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13.물날. 맑음

조회 수 1219 추천 수 0 2011.04.23 20:01:20

 

“옥샘, ‘기꺼이’가 단어가 어떻게 된다구요?”

“willing”

기꺼이 마음을 내서 하자고 자주 아이들을 독려합니다.

며칠 전에 고운이다운이가 스펠을 물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낱말입니다; 기꺼이 ~을 하다

며칠새 아이들 입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되기도 하였지요.

기꺼이 먼저 움직이기,

서로 그리 지내면 함께 사는 일이 또한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멜 하나 받으며 아침을 열었습니다.

‘...

드디어 개나리도 피고

연두빛 새순도 돋았어요.

 

너무 기다려서 더디 온 것 같긴 하지만

오긴 오네요.

 

시간이 흐르면 오긴 와요, 선생님.

그죠?’

함께 이 봄을 간절히 기다리던 벗 같은 후배로부터 온 몇 자였습니다.

어느새 목련 벙글고 분홍빛 앵초가 교문 앞에서 반기고 있습니다.

바람 모진 이 골짝에도 봄 왔습니다!

 

해건지기를 하고 있으면

밖에서 원형톱이 돌거나 장작을 패는 소리가 들립니다.

준환샘입니다.

산골살이를 준환샘이 젤 즐기며 한다 싶습니다,

물론 아이들 열셋을 거느리고 있느라

그 무게의 강도가 만만치는 않을 것이나.

몸을 쓰는 것도 그렇고,

외로운 소사아저씨를 챙기는 마음이며,

보잘 것 없으나 명색이 교장이라고 제게 해주는 예우며,

무슨 일을 하거나 사람이 좋아야지 싶은 생각 더 간절하지요.

오래 같이 살아왔던 이처럼

요새 그를 기대며 지낸다 싶습니다.

서로를 갉아먹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이처럼 격려가 되는 사이도 있지요.

고마울 일입니다.

희진샘도 너무나 애쓰십니다,

모든 일상을 아이들과 다 함께 하기 쉽잖지요,

물꼬에서 내내 해왔던 일이고,

그간 머물던 이들이 가장 어렵고 힘들어했던 부분이기도 했기에

그 만만찮음을 너무나 잘 압니다.

곁에서 보니 때로는 좌절도 하고 성찰하며 씩씩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성미산은 참 좋겠습니다, 이런 샘들과 일하고 있으니,

이런 샘들을 아이들이 보고 자라니.

 

‘들살림 산살림’ 시간입니다.

아이들과 냉이를 캤지요.

키를 낮추면, 그리고 하나를 보기 시작하면

번지듯이 차츰 차츰 많아지는 냉이이지요.

“진짜 마술처럼 막 눈에 보여요.”

선재였습니다.

“그런데요, 옥샘, 민들레랑 자꾸 헷갈려요.”

다온이었지요.

자꾸 보는 수밖에요.

그렇게 낯이 익어지면 구별이 될 테지요.

오전 시간을 크게 두 마당으로 나누고

앞마당은 냉이를 캐는 걸로, 뒷마당은 냉이를 다듬습니다.

중간점검도 하지요.

냉이를 캐며 어땠는가 마음을 살피며 나누고,

다듬은 뒤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일을 하지 않아 짜증이 났지만

내가 하면서 즐겁더라는 깨우침을 얻은 아이도 있었지요.

“다듬는 게 정말 일이었어요.”

나물이란 게 그렇습니다.

그러하니 몇 줌 올려놓고 파는 다듬은 나물을

비싸다 못하는 게지요, 해본 사람은.

 

일은 참 신비합니다.

함께 해보면 같이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이해하게 되고

그를 잘 해석하게 되며

그래서 때로는 뜻밖의 모습을 통해 감탄하기도 하는 반면

아주 실망을 하기도 하지요.

일을 잘 하지 않는 두 친구에 대한 원망을 누누이 들어왔는데,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을 좀 이해도 하게 되고,

일을 않는다는 이들의 태도에 대해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참 훌륭합디다.

같이 움직여보지 않았더라면 잘 몰랐을 일이지요.

그들과 다투지 않고 어떻게든 이해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한번쯤 쏘아붙일 법도 하건만.

타인을 기다려주는 법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싶데요.

아이들은, 늘, 참, 놀랍습니다.

 

점심 밥상에 냉이샐러드며 냉이쑥된장국이 중심에 놓였더랬답니다.,

상을 물린 뒤 닭을 먹여오던 류옥하다가

아이들에게 닭모이 주는 법을 안내하였습니다.

(참, 며칠 전부터는 아침마다 돌아가며 현관통로를 쓸고 닦고 있습니다.

처음 류옥하다가 한 친구를 데리고 방법을 알려주며 함께 하고

다음부터는 그 친구가 다른 친구 하나와 같은 방식으로 알려주는

일종의 사사식 청소였더라니까요.)

닭모이도 이제 돌아가며 주기로 하였지요,

그런데, 오늘은 달걀을 얻어왔습니다, 둥지에서 말입니다.

며칠 되었는데, 몰랐던 겁니다.

아, 일주일만 모아도 모두가 잘 먹겠습니다.

