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14.나무날. 맑은

조회 수 1288 추천 수 0 2011.04.25 14:33:29

 

여기저기 꽃망울 툭툭 터집니다.

살구꽃도 복사꽃도 사과꽃도 배꽃도 벚꽃도 앵두꽃도

함빡함빡 벙급니다.

“어!”

처음으로 제 시간 해건지기에 나타난 아이들입니다.

국선도 준비동작과 태극권 기본동작으로 몸수련을 하고

단전행공 한 동작으로 명상에 들었습니다.

“졸린 상태로 눈을 반쯤 뜨며 시작하는데,

항상 다 끝나면 눈이 말짱하게 떠져요.”

여해가 그랬답니다.

 

준환샘은 오늘도 아침부터 도끼질 중입니다.

아이들 속에서보다 그런 일들 속에 있을 때,

마당 아래 밭에 들었을 때,

그의 표정이 더욱 환하다 싶습니다.

오래 지리산 아래서 농사를 지었다 했던가요.

 

오전에 아이들은 밭을 팼고,

점심으로 남새밭에서 겨울을 난 시금치 모두 뽑아와

아이들과 다듬어 시금치된장국도 내고

두부를 데쳐 달래장과 내고 콩나물잡채와 김치부침개를 했습니다.

지고추, 묵은김치, 열무김치들도 올렸지요.

 

오후는 한국화 시간이 있었습니다.

2004년부터 물꼬 바깥샘으로 마음을 내오신,

일흔도 훌쩍 넘은 화가 미죽샘이십니다.

“이번 학기 아이들이 와 있을 건데...”

말 꺼내기 무섭게 “가야지, 가고 말고.” 그러셨더랬지요.

보답이란 것이 그저 밥 한 끼 잘 공양해드리는 것이랍니다.

“날마다 오셨음 좋겠어요.”

아이들은 다른 끼니보다 좀 푸진 밥상에 그리 즐거워합니다.

누가 들으면 애들 못 멕이는 줄 알겠습니다요.

“한국화 좋아요.”

하은이가 그랬고,

준도 그리다보니 차츰 재미가 있다 했습니다.

강유는, 보고 싶은 사람도 생각하고, 서울 생각도, 놀 생각도 했다지요.

그래서 명상에, 사유에 다름 아닌 시간이다마다요.

 

그런데, 작은 소요가 있었습니다.

한국화를 위해서는 상을 늘여놓고 그 위에 부직포를 깔고

파레트로 쓰는 접시를 놓고 붓과 물통도 놓아야 합니다.

“준비하자.”

익히 해왔던 류옥하다가 안내를 하지요.

그런데 다형과 준, 여느 때처럼 반응합니다.

“싫어.”

“안 해.”

나중에 나눈 이야기는 그러하였습니다.

“그땐 정말 하기 싫었어!”

하기 싫을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안 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라면

그럴 때 움직이는 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전할 수도 있고

다감한 목소리로 “나중에는 할게, 지금 같이 못해서 미안해.” 할 수도 있잖을지요.

어쩜 매번 마음내지 않음이 어째 그토록 당당해야 된단 말인가요.

안 할 수 있지만

그 ‘아니 하는 상황과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달라야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녁 한데모임에서 이 부분에 대해 얘기 나누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이 우리 다형의 행동에 긍정적 변화가 온 큰 기점이 되기도 하였네요.)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할 수도 있지요.

움직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승기와 다온이가 무거운 상을 옮기다 승기 쪽으로 쏠리며 떨어져

하마터면 발등을 찍을 뻔(!)하였습니다.

그때 공교롭게도 창으로 안을 들여다보다

제가 막 문을 열던 찰나기도 하였지요.

다형이가 다리를 끄덕거리며 책상에 걸터앉아

바로 그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에도 마냥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승기가 덩치가 좀 작은 축에 들지요.

“다형아, 네가 ‘사람의 마음’이 아니구나.”

