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31.불날. 비

조회 수 1125 추천 수 0 2011.06.14 22:37:27

 

 

“새천년건강체조를 아는 사람?”

“6년 내내 했는데...”

다형이만 그러하였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아이들이 대개였지요.

군대식 체조와 동원식 체조를 벗어나겠다고

우리 민족 고유의 가락에 춤과 전통무예를 담아

1999년에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든 체조로 전주를 합쳐 6분 3초가 걸립니다.

재미도 있지만 이게 해보면 우리 몸에 맞다 싶고,

운동량이 만만찮구나 싶으며,

정말 잘 짜여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이도 있겠으나.

땅 두드리기, 하늘보기, 사람 마주보기, 하나 되기,

이렇게 크게 네 덩어리 이루어져있고

그 세부는 열여덟 개(맞나?) 동작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겨울에는 이곳에서 즐기는 해건지기 재료이기도 하지요,

물론 눈이나 비가 내릴 땐 안에서 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 하지만.

이 아침, 아이들이 퍽 흥미 있어 하였더랍니다.

 

자전거나들이가 있는 날입니다.

“지난주 다녀오신 반야사 있잖아요...”

그 곁 월유봉을 권했습니다.

주말에 다녀왔던 여행의 피로로 찌뿌둥하다고들 하는데,

비까지 온다했는데, 예정대로 떠났습니다.

이번 주 예서 머물고 있는 재호가 남고,

어제 무릎을 다친 해수가 희진샘이랑 남았네요.

 

거기서 민박을 하고 있는 전동춘샘께 전화도 넣었습니다,

오늘 점심을 싸지 못했다는 준환샘 말을 듣고.

알았더라면 저라도 쌌을 것을...

하지만 가는 곳마다 밥을 멕일 집들이 있습니다.

물꼬의 귀한 연들이지요.

그런데, 미리 한 전화가 아니라,

마침 서울행 준비를 하고 계셨네요.

아이들 걸음을 뭘로 좀 도울 수 있으려나 했더니...

 

그런데, 상촌 임산 면소재지에 이르기도 전 차유를 지나며

그만 강유의 자전거가 펑크가 났더랬네요.

아이들은 달려 길가 정자에 이르러 쉬고,

준환샘과 강유는 자전거를 끌고 한참만에 그곳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면소재지까지 끌고 가 펑크 때우고,

비도 내려 결국 돌아왔다 합니다.

 

사람 때문에 살고 사람 때문에 죽는다던가요.

오늘은 감동과 좌절이 공존한 하루였습니다.

아이 운동화를 사러 시장 신발가게에 들렀는데,

아저씨가 처음 신을 때 편하라고 굳이 끈을 늘려 잘 맞춰주셨습니다.

작은 행동 하나가 모여 그 사람을 이룹니다.

나오며 또 돌아보게 됩디다.

목재소 아저씨 한 분이 제가 지난주 나무 다듬는 걸 보시고는

샌딩할 때 쓰라며 작업용 마스크를 하나 내미셨습니다,

당신 것 챙기다가 제 것도 생각났다고.

한편 목조건축 회사에서

화목보일러로 쓰라며 조각나무들을 모아주셨습니다,

제 일하며 남까지 생각하기 어디 쉽던가요.

한편 읍내 도서관에 들러 책을 잔뜩 빌려 나서려는데,

같이 유화를 그리던 전인숙님이 들어서시다

굳이 아래 차까지 들어다주셨습니다,

당신은 다시 3층으로 오르실 것인데.

마음이 따순 시간들이었습니다.

 

한편, 좌절이 있었던, 아니 그건 좀 과장이고, 조금 우울함이 있었습니다.

‘물꼬에선 요새’를 통해 이곳 소식을 접한 분들 가운데

아이들 이야기에 맘이 불편해진 분이 계셨습니다.

뭐 정확하게 말하면 제 글이 물의를 일으킨 거지요.

기본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으므로,

또 어떤 이야기는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며,

막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맘이야 아이를 비난하려고 드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사는 형편 자랑이라고 하는 것도 아니며,

말 그대로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 우리 기록으로,

한편 이곳에 눈이 오는 이들과 나누고자 함이지요.

 

예를 들면,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 다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연락을 먼저 드리는 것보다

그 일을 수습하는데 더 마음을 쓰겠다 합니다.

