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16.흙날. 맑음

조회 수 1295 추천 수 0 2011.04.27 01:55:08

 

 

해건지기가 없는 주말이고,

먼지풀풀이 있는 흙날입니다.

간밤 논의하기를 왔다 갔다 덜 하자며

아침 밥상이 더디더라도

일어나 아예 달골 창고동 청소를 하고 내려가기로 하였습니다.

 

“밥부터 먹을까, 아님 학교 청소를 하고 먹을까?”

내려온 아이들은 하던 기세로 마저 청소를 하고 먹는다 합니다.

다 했단 걸

후미지고 구석진 곳들이 되지 않아,

혹은 책상이나 의자의 먼지는 그대로여

다시 하는 일들도 벌어졌지요.

마지막으로 걸레를 빨아 빨랫줄에 너는 것으로,

그리고 청소도구함을 정리하고 닫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강유는 아직 걸레 짜기가 어렵습니다.

물 흥건했지요.

야물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그마해서 힘이 아직 안 붙어 그런 건 아닐까

잘 살펴봅니다.

 

늦은 아침을 그제야 먹습니다.

읍내를 나가기로 하고 청소에 집중하니

밥은 제가 하마 나섰지요.

콩나물국밥입니다.

새우젓과 고춧가루, 그리고 몇 가지 야채와 묵은지를 다져

고명으로 내놨습니다.

“진짜 국밥이다!”

“어, 어떻게 국물이 있어요?”

그동안 아침마다 아이들이 한 국밥이

국물이 졸고 밥 불어 죽에 가까웠더랬거든요.

“사람이 들어오는 걸 보고 밥을 넣어야 돼.

생각했던 양의 절반은 넣어 끓이고

나머지는 곁에 두고 상황 봐가며 하고.”

밥이 저들 문제가 되니 이런 것도 질문의 영역에 있는 게지요.

그런데, 아침까지 걸러 아무래도 평소 양이면 안 되겠다 싶데요.

가죽나물 부침개도 부치고, 토스트와 사과잼도 냈답니다.

“백일 더하고 싶어요. 물꼬 와서 정말 음식 귀한 거 알았어요.”

가야였네요.

 

“(학교에서) 이런 아이들이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하는 갈등, 혹은 일상의 모습을 보며

준환샘이 7학년 아이들과 전 생활을 함께 하며 드는 생각을 그리 꺼내놓았습니다.

그럴 밖에요.

아무리 마을이 잘 둘러쳐있다고는 하나

이 이전엔 아이들을 학교에서 봤을 뿐이지만

이곳에서 우린 모든 일상을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제 모습들이 다 드러나고 있는 거지요.

그렇게 배우는 과정을 겪자고 온 것이기도 하고.

한편, 집을 떠나 거친 삶 터에서 저들은 또 얼마나 힘이 들까요.

이곳에서 보낼 날들이 저들 성장에 어떻게 얹힐지

그리하여 어떤 모습들로 성장할지 기대 큽니다.

 

“버스와 기차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시간에 맞춰야 합니다.”

꼭 읍내를 나가고 싶은 아이들은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아주 서둘러

밥을 여유로이 먹고도 버스 시간이 한참 남았지요.

하루 세 차례 있는 버스입니다.

물론 대해골짝 들머리로 가면

물한계곡에서 읍내를 오가는 다섯 대의 버스를 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마을에서 나가는 버스를 무사히 타겠네요.

포도즙과 기지떡을 싸서 보냅니다.

“목욕탕 들어가서 먹어.”

 

장날은 아니지만 장터며 읍내를 돌아보겠다 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며 시골버스가 어떻게 운영되는가,

이 시대 농촌살림에 대해 준환샘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었고,

장을 돌면서는 재래시장이 어떻게 운영되는가,

결국 기업만 살찌우는 마트가 아니라

지역경제를 위해서도 재래시장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도 나누었지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어요.”

고운이다운이였던가요,

재래시장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물건을 팔고 사더라지요.

거기서 아이들은 씨앗을 사고,

저마다 검정고무신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두부와 콩나물은 꼭 면소재지에서 사오자.”

귀찮아도 그 정도는 해야 사람의 길이려니 싶데요.

가격이 큰 마트랑 거의 차이도 없고.

“콩나물은 상태가 좀 안 좋네.”

물꼬에서 왔다 하니 주인장이

그 많은 걸 그냥 주셨더랍니다.

 

여해의 스스로공부(개인 프로젝트)는 빵과 쿠키 만들기입니다.

오늘 쑥카스테라를 만들었는데,

여기 있는 오븐에 익숙하지도 않고

요리법도 조금 변형시켜놓으니

기대한 대로 되지 않고 좀 탔습니다.

“...실패를 통해 ‘알게’ 되잖아. 우리한텐 날이 많아.

해보는 거야, 그리고 얻는 거지.”

다들 읍내 다녀와 곤하겠다고 저녁도 제가 한다 앞치마를 맸습니다.

기분이 나아진 여해가 저녁 밥상을 준비하는 불가로 다가와

내내 재잘거렸더라지요.

 

밤, 더그매에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My name is Khan>

지난 9월 영동생명평화모임에서 이미 봤댔지요.

영화에 대해 낼 어떤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나눌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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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30.나무날. 맑음

 

...

인도 영화 .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좋은 행동을 하는 좋은 사람과 나쁜 행동을 하는 나쁜 사람.”

어머니가 아스퍼거 장애를 앓는 아들에게 한 말입니다.

“이 두 사람은 차이가 없다. 다만 다른 행동을 할 뿐이다.”

영화는 9.11 이후 미국사회에서 이슬람인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가 보여줍니다.

그리고 칸이 자신의 신념으로 어떻게 비극의 악순환을 끊는가를,

상황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어떻게 행하는가를,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많은 편견을 통해 굴러가는가를 새로이 보게 해주어

사람들에게 날카롭게 박혀있는 상처를 치유하기까지 하지요.

거기서 우리는 마하트마 간디를 만났습니다.

<포레스트검프>도 <레인맨>도 겹쳐졌던 듯합니다

(레인맨의 카드가 칸에게는 모든 고장난 기계였지요.).

<화씨 9.11>에선 9.11에 음모론을 제기하고 그것을 따져보지만

칸에게는 그 진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My name is Khan. I'm not a terrorist!"

테러리스트가 아닌 그는

평화에 이르는 길이 평화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었지요.

 

('물꼬에선 요새'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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