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미처 점검 못했던 몇 가지를 챙기느라

부산한 아이들 덩달아 허둥거렸습니다.

그간 베이킹을 위해 여해가 써온 달골 냉장고도 열어봅니다.

“다 했어요, 제가 도와서.”

어제 여해 대신 다운이가 대답했더랬지요.

웬걸요, 냉장고를 채우고 있던 재료들이 다 나왔을 뿐이었습니다.

청소를 하라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여유로이 해도 될 것인데, 왜 굳이 그 바쁜 아침 닦으라 했을까요?

준이와 하은이의 못다한 과제물도 하고 가라 이릅니다.

어차피 떠날 곳이니까, 라는 그 무책임을 책임으로 전환시키고 싶었던 거지요.

계자를 다녀가는 아이들과 늘 강하게 나누고자 하는 바로 그 ‘정리’!

정리한다는 것은 결국 책임짐을 뜻하지요.

아이들 신상기록을 여태 안 남겼다는 것도 이 아침 생각났습니다.

부랴부랴 종이 한 장씩도 돌렸습니다.

 

갈 준비에 집중하라고 제가 밥을 하마 합니다.

달골에서 이러저러 챙기고 내려오니 시간이 여유롭지가 않았지요.

비가 많아 일정이 조금 늦춰질 듯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영현샘과 소사아저씨를 부엌으로 불러들입니다.

소사아저씨는 부엌일이 아주 더디신 분인데도

서두를 때마다 함께 움직인 호흡은 이런 아침 빛을 발하지요.

거기다 영현샘의 움직임, 이야!

언젠가 ‘무식한울어머니’ 뒷배 노릇하느라 땀을 빼니

(손이 좀 빠르셔야 말이지요, 잠시도 쉬지 않고 후딱후딱 어찌나 눈 깜짝할 새 일이 되는지)

한 친구가 그랬습니다.

“옥샘, 힘드시지요?”

“그러네.”

“남들이 옥샘이랑 일할 때도 그래요.”

아하, 그러고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살피게 되었더랬답니다.

그런데, 아침, 그 빠른 속도를 영현샘이 따라 다 움직입디다.

많이 해보셨구나, 감탄에 또 감탄이었지요.

언제 계자에 같이 밥바라지 하는 날도 왔으면 좋겠더라니까요.

그는 지내는 내내도 탄성을 자아냈더랍니다.

기대가 워낙 낮아서 그랬을 려나요, 하하.

 

아침밥상을 차릴 적 선재부 오준성님과 가야부 윤성한님 오셨습니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동안

부모님들이 돌아가며 행렬 뒤에서 지원을 하기로 하셨지요.

설거지를 부탁드렸네요.

그리고, 10시를 넘기며 아이들 떠났습니다,

비옷을 입고 신발에도 비닐팩을 씌우고, 단체사진 하나 찍은 뒤.

류옥하다는 황간까지 아이들을 바래러 갔습니다.

물꼬를 떠나 26킬로미터 지점에서 점심을 먹을 참이지요.

그곳서 마지막 인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자전거들을 보내놓고 우선 보이는 부엌부터 정리를 좀 합니다.

싱크대 후미진 곳의 물때가 말이 아니었지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애쓰며 정리하고 갔지만

(그것들이 한 최선을 보는 것도 즐거웠더랬습니다.),

그렇더라도 아줌마들이 들어가는 부엌만이야 할까요.

싱크대 너머 바닥으로 떨어진 수저들이며 뒤집개가 저 구석에서 나오고,

깨진 그릇들이 구석에 감춰져있다 모습을 드러냈으며,

깨진 작은 항아리 뚜껑도 거기서 나왔지요.

아, 아이들 다녀간 흔적입니다.

마음이 일렁였습니다.

‘돌아들 갔구나...’

그릇 엎는 바구니며 수저 물 빼는 통이며

시커멓게 얹힌 지난 몇 달의 때들을 벗겨내며

허전한 마음을 달랬답니다.

 

아이들이 점심을 다 먹었겠다 싶은 시각 12시 30분 황간에 도착했습니다.

수박을 잘라가 입가심으로 넣어주고 헤어졌지요.

옥천 청산을 향해 자전거는 달려갑니다.

물꼬발 50킬로미터 지점에서 첫 밤을 보낼 테지요.

3시를 갓 넘기며 숙소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더랬습니다.

무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다랑 비에 젖는 월류봉을 갔습니다,

자전거 한 대를 앞세우고, 깜빡이를 켜며.

