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둥둥 떠내려갈 것 같은 밤이었습니다.
더럭 무서웠습니다.
아이들이 있으니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습니다.
혹여 저것들이 아플까, 다칠까,
무슨 재해라도 날까 노심초사이지요.
내리꽂히는 억수비였더랍니다.
아침밥을 준비한 모둠,
그간 자주 문제를 좀 드러냈던 모둠입니다.
타인까지도 무기력하게 만드는,
언제나 억지로 끌려가는 소 같은 분위기 말입니다.
드디어 희진샘이 보다 못해 그들을 세우고 나머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이 표정과 자세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고.
아이들을 서로 상반된 자리(마치 대적하게 하는)에 있게 한다는 점에서
좋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한번쯤은 문제제기가 나왔어야 했을 일이지요.
밥하는 게 이토록 즐겁지 않은 일인가,
어떡했으면 좋겠는가 결국 회의에서 다뤄보기로 합니다.
좋은 회의 재료가 될 것입니다.
가죽나물과 더덕순을 데쳐 먹었습니다.
뿌리는 뿌리대로 잎은 잎대로,
순은 순대로 열매는 열매 대로
이미 자연이 주고 있는 먹을거리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걸 다 못다먹고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계절이 갑니다.
참 건강한 먹을거리들이지요, 말해 뭣하려나요.
가죽나물은 김치를 담았습니다,
양으로야 보시기 한 사발이라 할 양이었지만.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자전거 타고 물한계곡의 황룡사로 절밥 먹으러 갑니다.
부처님과 예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것은
그들이 세상에 들고 온 평화와 사랑, 자비의 메시지 때문이지요.
그래서 종교를 초월한 모두의 축제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회가 끝나고 앞치마 입고 장화신고 공양간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을 걷어먹이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요.
그런데, 여러 어르신들이 물꼬를 잘 압니다.
심지어 제 이름을 들먹이는 분도 계셨습니다.
오래 물꼬가 예서 살았고나 싶데요.
밥도 밥이지만
덕분에 떳떳하게 과일도 배터지게 멕였습니다.
어른들이 나물을 싸주기도 하셨지요, 먹는 입 많다며.
미국인 친구가 오후 버스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의 영어공부 시간을 위해서인 셈이지요,
정해놓은 공부 시간은 아니나.
아이들을 앞세우고 마을 산책도 다녀오고
책방에서 오래 이야기도 나눕니다.
외국인이 낯설지도 않은 아이들이려니, 그것도 서울서 온 아이들이라 했는데,
웬걸요, 쑥스러워하고 그래서 말도 못 부치고 그랬지요.
우스웠습니다.
밤, 아이들이 달골 오르고,
밤을 밝힌 등불을 보러 다시 외국인 친구와 함께 갔습니다.
내리는 비와 어둠에 절은 일찌감치 푹 잠겼는데,
스님이 불을 밝혀주셨네요.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절 곁의 계곡의 물은 큰 비에 불어
우리는 마치 물속에 떠내려가는 연꽃 속에 앉았는 듯하였답니다.
준이가 한주 만에 베트남에서, 다시 서울에서, 돌아왔습니다.
남자 아이들이 방에서 늦도록 속닥이고 있었지요.
뭔가 감추는 게 있습니다.
그냥 가벼운 준이 귀환 파티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슨 사건일까,
느낌을 잡아보려 애썼습니다.
썩 유쾌한 움직임은 아닌 듯하였습니다.
아무쪼록 나쁜 일이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