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6.달날. 맑음 / 단식 1일째

조회 수 1179 추천 수 0 2011.06.14 22:50:58

 

엄마는 아침부터 밭에서 살고

아빠는 저녁까지 논에서 살고

아기는 저물도록 나가서 놀고

오뉴월 긴긴 해에 집이 비어서

더부살이 제비가 집을 봐 주네 (이문구)

 

망종입니다(단오이기도 하군요).

까끄라기 종자라는 뜻이니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수확하는 때입니다.

이모작 땅에선 보리나 밀을 베고 논에 모를 내지요.

하니 발등에 오줌싼다는 말이 나올 밖에.

한편, 한 해 가운데 날이 가장 맑고 좋은 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록에도 옛적 나라를 지킨 이들의 혼을 이즈음 기렸다듯

현충일도 그리 생기게 된 것이지요.

 

좋은 날입니다.

우리들이 아침 해건지기에서 나눈 이야기도 그 날씨 같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는 어느 특정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라 여겨지기에 함께 나누기로 결정했습니다.”

해명으로 시작했습니다.

 

1.

밥을 준비할 때 요리를 가르치기보다 아이들이 나를 돕는다고 생각했다,

가르치는 건 다른 샘들로도 충분하다고.

주로 손님 왔을 때, 해주고픈 게 있을 때, 아이들이 바쁠 때, 그리고 해날큰밥상을 준비하며

나를 도와 달라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배움의 한 방식이라는 생각도 했다.

무언가를 잘 하는 방법 가운데 ‘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보는’ 것도 중요하다.

자고로 보고 배우는 법이다.

한편, 때깔 나는 요리는 하고파하지만

그것을 위해 재료를 다듬고 설거지를 하는 건 다들 꺼리기 쉽기에

그걸 배우는 것부터가 요리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없잖았다.

하여 오히려 요리보다 뒷배 노릇을 더 많이 맡겼다.

 

2.

어제 아침, 명상하듯 밥을 했다고 했다.

꺼리는 마음으로 한 적이 단 한 번도 이전까지 없었다.

그러나 어제는 달랐다.

바빠서, 하기 싫어서, 쉬고 싶어서, 주말이라서,

그런 마음의 친구들은 이해하면서

바쁜 일이 있어 설거지를 도와주지 못하겠다는 어른의 상황은 이해하지 못했다,

외려 짜증내고 성질부리고 성깔내면서.

여태껏 같이 애써서 함께 산 어른에게 그렇게 대하는 건 심했다.

타인에 대한 태도로서도 화가 났다.

참 이 아이들 이기적이구나 생각했다.

돕는 것도 힘이 안 되는 부분을 돕는 것,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는 게 아니다.

 

3.

어제 승마장에서 아주 잠깐 불편함이 있었다.

어른의 생각이 자신과 의견이 다를 수도, 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 친구의 코웃음과 말과 손짓, 그 태도에 아주 놀라고, 황당하고, 화났다.

그거, 자기는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가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마음 상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면서 류옥하다가 여러분과 갈등한 시간에 대해 처음으로 이해하는 시간도 되었다,

저 아이 마음이 이랬겠구나 싶은.

무시하고 함부로 대할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사는 일이 가끔 구차합니다, 이런 것까지 이렇게 정리하며 생각해야는가 싶어.

뭐 달래 표현하면

가장 잘 품어주는 사람이라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지, 할 수도 있는 것을.

음... 안하자니 복장 터지고 말 하자니 치사하고 치졸하고 쪼잔한 일,

그런 것이야말로 '생활' 혹은 '삶'이겠습니다.

그러므로, 필요하면 말, 그거 해야지요.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나눔 시간이 있었습니다.

죄송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이었다, 실수했다,

황룡사 사건 뒤로 벌써 그 마음 그 생각 잊었다, 반성한다,

집에 돌아갈 날짜가 가까워 들떠만 있었다,...

하여 우리들의 아침은 다시 기분 좋은 출발선이 되었더랍니다.

 

달날은 종일 농사일을 비롯하여 몸을 써서 일을 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제가 아이들과 활동하는 날이 아니나 준환샘 없으니 들어갑니다.

희진샘이 있긴 하나 컴퓨터 앞에서 할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소사아저씨와 두 패로 나뉘어 감자밭과 간장집 앞으로 갑니다.

승연샘도 호미 들고 나와 소사아저씨네랑 감자밭으로 갔지요.

“손으로도 쉽게 뽑혀 수월했어요.”

간장집은 남새밭 가는 길과 간장집 처마 아래 풀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다운이와 진하가 잠시 틱틱거렸네요.

기복이 심한 진하가 오늘은 영([여엉]) 일이 안됩니다.

“거기 좀 뽑지?”

다운이가 그예 진하에게 한 마디 보냈지요.

“왜 신경 쓰는데...”

