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20.물날. 맑음

조회 수 1249 추천 수 0 2011.05.01 16:25:25

 

꼭 이런 날은 아침이 더딥니다.

일찌감치 해건지기를 끝내고 가마솥방을 기웃거리지만

아침 밥상이 여느 날보다 늦었네요.

 

“이제 출발합니다.”

가는 길에 만 하루 동안 불렸던 콩을 들고 가며

방앗간에서 갈아 달라 하였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어졌다 전화를 드렸지요,

그래야 가늠하고 가마솥에 불을 댕길 것이니.

오늘은 두 집에서 같이 두부를 만들어 먹기로 하였습니다.

여름에는 두부를 잘 만들지 않습니다.

당연한 게 불 앞에 있어야 하니 말이지요.

광평의 현옥샘이 친동기로 이웃마을 사는 현숙샘도 불렀습니다,

곧잘 두부를 만들어 먹는 현숙샘이라.

 

마침 물이 펄펄 끓고 있었습니다.

갈아온 콩을 부었지요.

“물은 얼마나 해야 하나요?”

“콩이 한 말이면 두 말 반.”

눋지 않게 젓습니다.

“들기름!”

끓어오를 때 몇 방울의 들기름이 거품을 가라앉혀주지요.

자루에 퍼 담아 짜기 시작합니다.

남은 게 비지가 되는 것이지요.

콩물에 간수를 조금씩 넣어가며 저으면

조금씩 덩어리가 엉깁니다.

그게 순두부이지요.

그걸 누르면 두부가 됩니다.

누르고 남은 물은 팍팍한 된장에 섞으면 그만이지요.

두부는 종류도 참 많습니다.

굳히기 전 먹는 순두부,

처녀의 고운 손이 아니고는 문드러진다는 연두부,

새끼로 묶어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단단했던 막두부,

콩즙을 끓이다 태워 탄내가 나면 탄두부라 부르고,

속살을 예쁘게 한다는 약두부,

명주로 싸서 굳히는 비단두부,

삭혀 먹는 곤두부와 얼려 먹는 언두부,

기름에 튀겨먹는 유부...

 

두부를 잘라 싸 간 양념장과 김치로 점심을 먹습니다.

두부가 근기가 있어서 금새 배가 불렀지요.

두부를 세 집에서 나눕니다.

물꼬 식구 많으니 죄 가져가란 걸

그래도 서너 모 씩 나눠드렸습니다.

 

“뻥튀기 하는 것도 볼래?”

조정환샘, 어느 날 뻥튀기 기계를 어디서 구해오시더니

한살림 일이며 여러 행사에서 튀밥을 튀기셨습니다.

오늘 아이들을 위해 굳이 그 무거운 걸 들고 나와

쌀을 넣으셨지요.

아이들이 돌아가며 기계를 돌렸습니다.

“뻥이요!”

 

병아리를 여섯 마리 얻어왔습니다.

육계를 기르는 양계장에서 약한 놈들입니다.

한번 살려보리라 하지요.

돌아와 김유와 하다가 스티로폼 상자로 집을 만들어주고

겨를 깔고 안방도 만들어주었으며

먹이그릇과 물그릇도 들여놔주었습니다.

“그래, 그래, 힘껏 한번 살아 보거라!”

 

돌아오는 길,

선재랑 강유를 데리고 읍내 가서 이번 주말의 몽당계자를 위해 장을 봐오는데

먼저 떠났던 아이들이 대해 들머리 길가에서 빙 둘러앉아있었습니다.

사단이 난 겝니다.

두 차로 나누어탔던 인원이 넘치게 한 차에 올랐으니

아마도 서로 좁아서 벌어진 문제이지 않을까 짐작했지요.

아니나 다를까 그랬다데요.

류옥하다가 처음 한 아이가 안고 탔고,

한참을 달리다 무겁다 호소를 하고 김유가 안았는데,

몇 분을 못 가 다시 무겁다며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러나 요청을 받은 나머지 아이 둘이 "싫어" "안해" 반응하고...

시끄러운 아이들 속에서 결국 준환샘은 차를 세웠고,

아이들은 걸었답니다.

그리고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다시 오다 얘기를 나누고...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어떤 사안 안에서만 일어나는 단절된 마음이 아닙니다.

앞뒤 맥락이 있고

감정은 때로 켜켜이 쌓여 와락 일어나기도 하지요.

아이들이야 어른들보다 현재 감정에 더 집중하지만

7학년이면 굵어진 머리만큼 ‘그간’의 감정을 달고 있을 테지요.

“뭐가 문제냐, 얘기해라.”

“나는 네가 힘든 줄 몰랐다. 미안하다.”

이제 정작 문제가 되었던 사안이 주제가 아니라

결국 그간 쌓인 감정이 문제가 됩니다.

번번이 버릇처럼 사과하고

사람의 마음은 한치도 살피지 않는 것 같은 한 아이의 태도에

내내 속을 끓은 다른 아이가 형식적인 사과에 문제제기를 합니다.

그러다 상황은 다수가 개인을 공격하는 방황으로 흘렀다지요.

“그 사람이 불편하면 어떤 점이 문제인지...”

준환샘은 다시 아이들을 둘러앉혔고,

주고받으며 쌓인 문제들을 풀었다지요.

함께 살아가기, 이동학교의 가장 큰 과제가 아닐는지...

 

차를 타고 오가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아이들 속으로 보다 밀도 있게 다가가게 됩니다.

말을 많이 섞지 않던 아이와도 기회가 되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나 들여다보게도 되지요.

아이들, 참 맹랑합니다.

“저희가 좀 감당이 안 되잖아요.”

이건 어른들이 저들더러 하는 표현일 테지요.

“허 참, 너들 백 명을 데려와 봐라, 감당이 안 되나.”

“아니, 아니요, 옥샘이야 당연히 그렇죠. 그게 아니라...”

그럼 같이 온 순한 샘들이 그렇다는 건가요...

 

지난 12월부터 이어진

KBS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다섯 번째 연락입니다.

이제는 안부인사를 나눌 관계가 다 되었다니까요.

이번엔 아예 촬영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고

지난번에 촬영을 하지 못하겠다던 이유가 된,

속 시끄러웠던 일이 좀 편해졌냐는 안부였더랍니다.

그저 굳건히 살아가면 될 일입니다,

시간에 장사 없지요,

그저 긴 호흡으로 오래 숨 쉬면 된다,

그리 몇 자 드렸습니다.

아이들이 있으니 맘이 더욱 든든한가 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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