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4.흙날. 맑음

조회 수 1117 추천 수 0 2011.06.14 22:43:45

 

이른 아침 전화벨소리에 깼습니다; 5:30

한 학부모의 전화였지요.

엊저녁 밀린 일들 좀 하며 5시에야 잠자리에 갔는데...

제 사정을 알리야 없을 것이지만 으윽, 힘드네 싶다가

그 시간에 전화할 수 있는 이곳이어 그가 덜 외롭겠다 했지요.

 

“옥새애앰...”

하은이가 부릅니다.

“설거지 좀 도와주시면 안돼요?”

그 전에 곁에서 가야가 ‘옥샘한테 부탁해.’하는 소리도 들렸지요.

“어, 오늘은 교무실에서 처리해야할 일이 많은데...

그리고 친구들도 있고, 다른 샘들도 있잖아...”

“안 된다는 말만 하면 되지 설명은 왜 해요!”

성질을 냅니다, 허허 참...

기대한 대답이 아니어 서운할 수야 있겠지만, 무슨 이런 일이...

워낙에 하은이 말투가 그런 면이 있긴 하나(요새 퍽 애쓰고 있는 저-하은-지만),

여태 저들의(저네들의) 도움 요청을 거의 거절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마음이란 게 참...

늘 하다 한번 아니하면 그게 서운하고,

안 하나 한번 해주면 그게 고마운 것이라니...

한편, 도움을 청하는 건 내가 할 일을 미루는 게 아니라

내가 할 바를 다 하지만 손발이 모자랄 때 하는 것입니다.

돌아보니 번번이 그 도움이란 게

자기 일 미루기가 되었지 않았던가 싶데요.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하은이를 불렀습니다.

벌써 상황을 알고 들어옵니다.

“내가 화가 좀 났었는데, 네 얼굴 보니까,

아고 저 예쁜 녀석 저도 고생하는구나 싶으면서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리 얘기를 시작하지요.

“그런데요, 애들은 주말이라 쉬고 싶었대요.”

허허 참, 아니, 휴일이라 쉬고 싶은 친구는 이해되는데,

바빠서 도와주지 못한 어른한테는 화를 내고 있다니,

게다 어른도 주말에 쉬고 싶을 수 있지요,

물론 아이가 기대했던 답이 아니어서 그렇겠으나,

혹 제가 무언가 관계 맺기를 잘못한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것들이 여행가서 상을 다 차려서 밥상 앞으로 샘을 부르던 학년이에요.”

세상에나! 승연샘 말을 들으며

그저 이만큼 하는 것도 안쓰러워하던 마음이 달라지지요.

아이들이 불만이 쌓인 데는, 주말은 샘들이 밥을 하는 줄 알았는데

저들에게 떨어졌기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해날에 하는 해날큰밥상이야 제가 종일 준비하지요,

혹여 저들이 먹는 일에 부실할까 어미 손으로 준비하는.)

“그건 손님이 왔거나, 너들이 청소에 너무 진을 뺐다 싶었을 때,

혹은 뭔가 내가 맛난 게 생각나서 해줄 수 있을 때 그랬지...”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희진샘한테 ‘토요일은 두 끼니까 제가 해줘볼까 하고...’

그런 말을 들은 것도 생각은 납니다.

 

헌데, 몇 마디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그래서 마음은 서로 정리가 되었구나 싶었는데,

저녁 한데모임에서 “옥샘이 설거지를 안 해줘서 서운했”다,

“옥샘이랑 ‘말다툼’을 해서 속상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더구나 샘들이 그 부분에 대해 잘 짚어주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이 건에 대해 얘기를 좀 할 기회가 있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어째 어른의 ‘꾸지람’이 아이에게 ‘말다툼’이라 여겨졌단 말인가요,

기가 막힐 일입니다.

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많은 경우 어른의 문제이기 쉬우니까요.

 

재호가 갔습니다.

더 있고 싶어 하는데, 있다 갔음 좋겠는데,

머무는 아이들이, 아니 사실은 어른들이 마음에 쓰였습니다,

힘이 더 들까 하여.

재호한테 양해를 구했지요.

그리고 생각 많은 그에게 한 마디 주었습니다.

“조금 더디게 가도 된다!”

그리만 전했습니다.

이 시간을 잘 건너가길, 모든 건 지나가니까.

 

아이들은 끼리끼리 자전거를 타고 빨래를 하고

책도 읽고 노래도 듣고 낮잠을 자기도 하며 오후를 보냅니다.

그런데 진하는 달골에 올라가지 않고 학교에서 책도 읽고 낮잠을 잤지요.

어떨 땐 아이들과 너무 잘 지내고, 어떨 땐 너무 큰 불협화음입니다.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오후에는 잠깐 읍내 나갔다 옵니다.

지난번에 마음 심란하던 하루, 가서 의자 두 개를 만들다 두고 왔더랬지요.

페인트도 얻고 마감재더 얻어 칠해서 가져오며,

마침 기락샘도 들어오는 날이라 태워왔더랍니다.

 

승연샘이 당신 중 3 아들이랑 하다가 비슷하다며

여러 가지로 위로를 많이 해주셨습니다(그러려고 파견오셨나...).

학생인 아이와 선생인 부모가 한 공간에 있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는 거지요.

워낙 성품이 그런 분이다 짐작은 가지만

그게 또 위로가 되더이다, 많이 가라앉았다가.

근데, 몸이 좋지 않아 서울로 돌아간 준환샘은

그보다 더한 선미샘을 결국 입원시켰고,

선미샘은 결국 다음 주 불날 디스크수술을 예정하고 있네요.

어려운 시간이겠습니다.

하지만 가족 같은 그곳 동료들이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나 봅니다.

고마울 일입니다.

공동체가 빛날 때라면 어느 때보다 그런 시간들 아닐지요.

그리고, 원래 희진샘 휴가가 있는 주말이었답니다.

헌데 준환샘이 아직 서울에 있으니 어렵게 됐지요.

그래도 대전에서 보기로 한 일은 미룰 수가 없어

낼 이른 아침 떠났다가 저녁에 돌아온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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