진하는 또 툴툴거리구요.

“신경이 쓰여서...”

다운이도 느릿느릿한 말투로 마저 한 문장 보냅니다.

그러다 또 제 일을 하지요.

간장집 앞에서는 30여 분 침묵하며 풀 뽑기도 하였습니다.

가끔 여름이면 이른 아침 해건지기에서

아이들과 침묵하며 풀을 뽑고는 합니다.

명상에 다름 아니지요.

감자밭에서는 수다가 일을 밀고 갔더라나요.

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보는 거지요.

 

오후에도 풀을 뽑습니다.

이즈음의 많은 일들이 그러합니다.

간장집 가는 길과 큰 해우소 앞으로 또 두 패를 나누었지요.

‘...정말 이젠 풀뽑기는 질렸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잡일 3대 중 들어간다. 그런데 또 오후에도 이런 일을 했다. 최악이였다. 풀뽑기 정말 이제 질렸다. 풀뽑기를 할 바엔 차라리 문제집을 풀 것이다...’(승기의 날적이 가운데서)

승기야, 싫고 좋음을 떠나 해야 할 일이 있지요, 우리 생! 하하.

 

다운이가 지난 흙날이던가 미팅을 신청했습니다.

햄버거 패티 만드는 법과,

생태적으로 더 할 수 있는 방법 찾기,

나머지 하나는 영어회화를 잘 하는 방법이었나요?

시간을 잡아야 하는데, 어째 날마다 닥친 일이 폭설마냥 쌓입니다요.

 

우리는 변함없이 대해리에서 살고, 사람들도 늘처럼 대해리를 드나듭니다.

기락샘과 승연샘이 나가십니다.

급히 유사충무김밥을 만들어

건어물반찬과 열무김치를 넣은 도시락을 챙깁니다.

그런 게 또 재밌는 이 산골살이이지요.

그 자리로 희영샘 들어오셨네요.

그런데 미국인 친구 케라가 오지 못했습니다.

아이들 주려고 사탕 사러 들어갔다 그만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전화를 해왔더라지요.

그래도 이래저래 고맙습니다.

Phone English도 있더라며 아이들이 원하면 시간을 정해 통화를 하겠다는 그.

그런데 뭐 그렇게까지야...

 

준이 눈이 아프다 했습니다.

가끔 그래왔지요.

만들어둔 안약을 다 썼고나,

하여 다시 안약통에 물을 섞어 비치해두었습니다.

김유도 아팠습니다, 배가 아프다 했고 열도 많았습니다, 밤새 앓고.

학교로 다시 내려와(이런 때 차의 고마움!) 두부와 밀가루를 으깨고

구급용으로 만들어둔 복용약을 챙기고, 침통도 챙겨 다시 올랐지요.

밤새 두 시간마다 아래층으로 오르내리며

이 아이네랑 얼마나 통화가 하고팠는지요.

(이게 참 넘의 학교 아이들이다보니 여러 경로를 거쳐 통화를 해야 해서...)

병력을 알면 도움이 클텐데, 최근 아이의 상황도 알면 도움이 되다마다요.

물론 병원이 더 쉬울 수 있지만

때로 병원인들 우리 몸을 얼마나 알던가요.

어차피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방법을 찾지 않던가요.

응급실로 가서 사람 고생만 시키는 경우도 허다히 봤습니다.

물론 머리 안에서 끊임없이 고민하지요, 가나마나로,

두려워도 하면서, 병원에 가지 않아 문제가 더 크지진 않나 하고.

그럴 땐 찾지 않던 신을 찾으며 오직 간절함으로 에너지를 모아봅니다.

(혹 직업이 의사이신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그저 몸이 아프면 자기 생활을 돌아보며 습을 고치려 애쓰는 방식으로 병을 치유하려드는

우매한 사람으로 치부하시길.

아무렴 당신들이 전문가이시다마다.)

그 전화 한 통이 너무나 아쉬운 하룻밤이었더랍니다.

그렇게 날밤을 세우다시피한 아침이네요.

열은 조금 가라앉았으나 미열 계속 남아있습니다.

피 철철 흘리는 상황은 아니어

상태를 보고 병원행을 결정키로 하였답니다.

제발...

 (* 글이 더디니 걱정들 하실라, 아이 지금 멀쩡합니다요! 6/14)

 

참, 다형이가 한밤 찾아와 죄송하다는 한 마디를 하며 펑펑 울었습니다.

어제 승마장에서 있었던, 좀 지나쳤던 자신의 태도 때문이었지요.

압니다, 아다마다요.

제(자기) 실수가 얼마나 후회스러웠을지요.

우리 모두 그런 실수들을 더하며 생을 살지요.

문제는 그것을 인지하고 변화시킨다는 것!

너도 나도 보다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그런 마음들이 생을 건강하게 밀고 가는 것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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