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4.물날. 맑음

조회 수 1043 추천 수 0 2011.05.17 16:14:39
 


바느질을 하는 물날입니다.

만들던 주머니를 마무리합니다.

주를 건너 또 하냐구요?

그 정도의 작업을 소화할 수 있으리라 하여 제법 규모가 컸고,

거뜬히 해내고 있답니다.

‘이런 거’ 한 번도 완성해본 적이 없는 강유,

드디어, 결국, 마침내 완성하고야 말았습니다.

것뿐인가요, 남들은 거기서 그친 것을

자기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아랫단에 입체를 주는 작업까지 더했지요.

말 많고 탈 많던 김유,

절대 할 수 없을 거라며 툴툴대던 그도 마무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승기는 듬성듬성거리다 앞뒤를 잇지 못하고 앞장만 바느질을 했다가

다시 하기를 두어 차례 반복했지요.

“아아아아아아, 그러게 할 때 제대로 해야 되는데...”

혼자 궁시렁거리면서 말입니다.

다형이는 완성해놓고 보니

아무래도 앞면에 무늬처럼 꿰매 붙인 조각이 맘에 안 듭니다.

“다시 할래요.”

다른 천을 잘라와 다림질과 시접을 접어달라네요.

주머니를 다하고 새로운 걸 시도하는 여해,

시접을 생각지 않아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아졌으나

대신 시접을 이해한 시간이었지요.

심드렁했던 가야,

그 녀석 안 할 것 같고 못할 것 같고는 한데,

늘 보면 다 돼 있습니다.

일찌감치 주머니를 끝낸 진하,

필통주머니에 도전합니다.

다운이가 버려진 바지에서 지퍼를 떼어내 작업하는 걸 보고

저도 다른 바지에서 지퍼를 떼어내 필통의 지우개 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곧잘 합니다.

창의적, 이라는 말이 너무 낡아 다른 낱말을 찾아보지만,

예, 참 창의적입니다.

아, 국민누나 우리 선재가 의외입니다.

무슨 일이나 저가 앞서서 묵묵히 ‘잘’하는 그가

바느질은 조금 약하더군요.

“하하하, 그래 그래 그래야지...”

세상의 그 공평함이 다른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었을 걸요.

 

희진샘, 일상사 챙겨내느라 욕봅니다.

꼼꼼이 지치지 않고 잘 챙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밥바라지를 잘도 돌리고 있습니다.

어째도 때마다 밥을 먹고 있지요.

어떤 모둠은 이적지 가위바위보로 일을 결정합니다.

운에 자신들을 맡기는 그들의 ‘공평’입니다.

(이 학년들의 많은 일은 가위바위보로 결정되고 있답니다.

 이것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가 필요할 때 되었겠지요.)

한편 어떤 모둠은 시작하면서도 모여앉아 일을 잘 나누고

끝나가서도 마음 나눔을 하여

함께 한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병아리도 잘 돌보고 있습니다.

통로 관리와 고래방 들머리도 따로 말하지 않아도 일이 되고 있답니다.

참, 승기가 오늘 눈이 아팠습니다.

가끔 그럽니다.

집에서도 자주 그러했다 합니다.

인산선생식으로 구운 식염수를 넣어주고 얼음찜질을 합니다.

결명자차를 더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날마다 회의로 밤이 늦습니다.

저들도 정말 싫다면서

막상 회의가 뜨면 말이 어찌나 난무하는지요.

의견을 모으는 방식으로의 회의,

그래서 머리를 맞대니 낫더라고 생각하는 회의가 아니라

지겨워 죽겠는 회의가 되어갑니다.

서서히 어른들이 좀 개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날 이야기 주제로 돌아올 수 있도록 환기시키고,

잘 말하기 위해 잘 듣는 훈련도 짚어야겠지요.

말 자랑하는 회의가 아니라

진정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는 회의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삶의 질을 높여보려는.

 

자기 전 아이들 방을 살핍니다.

가서 같이 한참 뒹굴기도 하지요.

“OO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나?”

“...네. 나중에 친구들한테 말할라 그랬는데, 옥샘이 팍(?) 물으셔서”

알고 있었고,

그렇게 편하게 말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잃었던 어린 날이 생각나서

그 녀석 혹여 괜스레 쓰지 않아도 될 마음 쓰일까 싶어...

우리 모두 부모를 잃는 때가 오지요,

때로 그 날이 아주 빠르기도 합니다.

“부모 그늘은 천리도 만리도 간다.

 저승이라고 그렇지 않을까.

 아버지가 저승에서 너들 살집 지어주러 먼저 가셨던 갑다.”

부모는 질기게 우리 삶을 그리 끌어주고 계시지요.

아, ‘무식한 울어머니’한테 전화 한 통 넣어야겠습니다요.

 

오늘도 아이들은 잠이 더딥니다.

주말에 체육대회를 할 거라나요.

준비위 회의가 늦도록 있습니다.

거기 선재도 하은이도 다운이도 진하도 있었지요.

 

품앗이 선정샘의 편지가 닿았습니다.

오랜만에 우표가 붙은 편지를 봅니다.

조정래의 <한강>에 나오는 천두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질나게 가난하고 운도 안 트이고 지지리 궁상이던 그가

쌀집 배달원이 되고 배부른 식사가 가능했는데,

그만 쌀을 훔치기 시작하고 그 행위는 점점 대담해집니다.

결국 들키고 바로 짤리는 거지요.

소설이 거기서 멈추었으면 참 좋겠다,

그 고생을 하다 좀 나아졌으면 만족했어야 하는 거지,

시험에 들고 유혹에 빠지고 결국 파탄 나버리는 그가

어쩐지 번번이 울렁대는 자신 같노라 여겨져

그렇게 마음에 남더랍니다.

<한강>을 다시 읽으며 차마 그 대목을 읽을 수 없어

통째 넘겼다던 그였지요.

참 고운 결들이 세상을 채웁니다.

그 면면한 결이 있어 인류의 그 돼먹지 않은 역사가

그래도 선함을 견지하며 가는 게지요.

오늘 그의 편지가 제 삶을 위로합니다.

그의 선함이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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