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골을 내려와 학교 고래방에서 하는 여느 날의 해건지기와 달리

몽당계자에서는 수행 공간 삼는 창고동에서 몸과 마음을 닦습니다.

깔개이불을 한 장씩 들고와 둥글게 앉았지요.

긴 창으로 보이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나무와 하늘이

우리들의 수행을 돕습니다.

아름다운 아침입니다.

고마운 시간입니다.

 

떡국 적어 두부를 썰어 넣고,

그것도 이 먹성들을 감당하기 어렵겠다 여겨

서둘러 하얀 쌀밥도 앉혔고,

그리고 누룽지를 끓여 얼마나 구수하게 먹었던지요.

달걀찜과 멸치볶음, 그리고 오징어젓도 함께 냈습니다.

이런 작은 규모의 행사는 밥공양도 하며 전체를 진행하는 맛이 좋습니다.

우선은 맘이 편해 좋고(내 손으로 밥해먹는),

다음은 온 마음으로 밥을 공양할 수 있어 좋고,

전체흐름 안내만 하면 아이들이 저들대로 움직임을 가늠하며 흘러가서 좋고,

일이란 것이 늘 공부란 것과 떨어지기 쉬운데

그걸 하나로 엮어 움직이는 걸 보여줄 수 있어서도 좋고...

“아, 행복해.”

“아, 너무 맛있어.”

아이들이 이밥을 놓고 벌인 찬사랍니다.

“너들 행복하기가 이리 쉽구나. 흰 쌀밥 한번 하면 되는 거군.”

 

오전, ‘봄이랑 첫 번째’입니다.

봄 들에서 일을 하였지요.

상추, 열무, 완두콩, 그 씨앗들을 뿌리고

거름을 흩뿌렸습니다.

마늘밭 옆 풀도 맸지요.

이동학교 아이들이 지내는 동안 키워먹고 갈 수 있는 거여

더욱 마음 좋습니다.

 

점심 버스로 희중샘이 나갑니다.

그런데, 갈무리글까지 써놓고 가는 그입니다.

글 한 줄이 어려웠던 그는

물꼬를 드나들며 어느새 글쓰기가 그리 어려운 게 아니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더해가는 것이 무서운 게지요.

늘 하는 훈련이 그런 결과들을 가져옵니다.

희중샘 나간 자리로 기락샘이 들어왔습니다.

부쩍 자주 오가는 기락샘입니다.

몇 달을 속 끓이는 일을 지나는 동안

기락샘이 가까이서 맘 보탠다고 부지런히 오갔지요.

그리하여 그 어려운 시간은

이제 지나가는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후, ‘봄이랑 두 번째’는 나물을 캡니다.

미나리꽝에도 들어가고

꽃밭에 오른 원추리와 쑥, 그리고 달래를 캐고,

진달래를 땄습니다.

어찌 움직이면 될지 나가서 풀자리마다 안내를 하고 들어와

청소와 저녁 밥상 준비를 하였지요.

저들끼리 다니며 바구니를 채웁니다.

그런데, 달래를 정작 그 뿌리는 빼고 캐온 아이들!

다녀온 아이들이 나물을 다듬습니다.

나물이란 거, 다듬는 거야말로 일이지요.

한쪽에선 쑥과 원추리를 다듬고,

다른 쪽에선 진달래전을 몇이 부쳤습니다.

찍찍 끈적대는 찰기를 어찌 감당하려는지요.

그 사이 미나리를 데쳐 초무침으로 내고,

물을 끓여 먼저 다듬어온 원추리를 데쳐 무쳐내고,

그리고 쑥으로 쑥버무리를 만들지요.

물기를 빼고 소금과 설탕, 꿀을 섞은 멥쌀가루에 묻쳐 켜켜이 찜통에 넣고

쪄냅니다.

물꼬는 화수분, 없는 게 없지요(없으며 안 쓰면 되니!).

마침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도 다 있습니다.

 

그런데, 진달래전이 잘 안됩니다.

“오늘 안에 먹을 수는 있냐?”

입으로는 이미 진즉에 다 부쳤건만

손은 그렇지가 못하네요.

더딥니다.

차츰 배가 고파지는 다른 아이들이었지요.

“실패했으니까 먹자.”

부치며 먹으니 저들은 배가 아니 고픈 게지요.

그러니 저녁 먹고 할까 물어도,

배 고프다고 강유가 오고 승기가 오고 또 줄줄이 오지만

설득을 못하였지요.

이때의 교사, 애가 타서는 안 됩니다.

기다리는 거지요,

아이들이 다친 상황도 아니고, 시간 맞춰 타야할 버스가 있는 것도 아니니.

비지청국장에 굵은 멸치를 발라 고추장에 볶고, 수박속껍질로 무침을 하고,

그렇게 저녁 밥상을 봐놓고 그저 기다립니다.

7시.

소사아저씨가 배가 고프겄습니다.

밥을 먼저 먹자 하지요.

저들은 저들 배고플 때 먹는다 하겠지요.

준환샘은 바깥 볼일을 보러 갔고,

희진샘은 교무실로 가 있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희진샘을 불러 화전을 마저 굽고,

그제서야 밥도 먹었지요.

 

밤, 달골 올라와 춤명상을 합니다.

조팥나무가 이곳까지 들어와 팔을 뻗었지요.

온 방이 뻗어나가는 봄기운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삶이 그러하길.

나무들의 춤을 추고 풀들을 춤을 추고

그리고 봄날의 춤을 추었지요.

“너들 샘들은 왜 코빼기도 아니 보이지?”

덕분에 샘들이 잠시 짬을 내서 당신들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사이 기락샘이 난로에 불을 지피고 고구마도 구웠지요.

아아아아아, 고구마가 이리 맛있었더란 말인가요.

늘 생산이 문제가 아니라 분배가 관건입니다.

난로를 중심으로 신문을 주욱 길게 깔고

역시 한 줄로 고구마를 꺼내놓습니다.

아이들은 뒤를 돌아 한 줄로 섰다가 고구마 앞으로 번호대로 가기.

어쩜 고구마는 그리도 잘 익었던지요.

 

‘실타래 두 번째’ 시간.

성능 좋은 거대한 로봇 같은 창고동의 난로의 훈김으로

실타래로 게서 합니다.

등돌리기극.

따뜻하게 한 아이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긁어주고 안아주기.

서로 간에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지요.

재호가 물꼬가 자신에게 좋은 축이 돼주었다는 고백도 했고,

승기가 몽당계자 더 하면 안되냐 조르기도 했고,

여러 아이들이 하루만 더하면 안 되냐 엉기기도 하였습니다.

따뜻한 밤이었지요.

 

참, 저녁에 류옥하다와, 교회를 다니는 진하를 한권사님댁에 보냈습니다.

낼 부활절에 애들이 다 교회가도 되냐,

우리가 좀 늦을 거다.

미리 통기한 것이지요.

우르르 가서 당황할까 봐 말입니다.

남의 잔치는 축하해줘야 하는 법이다,

그게 명분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흰 쌀밥을 먹으러 간다나 어쩐다나요.

지난 주 진하와 하은이가 예배를 보고 와서 하얀 쌀밥을 먹었다 자랑했고,

아이들이 입을 벌리고 부러워해서

잊지 않고 오늘 아침 흰 쌀밥 냈던 거였지요.

어쨌든 내일 교회들을 다, 다들 간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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