아이는 자전거여행에 합류하지 못한 아쉬움을 그리 달랬습니다.

비에 젖는 월류봉과 불어난 계곡물을 들여다보다가

그곳의 전동춘샘 댁도 잠시 들러 차 한 잔 하고 나옵니다.

우리들도 짧은 이틀의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자전거를 싣고 김천으로 넘어갔지요.

영화를 보고 책방을 갈 겁니다.

그리고 어딘가로 가겠지요.

 

영화관엔 우리 말고 단 한 사람의 아저씨가 관객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책방에서 발견한 절집 사진,

그찮아도 어느 산 속 절집을 들리리라 싶더니,

그곳을 가자 싶었습니다;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태조산 도리사.

절 아래서 묵고 내일 도리사 들어가려지요.

 

밤,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을 봤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못나가는 인생들을 담는 임순례 감독,

그린 속도가 좋고

그저 자기 생을 사는 소처럼 그렇게 걷는 인물들이 좋고

피터 폴 앤드 메리의 노래들과 추억이 좋았습니다.

메리의 ‘500miles’는 아이랑 즐겨 부르는 노래입니다.

장뤽 고다르와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냄새도 살짝 났지요,

그만큼 강렬하진 않았지만.

그런데, 영화 초입 싸우는 선배로 나오는 친구가 안면이 있었는데

이름이 가물가물,

물꼬에서 어린이극단을 꾸릴 적 도우러 왔던 익남샘이었습니다.

반가웠다마다요.

그렇게 자기 길에 서 있으면 이렇게 또 보게도 되는구나, 그런 감흥에 젖었지요.

주인공 현수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아 조금은 안타까웠고,

영화 속의 꿈이 축을 잘 갖지 못하고 그만 공허해져서도 안타까웠지만

소가 영상으로 소비되지 않고 같이 추억을 공유하는 한 존재가 되어 좋았습니다.

마치 죽은 피터 대신하여 존재감이 들어갔다 할 꺼나요.

잘 봤습니다.

 

그런데, 달골 열쇠를 희진샘이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가셨네요.

탐이 났던 게지요, 하하.

어쩌나...

다른 여분의 열쇠가 바로 창문 안쪽 창틀에 놓친 채 문이 잠긴 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2716 2011. 6.30.나무날. 서울 오는 길 위 빗방울 / 이동학교 마침표 옥영경 2011-07-11 1333
2715 2011. 6.29.물날. 볕 쨍쨍 옥영경 2011-07-11 1289
2714 2011. 6.28.불날. 볕 나다 흐려가던 오후 옥영경 2011-07-11 1299
2713 2011. 6.27.달날. 볕이 옥영경 2011-07-11 1334
2712 2011. 6.26.달날. 비 옥영경 2011-07-11 1212
2711 2011. 6.25.흙날. 비 옥영경 2011-07-11 1224
» 2011. 6.24.쇠날. 비 / 이동학교 자전거여행 첫날 옥영경 2011-07-09 1381
2709 2011. 6.23.나무날. 후두둑 비, 감꼭지도 옥영경 2011-07-08 1259
2708 2011. 6.22.물날. 마른 장맛비 / 모심을 받다 옥영경 2011-07-02 1307
2707 2011. 6.21.불날. 아주 잠깐 비 지나다 옥영경 2011-07-02 1064
2706 2011. 6.20.달날. 폭염주의보 이틀째 옥영경 2011-07-02 1416
2705 2011. 6.19.해날. 맑음 / 보식 7일째 옥영경 2011-07-02 1242
2704 2011. 6.18.흙날. 맑음 / 보식 6일째 옥영경 2011-07-02 1120
2703 2011. 6.17.쇠날. 흐려가다 밤비 / 보식 5일째 옥영경 2011-07-02 1342
2702 2011. 6.16.나무날. 맑음 / 보식 4일째 옥영경 2011-07-02 1227
2701 2011. 6.15.물날. 맑음 / 보식 3일째 옥영경 2011-07-02 1238
2700 2011. 6.14.불날. 맑음 / 보식 2일째 옥영경 2011-06-18 1998
2699 2011. 6.13.달날. 여름으로 치달아가는 / 보식 1일째 옥영경 2011-06-18 1357
2698 2011. 6.12.해날. 황사인가 / 단식 7일째 옥영경 2011-06-18 1287
2697 2011. 6.11.흙날. 맑음 / 단식 6일째 옥영경 2011-06-18 130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