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나무날, 봄에 떠나는 곰사냥

조회 수 1705 추천 수 0 2004.05.03 14:29:00

입학기념 등반대회쯤 되려나요.
학기를 시작하는 첫날,
우리는 곰사냥을 떠나기로 하였지요.
무엇을 준비할까,
어떻게 잡을까,
잡아서 뭐할까...
곰탕도 끓이고 부모님도 공양하고 마을 어르신들 잔치도 하고
찾아오는 이들도 대접하고...

두 패로 나눠 무기를 만듭니다.
곰이 먹이라고 착각하고 다가올 수 있게
실제처럼 보일 토끼를 만들 혜린과 채은,
나머지들은 목공실 앞에서 창도 만들고 활도 만들고...
마침 마을 어르신들 윤상언님, 조중조님, 조병우님이
뭣들 하냐 고개빼며 걸어오셨다 아이들을 도웁니다.
한 손에 무기 하나씩을 들고
가방 하나씩 울러메고 길을 떠났지요.
아무래도 비라도 오지 싶어 비옷도 챙깁니다.

산을 오릅니다.
사람은 떠나도 산 것들이 지키는
제비꽃, 구슬봉이, 고사리, 붓꽃,...
이름이 잊힐 때에도 피고지는 생명입니다
지난 겨울 기어올랐던 길을 다시 밟습니다.
저어기 마을이 다 내려다 보입니다.
망치야, 장순아, 쫄랑아, 저미야, 잡식아, 까미야...
학교에 남은 이들을 불러봅니다.
같은 능선에서도
무성해진 잎 길은 겨울 눈길과는 다릅니다
한 능선에서 먹거리들을 꺼냅니다.
참외따위는 껍질을 벗길 것도 없습니다.
다시 절벽같은 길을 기어오르고 길이 조금 편아해지자
어느새 잊었다 싶었던 곰을 생각해냅니다.
령이가 앞서서 사탕으로 유인하자며
살 같은 제 몫의 사탕을 꺼냅니다.
한 편에선 토끼 그림을 세우고
저마다 앞이고 뒤에서 곰을 덮칠 준비를 끝냅니다.
어, 멀리서 들리는 낯선 소리!
긴장합니다.
눈이 동그래서들 침묵하며 얘기를 나눕니다.
소리는 잠잠해지고 다시 길을 타지요.
“진짜 곰소리였지?”
서로 서로 제가 들었던 소리에 대한 추억으로 신이 납니다.
사실은 딱따구리 소리였노라 밝혀주어야 하는 진실의 슬픔...
앉아 쉴 곳이 없어 내리 걸어야만 했던 눈길과는 달리
이 봄은 천지가 풀방석이니 자주도 쉽니다.
오줌 똥은 어쩜 그리 자주도 우리를 부르는지.
다리를 쉬며 올려다보는 나무 끝
대롱거리는 하늘을 바람이 콩콩거리며 지나갑니다
노래는 노래를 타고
무슨 일인가, 거미들이 빼꼼 내다봅니다
다시 일어섭니다.
성큼거리며 오는 녹음은
길을 잃기에 영락없습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니
골의 끝은 마을일 테지요
비가 지납니다
그늘로 들어설 수 없는 사람만 비를 맞습니다,
숲과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았던 사람만이
비에 젖고 또 젖는 늦봄입니다.
물한계곡을 타는 길에 어느새 우리는 비를 맞고 패잔병처럼 섰습니다.
어찌 돌아갈까?
몇 패로 미리 나누어 흘목까지 가서 대해리로 들어가자 하고
되는대로 걸어봅니다.
다행히 머잖아 우리가 다 오를 수 있는 승합차를 만났다지요.
곰사냥의 재미는 다녀온 다음의 영웅담이랍니다.
저 허풍쟁이들...
“다시는 곰 잡으러 가지 않을 테야!”
그림책은 그렇게 끝났던가요...
그러나 우리는 또 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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