“(승기 쪽을 향하며)야, 승기야, 나 때문에, 내가 안 도와줘서 다친 거냐?”

“굳이 작은 승기가 그렇게 해야겠냐? 네가 할 수도 있잖겠느뇨?”

그예 한소리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면 얼른 내려서서 살펴봐주어야지 않을지요.

너무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고 있는 게 아닌지,

저녁 한데모임에서 얘기 한번 나누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저녁은 냉장고 안 남은 반찬들 해치우기였습니다.

국을 끓일 때 불려두었다 남은 미역은 초무침으로 내고,

다듬어두었던 시금치는 데쳐 무침으로 내고

그리고 조금조금씩 남아있던 반찬들을 죄 꺼내었습니다.

거기 계란말이를 더했지요.

후식으로는 포도즙을 마셨습니다.

“하다는 좋겠다, 날마다 이런 포도즙 마시고.”

가야며 아이들이 컵 바닥에 남은 즙을 마시며 쩝쩝거렸지요.

“글쎄, 여기서 사는 일이, 엄청난 청소며 농사일이며 좋기만 하려나...

포도즙 안 먹고 그 일 안 하고 싶진 않을까 몰라...”

 

저녁, 한데모임에서 ‘물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또 있었습니다.

‘이곳은 도시 삶과 다른 흐름이 있다.

어둠이 내리면 일찍 자고, 땅이 깰 때 같이 깨려한다.

자연과 보다 가까운 방식이지.

그것이 전기를 덜 쓰는 것이기도 하고.

산골에 왔으면 산골 삶, 그러니까 여기 삶의 흐름대로 살아보자.’

자는 시간을 좀 더 당겨보고, 일어나는 시간 또한 그래보자 했지요.

한데모임의 틀도 갖출 필요가 있겠다 했습니다.

하려는 얘기들을 좀 정리해서 모일 필요도 있겠고,

진행자가 시간을 좀 구조화할 필요도 있잖겠느냐 했지요.

그리하면 전체 저녁 시간을 좀 당길 수도 있잖을지요.

그러면 밤 시간을 조금 여유 있게

자신의 작업들을 위해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일이 주어질 때 “싫어.”, “안 해.”라는 반응에 대해

이야기가 좀 길기도 한 한데모임이었습니다.

한국화시간의 다형이 일의 연장이기도 하였지요.

“때로 권리가 다른 사람의 권리 혹은 마음을 해칠 수도 있다!”

그런 결론으로 모아졌습니다.

한편, 어른과 아이의 평등에 대한 문제로

마치 성미산과 물꼬의 차이이기라도 한 양 팽팽한 의견들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너 댓 명의 이야기들이었고 나머지는 관조자들이었지만.

‘어른이든 아이든 평등하다. 우리 마을에서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산다.’

‘물론 평등하다. 하지만 서로 존중해야 한다.

지금 이 상태는 아이들의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없다.’

그렇게 대립하듯 날 새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 들어보면 사실 평등에 대해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것의 현현에 대해서 조금 다른 생각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마치 서로 다른 생각인 양 입씨름하는 양을 보며

잘 듣기 잘 말하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디다.

그리고, 빨래를 어떻게 할까에 대한 논의는 내일로 넘겨졌지요.

 

아이들 자전거도 손 보고, 장도 좀 보고,

그리고 지역탐방지에 답사도 하느라

준환샘이 아침 절에 나가 밤에야 돌아왔습니다.

그래서였던 걸까요, 조금의 어수선함이?

어른 하나 빈자리가 그런 건가 싶더이다.

 

지역 어르신 특강으로 낚시도 한번 가려합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한 낚시 하는 벗이 안내를 해주기로 하였습니다.

시간만 잡으라고 오늘 전화가 왔네요.

밤낚시를 나가 달빛 아래서 물소리 바람 소리에 섞여

서로에게 밤 공연도 한판 하리라, 기대에 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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