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24.불날. 화창

조회 수 1245 추천 수 0 2011.06.09 21:37:50

 

해건지기는 다시 제자리로 옵니다.

어제는 흐린 하늘 아래 소소한 바람 속

마을회관 마당에서 모였더랬지요.

물꼬에서 부르는 ‘아침을 여는 노래’도 부르고,

그저, 저런 나무 한 그루만 날마다 보고 살아도 큰 배움이겠다며

마을을 내려다보는 큰형님나무인 느티나무를 올려다 보았으며,

저 혼자 낡아가는 운동기구를 만졌고,

거닐며 우리 곁에 나고 자라는 것들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느티나무를 안고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

멀리 첩첩 둘러친 산들을 보고, 마을을 보고,

마지막으로 나무를 안았더랬지요.

근데, 한국사 이야기가 잠깐 나왔더랬는데, 이런,

아이들의 기초학력에 대한 잠깐의 걱정(?)도 있었더랍니다.

참, 곁에서 선재가 어제 강유의 생일에 대해

생일인데 생일축하보다 음식 축하를 더 한 건 아닌가

미안한 맘 들었다는 고백도 슬쩍 했더랬지요.

마음결을 잘 읽어가는 아이를 보며

또 배우는 아침이었더이다.

 

자전거나들이가 있는 불날입니다.

지나는 비가 몇 방울.

다운과 해수를 시작으로 정해진 자전거 줄은

선재 김유 다형으로 마지막 차례를 이루었습니다.

“어디가 좋을까요?”

“황간의 반야사 어떨까 싶어요. 계곡을 타고 방생지를 지나

각 시대가 다 들어있는 문화재 3층 석탑도 보고,

무엇보다 문수전은 꼭, 꼬옥 걸어 올라갔다 와야 합니다.”

그리 권했습니다.

왕복 55킬로미터.

 

‘...처음 물꼬에 왔을 때는 나무에 잎이 거의 없어서 허전해보였는데, 오늘 다시 보니까 잎이 다아 돋아서 산이 더욱 풍성해보였다. 갈 때쯤은 또 어떻게 되있을지 궁금하다...’(진하의 날적이에서)

이젠 이 정도 거리는 일도 아닌 아이들입니다.

날마다 조금씩 하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지요.

그래서 공부하는 놈과 저금하는 놈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하였습니다.

아침을 먹고 잠깐, 혹은 점심을 먹고, 저녁 밥상에 앉기 전에도

아이들은 틈틈이 자전거에 올라 윗마을을 다녀왔더랬습니다.

불날이면 다 같이 이렇게 먼 길을 떠나기도 몇 차례.

이게 쌓여 이동학교가 끝날 무렵 서울 오름길의 자전거여행이 될 것입니다.

 

점심은 계곡 곁 너른 바위 위에서 펼쳤습니다.

이렇게 나왔을 땐 어느 정도의 양이 되어야 배가 고프지 않는 걸까요?

김밥을 먹은 아이들이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노라 했습니다.

희진샘이 싼 꼬마김밥을 먹었더랬지요.

 

문수전에 올랐습니다.

문수보살님이 빼어난 주변경관을 조망하신 망경대에 문수전을 세웠다 합니다.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면 끝에 대롱대롱 매달리듯,

석천이 굽이치며 날을 세운 낭떠러지 끝에

제비집 같은 맞배지붕 문수전이 있습니다.

처마 끝 풍경 밑으로 산이 첩첩이 걸렸고

저 아래로 굽이도는 석천강이 까마득합니다.

“100일 학교 온 거 정말 잘한 것 같아요.”

거기 서서 그런 생각을 했다던 김유였지요.

 

돌아오는 길, 대열의 맨 끝은 어느새 또 해수입니다.

준환샘이 여해를 붙여줍니다.

베이킹을 하고파하는 해수의 마음을 자극하며

‘베이킹을 못할 수도 있음을 상기시키며’ 여해가 뒤를 밀자

열심히 다리를 젓는 해수였지요.

힘들어하고 짜증내는 해수를 자꾸만 몬 듯해서 미안했던 여해는

같이 달리는 길 위에서 시간이 지나며

협박이 아니라 베이킹을 도와주고픈 마음으로 변하게 되더라나요.

선재도 그 곁에 있었다지요.

 

황간을 막 벗어나 매곡을 향하는 굽이길,

아이들이 다리쉼을 합니다.

그런데 아저씨 하나, 앉은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물으셨다지요.

그러더니 애쓴다며 댁으로 들어가 사과즙을 전해주셨습니다.

이 아이들을 키우는 모든 기운에 감사드립니다.

아, 서울서 이들을 위해 김치와 반찬도 들어왔더랬네요.

 

읍내의 농업대학에 가 산야초효소를 20여 년 담아온 선생과

그간의 경험을 나눈 뒤 일찌감치 돌아와

오늘은 나무 다루는 일을 좀 했습니다.

목조 건축하는 무리들한테 가서

나무와 몇 가지 필요한 것들을 구해왔지요.

2단 선반 하나 완성했습니다.

이번 학년도에 세운 개인 목표 하나는

흙집해우소 문짝을 나무로 다는 일이지요.

이러다보면 그럴 날 올 테지요.

 

“샘, 칫솔 하나만 주세요.”

다형입니다.

“저두요.”

강유이지요.

준이도 아레께 하나 가지고 갔습니다.

서울서라면 어디 그리 썼겠는지요.

그 칫솔이란 게 재활용품이거든요.

계자를 마친 아이들이 돌아가며 남긴 것들 가운데

(챙겨준다고 챙겨주어도 꼭 몇 개는 그리 남습니다.

청소용 빨래용으로 쓰고도 남아돌지요.)

거의 새 것들을 모아 삶은 뒤 볕에 말립니다.

그렇게 해서, 준비를 미처 못 하고 이곳에 온 이들을 위해

일회용으로 쓰고 있지요.

그 얘기를 듣고 아이들도 처음엔 꺼리는 듯하더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열처리를 했으니 살균이 된 대신 내구성이 약하긴 합니다.

이런 것도 쓰게 된 그 무덤덤함이 기특합니다.

 

이번 주는 한데모임 진행자가 해수입니다.

지난주는 선재였네요.

아이들이 요새는 돌아가며 한 주씩 진행을 하고,

진행을 마치면 기록자로 자리를 옮깁니다.

우리 해수, 참 맑고 참 재밌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랑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제 맘이 다 환해지지요.

 

오늘은 우리 하은 선수 흉을 좀 볼 거나요.

욕실 장을 열다 어찌나 웃었는지요.

똘똘 말린 양말이 자주 거기 있습니다.

오늘도 툭 떨어졌지요.

이젠 아주 장에 냄새 배였던 걸요.

말이 야무진 우리 하은이지요.

그만큼 몸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겝니다.

(사람이 어디가 딱 부러지면 또 다른 곳이 허술해요.

그게 사람의 묘미구나 싶지요.

우리 하은이 뭔가를 조직도 잘하고, 또박또박 얼마나 조리가 있는데요.)

“저는 냄새나지 않는 장을 열고 싶습니다.”

한데모임에서 슬쩍 모두에게 구석구석 쑤셔두는 양말에 대해 짚고

자기 전 돌아다녀보니

욕실 장에서부터 양말들이 다 치워졌댔지요.

그런데, 그것들이 빨래건조대에 널린 건 맞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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