곳에 우리 아이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배운당가요.

그저 예서 먹는 일, 흙 파는 일, 청소하는 일,

그것만 온전히 해도 큰 배움일 테지요.

더하여, 이곳을 채우는 것들과 그저 사이좋고 좋은 기분으로 지내는 일,

그게 모다일 것입니다.

 

오전활동은 들살림이었습니다.

씨감자를 썰고, 재를 묻히고,

밭에 거름을 섞었더랍니다.

내일은 심으려지요.

오후엔 마을구경을 다녔답니다.

대해리 ‘큰마’만 돌아도 시간 짧지 않았고,

웃마을 돌고개 가는 길에 있는 몇 가구, 새마을까지 갔다 돌아왔다지요.

“진달래다!”

가파른 곳에 핀 진달래를 발견했습니다.

그걸 따러 또 기어 올라갔겠지요.

진달래는 곧 먹는 재료로 입에 올려지고

아이들은 돌아와 화전을 만들었답니다.

모양을 어찌나 잘 냈던지요.

두 개를 제 것으로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야아, 그게 축축 늘어져서 쉽잖았을 것인데,

어쩜 그렇게 색깔도 잘 내고...”

“한살림 호떡가루 있던데...”

어쩐지... 그랬던 겝니다.

이제 부엌 곳간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다 아는 아이들이랍니다.

 

아침엔 아이들이 해주는 계란프라이를 기다리며 목들이 빠졌습니다.

그렇다고 모양을 예쁘게 낸 것도 아니었는데,

아이 열셋, 어른 넷, 열일곱 개가 그리 어려웠더란 말이지요.

점심엔 된장국에 김치볶음밥을 먹자 하였다는데,

압력밥솥 안 고무패킹이 빠졌더라나요.

밥이 좀 탔고, 볶음밥까지 하면 시간이 더 더디겠다

그냥 맨밥 먹었답니다.

저녁엔 미나리무침과 진달래화전을 먹었다지요.

먹고 사는 일이 그리 일입니다.

그런데, 뭐 대단한 것들을 한다고

그걸 또 소홀히 한답니까.

너무 과할 것도 아니지만

먹는 일에 정성을 쏟는 것도 사는 일의 큰 부분이다 싶습니다.

아이들이 그 일에 잘 익는 것도

이곳에서의 중요한 공부가 될 것이지요.

 

선씨종가 아당골을 다녀올 일 있어 나갔다가

보은까지 간 걸음이라 법주사에 잠시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절집에 가면 또 절인사를 하지요.

몸을 엎드리면 마음은 더욱 아래로 가서

우주에 깔린 절대적 힘에 그만큼 절대적으로 기대게 됩니다.

기도하게 되는 거지요.

7학년 아이들이 지내는 동안, 내내도 그러해얄 테지만,

그저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기를,

많이 웃고 또 웃으라고 바램 담았더랍니다.

돌아오며 읍내에 들러 여러 곳 다녔습니다.

다음 주 두부를 만들려고 콩을 좀 구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는 씨가 말랐고,

가까운 마을도 두세 댓박이면 모를까, 말까진 없다합니다.

읍내에서 어찌 어찌 구했네요.

콩은 10kg을 한 말로 치지 않고

마을마다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후덕한 곳은 9를, 대개는 8을 치지요.

그런데 7kg으로 한 말을 샀습니다.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아이들이랑 어쩌다 해먹는 건데 우리 콩 멕이고 싶었으니,

구해서 그저 고마웠지요.

그런데, 밖에서 애들이 보고팠습니다.

아이 어릴 적, 하룻밤을 자는 것도 아니건만

나가 있으면 아이가 보고 싶고는 하였는데,

딱 그 짝이었지요.

(그런데, 엊그제 3만원이던 소금은 오늘은 4만원이었습니다.

일본의 원전사고 때문이지요.

김장철엔 5만원은 할 게다 합니다.

사재기들을 한다지요.

우리는 그날이 오면 그날에 가서 하리라, 그러네요.)

 

들어오기 전 송남수샘 댁에도 들렀습니다.

물꼬 현판을 만들어주실 분이 글씨를 써서 송샘 편에 보내오셨지요.

고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제게 주시다니...”

글씨를 다 훌륭했지요.

그의 작품이니 그의 뜻대로 하기를 원한다, 답 보냈습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걸치고 다닐 옷도 아니고

그런 데까지 취향 따질 것 없다 싶데요.

그저 돕고자 한 그 마음이면 어떤 글씨라도 이쁘겠다 싶습디다.

그런데, 복숭밭에 약을 치고 계시던 샘을 기다리며

참이라도 마련해야겠다 부엌으로 가 간단한 음식 하나 내드렸는데,

그리 표내지 않으셨으나 마음 좋아하셨습니다.

물꼬에 쓰시는 마음이나 샘을 받드는 마음이나

서로 좋은 마음이 닿는 느낌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크던지요.

 

준환샘이 사오랬다는 핑계를 대고

아이들 단맛 먹고 싶어하겠다 하고 옛날 과자 한 봉지를 사들고 들어갔는데,

누가 보면 이따따따만한 과자집이라도 선물 받았는 줄 알겠는 반응들이었지요.

패를 나눠 그릇을 비운 아이들 속에서

준이가 큰소리로 그랬습니다.

“옥샘, 존경해요. 이거 또 주시면 사랑할 거예요.

다음날 또 주시면, 옥샘 양자로 들어갈 거예요.”

“야, 너 같은 양자 엇따 쓸라고, 그냥 네 집에 있는 게 날 돕는 거야. 하하.”

라고 하면 서운했겠지요?

“우리집 양자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니? 인공지능리모콘이 된다는 거지.”

류옥하다가 그 수준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다형이 그 말을 받습니다.

“저는 옥샘의 인공지능리모콘 될래요.

그래서 맨날맨날 건전지 받아 먹을래요.”

“에이 이눔아, 아주 영혼을 팔아라.”

아이들과 사는 일이 이런 유쾌함이랍니다.

그들을 아주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잠시만이라도 그들에게 눈을 모으면,

아, 저 통통 튀는 즐거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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