멀리 있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오직 부모 된 마음으로 하겠노라 하고.

찢어져 병원을 가면 꿰매는 데도

성형외과식으로 할 거냐, 정형외과식으로 하겠냐 묻습니다.

성형외과식이라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든다지요.

그래도 부모라면 그것을 택할 것입니다.

저희도 당연히 그리 선택합니다.

아이들을 어떤 공간에 보내기로 했으면

아이들과 같이 작업하겠다고 나선 그 공간을, 교사들을,

믿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

아무렴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하겠다는데,

아무렴 그 사람들이 생각 없이, 준비 없이, 경험 없이 그러는 걸까요?

 

또 예를 들면,

서로 형편을 헤아리기 그 처지가 안 되면 어렵지요.

아이들을 보내놓으면 누군들 궁금하고 그립고 속이 타지 않을까요.

그런데 아이들과 스물네 시간을 살아내는 일이 만만찮습니다.

시간이 나도 그게 시간이 아닌 게지요.

여기서만 하더라도, 이번 이동학교만 하더라도

곁가지로 있는 제가 입이 다 헐고 잠을 설치는데

아이들을 안아내고 있는 담임들은 오죽할까요.

글 한 줄 전화 한번이 쉽지 않을 겝니다.

 

뭐 그리 둘러갈 것도 없이,

얼마 전에 있었던 아이들 사이의 몸싸움 건이

글을 읽는 분들께 심려를 끼친 듯합니다.

사람이 잠깐 좋기는 쉽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모범생이기도 쉽지요.

그런데 이곳의 생활이란 게 24시간 함께 있습니다.

어떻게든 자기가 드러나지요.

꾸미고, 혹은 자기가 바라는 모습을 보이는데 한계가 있는 거지요.

어른들 경우, 이곳에서 지내면 처절하게 자기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던가요.

아이들이라고 다를까요.

이런 모습 저런 모습 다 드러나게 됩니다.

문제, 그거 없으면 좋지요.

그런데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방점이 찍히지 않던가요.

이곳, 저희들, 정말 잘 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제가 게을러서도 그러하지만,

일부러도 2주를 넘는 시간차를 두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까닭이 있습니다,

혹 바로바로 읽는 이들이 반응할 수도 있겠기에.

2주면 어떤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그래서 제가 쓰는 글 속에 그 문제가 드러났을 때,

그 문제가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기간이라 짐작하기에,

어디 하루 이틀 이 일을 하고 있나요.

문제가 아직 계속 되는 사안이라면

설혹 글을 쓰는 날짜 안에 일어난 사실일지라도

조금 미루었을 것입니다.

 

‘부모 된 죄’라는 말이 있지요.

저희 아이... 못난 에미이고, 못난 자식입니다.

그런데, 하다가 이곳에 사는 건 조건입니다, 오는 이들의 선택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아이, 혹은 이곳의 어른들과 지내는 것도

사는 아이도 오는 아이나 모두에게 좋은 공부입니다.

생태가 별건가요.

좋은 놈과 잘 지내기 누군들 못합니까.

누구하고라도 사이좋게 지내려 애쓰는 일, 그거야말로 생태 아닐는지요.

한편,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저희 아이 지금만큼도 고맙고 감사합니다.

나아지겠지요.

제가 아니라, 그 아이가 저를 돌보고 살아가는 산골 삶입니다.

며칠 전 빈들모임에서 많은 일을 수행하며 행복해하는 아들을 보며

저렇게 멀쩡한 놈이 왜 그리 아이들과 갈등일까, 안타깝데요.

그런데, 때로 우리 어른들,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닌지...

 

그런 까닭으로 오늘 이동학교 교장샘께 메일 하나 넣었습니다.

적어도 제 불찰로 여기서 애쓰시는 분들을 욕보일 수 없겠어서

바삐 쓴 글월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좋은 마을을 이루고 사는 이동학교 구성원들의 ‘무던함과 믿음’에

너무 기댔던 건 아닌가 반성하며,

이곳에서 고생하고 있는 샘들을 무겁게 한 잘못을 돌아보며

여러 정황을 설명하는 글이었더랬지요.

애는 애대로 쓰고, 참 보람 없게 되었다 싶어 속상했습니다.

(쯧쯧, 속이 이리 쉬 상해서야...)

 

그런데, 말이지요,

아이들 참말 잘 지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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