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19.나무날. 맑음

조회 수 1187 추천 수 0 2011.06.04 02:47:36

 

 

해건지기를 좀 다른 느낌으로 밖에서 진행해보기로 한 아침입니다.

마침, 새벽부터 산에 들어가기로 마을 어르신들과 약속을 했던 지난밤이라

준환샘한테 진행을 맡겼지요.

그런데 준환샘, 원하는 세 사람만 운동장에 남기고,

안에서 하길 바라는 아이들은 그대로 안에서 하라 했다나요.

그래서 류옥하다가 국선도 음반을 틀어주고,

다운이가 앞에서 진행을 한 모양입니다.

“리틀 옥샘이었어요.”

 

아침, 고등부 정찬이는 쿠키를 구웠습니다.

어제 입안이 헐은 듯해서 불편해한,

그래서 야채죽을 해먹였던 김유는

오늘은 말짱했다 합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앓는 것도 그리 쉬 건너갑니다.

 

오전, 아이들은 꽃밭 둘레며 빨래방 안 풀을 뽑았습니다.

그때 승기와 김유는 된장집 지붕 수리를 시작한 준환샘을 도우러 갔다네요.

‘... 먼저 구역을 나누어서 잡초뽑기를 했다. 나는 가야랑 빨래방 비닐하우스 족에 있는 잡초를 뽑았다.

처음 봤을 때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일단 시작은 했는데 너무 너무 덥고 호미를 밑에서 깨서 허리도 아프고 온몸이 뻐근했다. 이때 현홍준이 돌 던지면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남이 안하는 일에 집중하지 말고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자’라고 말하신 옥샘 말을 듣고 열심히 했다.’(강유의 날적이에서)

강유는 찬찬히 참 잘 새깁니다.

이야기를 나눌 때 핵심을 가장 잘 정리하는 그이기도 하지요.

(아, 그건 우리 해수도 잘해요.)

그런데 이 녀석, 정작 설거지며 청소며 빨래며 일상적인 것에는 아주 약합니다.

물 뚝뚝 떨어지는 행주로 상을 닦고 있기 일쑤이며,

씻은 재료와 다듬기가 필요한 재료를 같이 놓는 것도 다반사고,

뒷정리가 도통 안 되며...

그런 일들은 눈에 잘 들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사람마다 그런 영역들이 있나 봅디다.

 

오후 한국화가 있었습니다.

미죽샘 점심 공양은 잘 해드렸을 라나요.

산에서 내려와 전화 넣으니 애들 칭찬이 대단합니다.

“교장샘 없어도 애들이 잘 했어요.”

그림도 좋더랍니다.

그려놓은 것 보니 세상에나! 가지치기까지 해놓았던 걸요.

 

산을 헤쳐 다니다 왔습니다,

마을에서 두 분, 윗마을에서 한 분,

그리고 면소재지서 예까지 들어온 두 아주머니랑 같이.

석현 돌고개 지나 아리랑 고개를 너머

그 옛적 빨치산 나오기 전 화전민이 살았던 동네 장구목이를 지나

깊이 깊이 들어갔습니다.

저어기 석이봉(석기봉이 아니라) 보였지요.

취나물은 야산에 많았습니다.

좀 더 들어가니 삿갓쟁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묵어 숲이 된 밭에선 만삼도 캤지요.

더러더러 누리대도 있었습니다.

취나물과 도시락초, 그리고 참나물과 집우를 뜯었고

더덕을 제법 캐기도 하였댔지요.

점심 먹고 늘어지게 앉았음 좋겠는데,

이런! 먹는 일에 더딘 제 호흡에 맞춰주긴 하셨으나

숟가락 놓자 바로 일어서데요.

산 속 그 좋은 데 한바탕 드러누우면 좋으련...

저도 산깨나 타는데,

나이 일흔 넘은 동근이엄마도 낼모레 예순인 신자엄마도

다리가 조금 불편한 예순 넘은 방앗간 아줌마도

정작 제가 혹여 힘이 들까들 걱정하셨지요.

그런데, 그토록 많았다던 참나물 밭은 어디로 다 가버렸을까요,

무슨 일들이 이 산에서 일어나고 사라졌을까요?

귀하디귀하게 나물을 캐고 돌아오는 걸음

그제야 우리는 병풍채를 발견했습니다.

이맘 때 예서 가장 탐내는 바위틈의 나물입니다.

쌈으로 최고라지요.

산 들머리, 황간에서 식당하는 두 아저씨가 잔뜩 나물을 짊어지고 나오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다리쉼을 하는 우리 무리를 향해 물었습니다.

“혹시 병풍채가 어딨는지 알아요?”

모두 아무 말도 안하고 계시데요.

할머니들이 귀여웠(?)답니다.

아직도 길 아래로 내려설 기미가 없는 아주머니들 두고

먼저 길로 나왔습니다.

더 담을 데가 없어 말이지요.

왜 아주머니들이 아주 자루를 짊어지고 나섰던가를 그제야 알았댔습니다.

헌데, 그만 마지막 쉬었던 지점에 잘 쓰지도 않은 손전화를 흘리고 와

다시 올라간 일도 있었네요.

 

대문 들어서니 선재, 강유가 나옵니다.

“옥샘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늘은 아무 일 없었어요.”

그러게, 나갔다 들어오면 꼭 일이 벌어졌던 듯합니다.

아구, 아구, 아구...

온 피로가 덮치지요.

저것들 좋은 거 좀 멕여 보겠다고...

점심을 먹던 잠깐을 뺀 9시간여 산을 탔습니다.

“그럼, 오늘 햄버거 못 먹는 거예요?”

“나물을 일단 가려야지.”

평상에 나물들을 펼쳐놓으니 선재도 강유도 하다도 승기도 준이도

손을 보탭니다.

햄버거 때문만은 아닐 테지요, 아암.

등 뒤에선 김유가 와서 안마를 합니다,

“(햄버거)담에 해주셔도 돼요.” 하면서.

절대 다음에 하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으로 느껴지기도 하던 걸요.

 

패티를 구웠습니다.

햄버거를 후식으로 냈지요.

그걸 밥처럼 먹으려면 다섯 개도 모자라다마다요.

“아아아아아아...”

승기가 우는 줄 알았습니다.

“무슨 일이야?”

“너무 맛있어서...”

저렇게 좋아하는 걸, 까짓것 두 번을 못해주려나요.

담엔 빅맥으로 해주렵니다.

 

아직 아이들은 불에 덜 민감합니다.

다들 더그매로 한데모임을 하러 올라갔는데,

1층 해우소 세탁기 앞도 2층 시방과 이불방도

불 훤하데요.

그동안 이 산골 흐름에 익을 만큼 익어졌겠다 싶어

매니저로서 이제 10시 30분에는 불을 끄겠다 합니다,

이곳에선 이 산속 흐름을 좀 탔으면 싶어,

밤엔 자고, 아침엔 새벽 기운과 함께 일어나는.

 

아이들 회의가 좀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우리가...”란 표현이 나옵니다.

류옥하다와 이동학교 아이들, 두 집단이 늘 있는 거지요.

드디어 샘들이 짚어줍니다.

“네 이야기를 해라. 자신의 얘기를 하세요, 다른 사람들을 대변하려 말고.”

모두 짜증과 싸우듯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짚지요.

잘 듣고 잘 말하기야말로 소통의 기본입니다.

나는 그러하였는가, 묻는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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