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장마가 닿았답니다.

제주엔 비 내렸다 하는데, 여긴 하늘 꾸덕거리고만 있네요.

오래 가물었습니다.

 

아침 해건지기.

이번 주는 단식일정이 있어서도 새천년체조나 가벼운 몸풀기 뒤

둘째 마당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오늘은 윗마을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길가 딸기 오디 지천이지요.

빠알갛게 그리고 까맣게 잘도 익었습니다.

손이 닿지 않아 저 혼자 흥건토록 익은 것들을 따니

제비새끼처럼 아이들이 받아먹었지요.

아침 밥상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한 움큼 따옵니다.

 

여느 나무날이라면 오전 준환샘이랑 농사일을 하고,

오후엔 미죽샘이랑 한국화를 그렸을 겁니다.

헌데 준환샘은 선미샘 수술바라지를 서울서 하고 있고,

한국화샘은 미술대회 심사를 가셨습니다.

하여 오전도 오후도 농사일을 하리라 희영샘한테 말 건네 놓았네요.

“오전엔 열매들 따고, 오후엔 그걸로 요리합시다!”

따는 것보다 먹는 게 더 많으리라 짐작이 어려지 않지요?

 

산딸기와 오디를 땁니다.

“... 따는데 평소 모습 다 나오더라.”

같이 움직인 희영샘이 전합니다.

그 ‘평소모습’이란 말로 그려지는 풍경이랑 전하는 말이

어쩜 그리 똑같던지요.

선재 묵묵히 따고 있고,

다운이는 열심히는 하는데 자기 세계에 빠졌고,

우리들의 해수님 천지로 해찰을 다니고,

가야 하은 강유는 열심히 자기 입에 따 넣고,

남자아이들 역시 입이고 손이 시퍼렇도록 한가득 와그작거리고 있고,

거기 일 열심히 한다는 하다도 어느새 그 틈에서 먹기 바쁘고,

여해는 자기베이킹 재료를 모으고,

진하, 기복이 크게 심하긴 하나 자기가 집중할 목표가 있으면 아주 열심히 하지요.

그때 수녀님은 마당가에 있는 밭딸기를 다 따내고 있었습니다.

그 잘디 잔 것들이 5킬로그램을 넘었더랬지요.

 

산딸기는 백설기로 쪘고, 밭딸기로는 쨈을,

그 쨈의 일부는 다시 두 판의 딸기파이 위에 얹혔습니다.

한 판은 쫀득쫀득, 다른 판은 바삭바삭.

오디는 효소가 되었구요.

수녀님이 밥솥에 쨈 하는 법을 일러주셨는데,

양이 많아 넘쳐 온 가마솥방이 딸기쨈으로 범벅되어

향내 천지를 돌아 우리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더랍니다.

‘돌아와서 떡과 파이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눈물 날 거 같다.

정말 맛있었고, 또 해먹고 싶다.’(선재의 날적이 가운데서)

(근데 아무 생각 없이 남은 걸 한 조각 잘라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이런!

단내에 단식기간임을 그만 잊었던 거지요.

토해내느라 한바탕 소동.

사람이 생각을 놓치기가 그리 쉽습니다요.)

 

아침, 혼비백산한 듯 면소재지에서 돌아왔더랍니다.

이런! 우리 집 소식을 밖에서 듣고 온 거지요.

떡집에 쌀가루를 빻으러 갔다가 차를 돌려오는데

하필 거기가 파출소 앞입니다.

“안녕하셔요, 애쓰십니다!”

“아, 물꼬 교장선생님 아니세요?”

그제 아이들 사이에 있었던 사건, 일명 황룡사 2탄, 혹은 돌담길 사건에 대한 묘사를

한 경찰로부터 듣고 오다니...

선생은 무릎 꿇고 울며 절하고,

아이 하나는 엎어져 소리소리 지르고,

간질환자인 줄 알았답니다.

가출한 청소년들 같다며 어떤 이가 신고를 해서 출동했더라나요.

대충 서로 부딪힌 줄이야 들었건만,

길바닥에서 그토록 난리였는 줄은 몰랐더랬습니다.

좁은 산골마을, 낯붉히며 얼른 돌아왔습지요.

 

그 심란한 마음을 알기라도 했는 양

오늘 머물고 있는 한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편지가 닿았습니다.

먼저, 직장 일에 온 에너지를 쏟느라 집안일이며 먹이는 데 아쉬움 많았는데,

고맙다셨습니다.

‘음식이야말로 먹어본 사람만이 맛도 알고 해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 일어난 몸싸움에 대한 죄송함과 안타까움,

더하여 위로가 있었지요.

하다에게도 큰 위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도 제(자기) 마음 알아주지 않는다 서운했던 아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겁니다.

부모님들 마음이 그렇다시더라 전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면소재서 돌아오자마자 희영샘한테 한바탕 쏟고,

저녁답엔 마침 교무실을 찾아온 하다한테 경찰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욕하는 순간 집을 떠나는 거라고 어릴 적부터 워낙 들어왔던 터라

제 욕에 먼저 운동장 스무 바퀴부터 뛰고 왔데요.

“욕하지 마라!”

무슨 말을 더합니까, 짧게 한 문장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러도록 감정을 키우지 마라!”

바로바로 해결을 시도하라 그랬지요.

“감정을 표현할 다른 방법을 찾아봐라. 일단 지난 행동은 네가 심했다.”

나중에 들으니, 밤에 한데모임에서 아이들에게 사과를 했다 합니다.

날적이에도 그리 적고 있었지요.

‘...‘내가 피해를 끼쳐서 죄송하고, 모든 게 내 탓이었고,

앞으로 잘 지내자, 노력하겠다’ 고 했다.’

(단식 기간엔 이래서 사람 만나는 걸 덜합니다,

자극이 덜 가는 게 좋으니.

마음이 상하며 몸이 힘이 좀 들었네요,

다른 때라면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가뿐할 단식 사흘째인데.)

 

박경원님 다녀가십니다.

열무랑 얼갈이배추 다 뽑아내서

읍내에서 점심을 두어 차례 가서 먹었던 곳에 보내려는데,

단식기간이라고 오랜 운전은 삼가고 있는지라

연락 넣으니 다녀간다셨지요.

그 편에 목조건축물을 지으면서 나온 조각나무와 땔감들이 왔고,

예서 필요한 장도 봐오셨네요.

고맙습니다.

최근 그렇게 티벳불교에 귀의한 이들과 교류가 깊습니다.

 

가끔 국내 소식을 미국 친구한테 더 잘 듣습니다.

최근엔 어렵게 자란 한 청년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자기 몫의 생을 사느라 모두가 애씁니다.

우리 아이들도 또한 그럴 테지요.

 

김유가 오늘까지 죽을 먹었습니다.

잘 이겨주어 고맙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된장죽 먹고 싶다 했지만

부엌에 들어간 샘한테 잘렸지요.

슬쩍 그걸 고자질(은 아닌데...)하는 김유를 저도 외면했네요.

“끓인 밥만도 괜찮아...”

언젠가 한 샘이 번번이 옥샘이 얼른 죽 내놓고 그래서

애 엄살 는다고도 해서 말이지요.

헤헤, 저들 어미 없어 아프기도 더한다 싶어 짠해서 그리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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