우리는 닭을 좀 더 들일 계획이고,

키워 알도 얻고, 아이들 돌아갈 무렵엔 잘 고아서

긴 자전거여행에 몸을 좀 만들고 갈 수 있잖을까도 생각하지요.

 

점심을 먹은 뒤

산책도 하고, 뒹굴거리기도 하고, 책도 읽고, 자전거도 타고, 공도 차고, 배드민턴도 치며

한낮의 여유를 즐길 적

볕 아래서 다온이는 낮잠도 즐겼네요.

 

오후에는 몸활동이 있었습니다.

춤에 관심이 많은데 마침 물꼬에서 춤명상도 한다하니 궁금했노라,

희진샘이 물꼬에서 하는 명상춤을 한번 보았음 좋겠다 했습니다.

“어차피 몽당계자에서 할 건데...”

(물꼬의 백마흔네 번째 계자인 이번 봄 몽당계자는

이동학교를 와 있는 7학년 아이들과 함께 합니다.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물꼬 행사로 아이들을 밖으로 돌리자니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물꼬가 몽당계자를 아니 할 수도 없고,

그러던 차에 생각해낸 방법이

이 아이들을 데리고 그대로 몽당계자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동학기 시작 직전 그리 하기로 샘들끼리 얘기 되었네요.

경제적으로 조금 아쉽긴 하나(이들로부터 참가비를 받는 건 아니어)

여기서 지낼 아이들이 물꼬를 더 이해하는 자리가 되고

그만큼 또 마음이 배부를 일 된다면

그게 또 좋은 쓰임 아닐지요.

몽당계자 때 밖에서 보는 십여만 원의 장보기는 부담을 해주십사하였답니다.)

그러니 희진샘이 해봤다는 명상춤(물꼬는 춤명상이라 일컫지요)이란 걸

말이 나왔을 때 모두 해보면 어떻겠냐 바람을 자꾸 넣고

시간을 잡은 게 오늘이었답니다.

서로 좋은 영감을 줄 수도 있을 겝니다.

가볍게 몸 털고 힘을 다 빼고 몸을 뉘우는, 조금은 짧고 아쉬웠던 시간이었네요.

하지만 아이들은 아주 좋아했습니다,

덕분에 낮잠을 자서 피로를 잘 풀었다고.

다들 하늘도 있고 산도 둘러친, 너른 이곳에서 지내기 곤했던 모양입니다.

이곳에서의 날들이

아이들이 잃은 야성을 잘 찾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들데요.

 

냉이된장국에 냉이무침을

그리고 두부부침조림과 고등어묵은지 조림을 먹었습니다.

서울서 간고등어를 보내왔지요.

노래를 부르던 다형이한테 언젠가 해주마 약속했는데,

말만하면 모든 게 다 되는 물꼬 되었답니다요.

멸치도 서너 끼 먹자고 한가득 볶아서 내놓았는데,

이 저녁에 다 비웠네요,

멸치가 좀 맛난 것이기는 했지만.

서울서 한 어머니가 생협에서 챙겨 보내주셨던 것인데,

다시 고마웠지요.

저녁 밥상을 준비할 때

선재랑 해수는 내내 쓸 마늘을 다듬고 찧었습니다.

 

“진짜 천사예요.”

김유는 해주는 먹을거리며 두루 챙겨주는 일에

자주 이렇게 꼭 고마움을 전해옵니다.

고맙습니다.

어느 아이라고 그렇지 않을까만

여해의 말에 귀 기울여 들으면 슬며시 꼭 웃음이 번지게 됩니다,

그 아이 웃는 모양새처럼.

“신기해요. 하룻밤 만에 면역력이 생겨 ‘어, 곱등이네’하고...”

곱등이라면 소리부터 지르던 그의 이튿날 반응이었더랬지요.

“지난번에요, 새참으로 민트랑 여샘이 초코파이랑 요구르트 사왔잖아요,

‘번쩍번쩍 빛나는 그것’이...”

사부작사부작 얼마나 말이 재미난지요.

저녁을 먹고 잠깐 다온이가 준비한 놀이로도 잠시 즐거웠습니다.

짝짝이 신발 찾기였는데,

준비해준 성의를 봐서도 마치 놀이에 참여해얄 것 같은 분위기의

다른 아이들을 보는 것이 더한 재미이기도 하였네요.

참 결 고운 아이들입니다.

 

밤, 아이들이 무려 세 시간 가까이 저들끼리 회의가 있었습니다.

지내는 법에 대한 것들이었지요.

같이 사는 일이 이런 건 갑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물 흐르듯 흘러갈 수 있는 문제도,

시간에 기대며 해결할 문제도,

우리 너무 그놈의 말에, 회의에 기대는 건 아닌지...

회의 덜하기, 간단하게 하기를 주장하리라 생각합니다.

 

“내 눈에도 이리 이뿐데 부모님들은 오죽 할까...”

너들이 참말 보고 싶을 거다.”

“아닐 걸요.”

준이랑 다형인 걸요.

그런가요? 하하하...

이 아이들이 예 와서 고마움과 기쁨 크고,

반면 홀로 즐거움을 누리는 것만 같아 저들 부모님들께 미안함도 슬며시 들고...

아, 복된 시간이랍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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