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날큰밥상’을 샘들한테 부탁했습니다.

샘들이나 애들이 없으면 모를까,

하기로 한 것이지만

단식 이레에 굳이 제가 들어가서 밥을 해야겄냐고 말이지요, 하하.

근데 여샘은 교회 가고 희진샘은 달골에서 안 내려오는 바람에

아이들이 부엌으로 갔더랍니다.

된장죽과 반찬들이 그런대로 먹을 만하게 나왔건만

해날마다 푸지게 먹던 결이 있어

밥상을 물리고도 한참을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던 아이들.

 

달골에서 책상에 앉았다 시계를 보니, 으윽, 12시,

미국인 친구가 버스로 들어오기로 했더랬답니다.

부랴부랴 내려오니 벗은 들어와 있고,

아이들은 벌써 밥 다 먹고 설거지 마지막 행주를 빨고 있었지요.

벗을 위한 점심을 준비합니다.

된장을 잘 먹고 채소를 즐기는 그이지요.

그래서 자주 읍내에서도 밥을 같이 챙겨먹고는 합니다.

교회 갔던 희영샘도 돌아와 함께 밥상 앞에 앉았네요.

 

케라가 아이들을 위해 새우깡과 카스타드(?)를 사왔습니다.

고래방에서 배드민턴과 탁구를 하고

수행방 이불 위에서 뒹굴기도 하고

책도 읽고 산책도 하고 복식조로 경기도 하던 아이들,

모다 몰려왔지요.

하지만 얼른 먹고 돌아서서 또 나가는 아이들.

“어색해서...”

케라는 아이들 때문에 왔는데,

아이들은 멀찍이 떨어집니다.

그나마 다운이와 진하가 용기를 내서 다가와

운동장에서 같이 배드민턴도 치고

감꽃도 주우러 갔지요.

계곡에 들어 발 담그고도 놀았습니다.

희영샘과 저도 동행했더랍니다.

 

“옥샘이 계시면 뭐 먹을 수 있는데...”

그러다 아이들은 새참 대신

4시부터 저녁밥을 해먹겠다고 부엌에 갔습니다.

5시 버스를 타고 나갈 친구를 위해

먹고 갈 걸 좀 장만하자 하고 들어갔더니

일찍들 밥을 해서 같이들 먹을 거라데요.

뚝딱 비빔밥 해서 먹습디다.

희영샘은 케라한테 상추도 챙겨주었구요.

 

다형이가 목과 발에 두드러기 일어났습니다.

“언제부터 이랬니?”

엊그제부터 가렵더니 그렇더랍니다.

뭘 잘못 먹었을래나, 풀독 때문이려나, 볕 때문은 아닐려나,

원인이야 잘 모르겠지만

뭔가 일어나는 건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니 좋은 것입니다.

감식초를 물과 섞어 수건으로 부위를 닦아내고

녹차를 우려 다시 그 위를 여러 차례 닦습니다.

심하면 달날 병원에 가보기로 하지요.

 

밤, 약과를 만듭니다.

오늘은 해둬야 하루 동안 집청에 담가 건져

모레 아이 생일날 낼 수 있을 겝니다.

애들한테 남은 날 많지 않은데 아쉬운 건 없느냐,

내가 더해줄 건 없겠느냐 물으니

“하다 생일날 맛있는 거나 많이...”라 했습니다.

지난 5월 생일이 들었던 다형과 강유에게도 물었지요.

내가 지난달보다 시간이 조금 여유로운데,

혹 하다 생일이라고 더 신경 쓰는 것 같아 서운할까 싶다했더니

아니라고, 절대 절대 아니라고,

그저 맛있는 거나 많이 많이 하면 좋다 좋다 했습니다.

그래서 졸지에 생일상 거하게 차려내야 하게 됐지요.

바게트도 오늘 밤부터 굽습니다.

몇 판 구워야 실컷 양껏 먹을 테니까요.

어, 근데 등짝이 좀 아픈 걸요.

단식을 하면 그렇게 약한 부위들이 사르르 올라온단 말이지요.

 

남도 어머니로부터 전화입니다.

집 앞에 감자를 키우셨습니다.

아이들 와 있다고 캐낸 감자 두 박스를 보낸다시지요,

떡이며 오이지며 말린 생선이며 얼린 대합살이며 몇 가지 반찬도 그 편에.

얼마나 바리바리 싸실 것인가요.

나이 먹어도 어머니 그늘에 늘 삽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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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12.해날.흐리멍텅 / <숙제 주식회사>

 

  ‘숙제 주식회사’는 ‘숙제 주식회사’위원들이 한 해(6학년)동안 특이한 선생님과 과거, 미래, 현재를 탐구하는 이야기다.

  과거는 무엇인가? 야만스럽고 미개한 것?

  현재는 무엇인가? 지금?

  미래는 무엇인가? 기술의 발달? 컴퓨터? 달나라에 가는 것?

  그렇다면 과연 현재는 과거보다 덜 야만스럽고, 미개해졌는가? 답은 ‘아니다’. 숙제를 학생들에게 시키고, 입시에만 집중하게 만들며, 그냥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들을 일을 못한다고 자른다.

  미래는 더욱 발전할까? 아이들은 달나라, 수영장, 로봇을 가진다고 하고,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달나라를 가고, 수영장을 가지고, 로봇이 생기는 것은 소수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몇 만 명에 한 명인 사장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과연 미래는 덜 미개해지고, 얽매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래에는 입시가 없을까? 정답은 또 ‘아니다’일 것 같다.

  결과적으로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미개하긴 마찬가지인 거다. 다만 과거는 강제적인 게 많았지만, 지금은 나 같은 홈스쿨러처럼 길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미래는?

  내가, 우리가 할 일은 차츰 세상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바꾸는 것이다. 나부터도 친구들과 평등하게 생각하고, 입시 등에 반대하여 살아갈 것이다.

  좋은 교훈과 미래, 현재, 과거의 개념을 잘 설명하고, 알게 된 책이다.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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