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3.해날. 비

조회 수 1242 추천 수 0 2011.07.11 23:17:09

 

 

대해리도 비가 많았다는 소식입니다.

여긴 서울.

호우주의보 내렸습니다.

 

책방에 다녀왔습니다.

도시에 나오면 아이랑 꼭 하는 일이지요.

백화점 부근이었습니다.

마치 몰랐던 일이기라도 하는 양 도시가 정말 소비적인 공간임을 실감합니다.

“한국 사람들 정말 옷 잘 입어.”

“저렇게 잘 입어서 일자리가 창출 되고 경제가 돌고 그러는 거야.”

사회학자와 주고받은 한 대목입니다.

신간코너에서 따끈따끈한 책 하나 집어 선 채로 훑어봅니다.

<도시의 승리-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에드워드 글레이저/해냄출판사/2011.06.27)

도시의 발전, 그리고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

결국 도시의 승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오히려 도시가

더 인간답고 건강하며 친환경적이며 문화적경제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라고까지 하는.

건물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만 될 수 있다면 말이겠지요.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요?

학교는 가야해, 그렇게 시작하면 다음은 어떻게 가야 할까로 물음이 이어지지요.

그것은 애초 학교를 가야하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거지요.

그런데, “학교, 그거 가야해?” 라고 묻는다면

답은 또 달라지지 않겠는지요.

 

오늘 아파트에서 건너오는 소리들을 듣다가

꼭 두 해 전에 한 잡지에서 청탁을 받아서 송고했던 ‘산마을에 깃들다’를 생각해냈습니다.

글의 마지막은 이러하였지요.

 

  살아 숨 쉬는 것들이 갖는 경이를 찾아 산골로 찾아든 열네 해째, 깃들어 산지는 십년이 다 되어 갑니다. 서툴지만 차츰 흙내가 배는 삶이 하늘 고마운 줄 더욱 알게 합니다. 포도, 쌀, 그리고 버섯과 호두와 은행, 남새밭의 푸성귀들보며 비가 와서 고맙고, 하늘이 맑아 고맙고, 바람이 불어 고맙고, 볕이 두터워 고맙고, ...

먼 길을 다녀와 좀 고단하여 조금 늦게까지 누웠던 어느 아침, 윗집 할머니 수돗가에서 쓰고 버린 물이 쫄쫄거리며 또랑을 따라가는 소리가 내려오고 아랫집 할머니의 솥뚜껑 여는 소리가 건너오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선 거슬리거나 신경 쓰이던 소리들이 예선 정겨움이 됩디다. 소리들이 이 집과 저 집을 경쾌하게 ‘건너다니’지요. 산골의 날들, 움트는 것들이 들려주는 소리로 봄밤 잠 못 들고 꽃봉오리 피는 소리에도 뒤척이고 봄 언덕에 내려앉는 햇살 같이 달빛이 어깨 위로 내립니다. 더덕향으로 잠을 설치는 늦봄, 개구리소리 천지를 채워 잠 못 드는 초여름 밤, 단풍이 뒤덮이는 가을이 낮에는 눈으로 밤에는 귀로 스며듭니다. 산골에선 산다는 건 그런 ‘소리’들 속에 산다는 것이기도 합디다.

 

  그러나 산골에 살아도 시대로부터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어디 쉽던가요. 진정성으로 국민을 감동시켰던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던진 사건은 이 산골 삶도 흔들어 49재 탈상하는 오늘까지 상복을 벗지 못했습니다. 시민불복종 같은 저항의 방식이었다고나 할까요. 이미 가난을 선택하여 들어온 이 산골살이 또한 현 지구위의 자본 중심의 삶에 대한 불복종이고 저항이었겠습니다. 곳곳의 작은 행동이 사소한 계기를 통해 광범위한 사회운동으로 얼마큼 뻗어나갈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지 않게(노래 ‘나이 서른에 우린’ 가운데서) ‘나는 저항’ 중이지요.

 

대해리를 며칠 떠나 있으며

물꼬 혹은 저를 둘러싼 몇 관계를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지요.

화두를 품고 정진하는 구도자에게는 반드시 시절인연이란 게 있다 했습니다.

한동안의 세월을 지내다 보면

필연적으로 화두를 푸는 때가 있기 마련이라는 거지요.

깨달음에서는 그렇게 화두를 타파한 것을 시절인연이라 일컫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도 그렇습니다.

시절인연으로 그가 내게 왔고,

그가 내게서 갑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시절인연으로 다른 그가 내게 오지요.

그리고 그가 가는 날도 있을 겝니다.

사람 사이만 그러할까, 물건도 일도 그렇겠지요.

그저 흐릅니다.

허니 시절인연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혹은 꼭 피하려고 해도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만나는 듯하나

그 전에 만날 씨앗을 품고 있다가 시간적 공간적 연이 닿아 만나는 거지요.

당신도 나도 시절인연입니다려,

나의 적이어도, 나의 우군이어도.

'내일이 먼저 올지 다음 생이 먼저 올지 아무도 모른다'던가요.

사는 동안 그저 애써서 만날 일입니다.

 

음... 마음이 자꾸 새는 요즘입니다.

정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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