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25.물날. 흐림

조회 수 1295 추천 수 0 2011.06.09 21:39:13

 

달골까지 경운기를 타고 오릅니다.

소사아저씨랑 준환샘이

엊그제 낡은 바퀴와 더불어 몇 곳을 고쳐 왔지요.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자전거 주차장 지붕을 좀 고치자 하지요.

준환샘이 둥치를 엔진톱으로 자르면 소사아저씨가 그걸 넘어뜨리고

아이들이 붙어 나뭇가지를 잘랐습니다.

낙엽송 잔가시들이 자꾸만 아이들 손을 건드렸지요.

 

아이들이 도구를 가지고 하는 일들이며 낯선 조건 안에서는

곧잘 작은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사고라고 이름붙일 것까진 아니지만

다형이가 톱을 쓰다 하은이 손을 찍은 일이 있었고,

맨날 들고 다니는 약상자가 하필 빠진 그날 꼭 이런 일이 생기지요,

수건 한쪽을 찢어 동여맸더랍니다.

승기 준 해수가 경운기에서 떨어진 일도 있었지요.

승기가 준을 지탱했는데

준이 중심을 잃어서 넘어지는 도중 해수를 붙잡으려다

그만 세 명이 같이 넘어져

승기는 머리를, 준이와 해수는 팔을 부딪혔네요.

조심 또 조심할 것.

시골에 오면 아이들이 ‘망구 일없이 그냥 걸어가다 넘어’진다 합니다.

도시 삶이 우리 아이들에게,

혹은 공부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몸의 균형을 잃게 하는가 묻게 되는 대목이지요.

그래도 이동학교 온 아이들은 몸이 단단한 편입니다.

아마도 대안학교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어 그렇지 않은가 싶어요.

 

멀리 나가서 일한다고 제가 점심을 해 주마 했습니다.

국수를 말았지요.

“와, 잔치 국수다!”

갖은 채소와 버섯꼬다리, 뒤포리, 멸치, 새우, 다시마까지 넣어 국물을 만들고

마지막에 부추를 얼른 뜯어와 얹었습니다.

애호박과 홍당무는 채 썰어 끓는 육수에 데쳐 고명으로 얹고,

김과, 노른자와 흰자로 분리한 달걀지단도 놓았지요.

저들이 준비하는, 부실할지 모르는 영양을 한 번씩 그리 살핀답니다.

짐작대로 국수가 3킬로그램 가까이 절단났지요.

 

밤, 남자 아이들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자주 있는 일이나,

황룡사사건(남자아이들이 몸싸움 뒤 모두 성찰을 떠나 1080배를 한 일) 뒤라

또 그러나 싶어 준환샘이 불러내 거실에 둘러앉혔습니다.

오늘은 저도 함께 들어갔지요.

“하다 엄마로 오신 거예요, 선생님으로 오신 거예요?”

다형의 질문이었습니다. 하하, 저 당돌함이라니...

아이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분위기가 좀 누그러지자 준환샘이 빠지고,

마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하다 대 모두가 다투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나름 중립을 지키거나 하다 편을 드는 아이들도 나오게 되었네요.

그런데, 아이들 편으로 더 기울어져야 아이들이 비로소 공평하다 느낄 수 있겠기에

오늘도 기울기는 또 하다보다 훨씬 아이들 쪽이었는데,

대신 하다는 조금 억울함이 남았을 겝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아이들 이런 싸움에 나서지 않으려건만...

 

미국서 언어병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소정샘이 잠시 귀국했습니다.

제자(이기보다 친구 같은)이고 품앗이일꾼인 그입니다.

이번엔 동생 정훈과 함께 왔습니다.

이리 넓어지는 인연이 고맙습니다.

가끔 제가 즐기는 와인과 나쵸, 치즈며 맥주들을 바리바리 싸와서

한밤 샘들이 둘러앉아 오랜만에들 쉬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2층에서 거실 광경을 참관하던 소정샘,

하다가 얼마나 또박또박 자기 의견을 잘 말하는 아이인데

어찌 저리 어물어물하게 되었는가,

이동학교를 보낸 지난 시간이 짐작된다며

마음이 안됐더라 했습니다.

소정샘도 물꼬 식구라고

팔이 안으로 굽어 그런 건 아니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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