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5.불날. 맑음

조회 수 1117 추천 수 0 2011.07.18 21:23:58

 

산짐승들 부스럭대는 소리 건너오는 한밤입니다.

날이 좀 말랐으니 저들도 옴작거리리라,

사는 꼴이 너나 나나 똑같다 싶지요.

 

오랜만의, 볕 같은 볕이었습니다.

달골 거풍을 했지요.

거풍(擧風)...

쌓아 두었던 물건을 바람에 쐴 때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들 거’자가 참 매력적입니다.

들 거, 거기엔 ‘온통’, ‘다’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낱말 조합이 마치 시 같이 느껴져서 퍽 좋고,

거풍 뒤의 개운함이 또한 좋습니다.

 

식구들이 밖에서 옥수수밭 호박밭 콩밭 풀들을 정리하는 동안

보리수열매를 따고 효소를 담았습니다.

서울 간 며칠, 이게 젤 마음 쓰였습니다.

마당에서 혼자 발갛게 지치고 있을 그것들을 생각했지요.

 

어제로 145번째 계자 마감입니다.

아이가 행정일을 돕습니다.

통화도 그렇습니다.

먼저 자기 이름과 나이를 밝히고

그래서 상대가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를 할 수 있나 가늠토록 한 뒤

자기 선에서 할 수 있는 답변들을 하지요.

오늘 온 한 전화는 저소득층 관련 건이었습니다.

당신 형편으로 저소득층 대상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한 전화였으나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외려 자신이 조금 무리하더라도 참가비를 온전히 내

더 어려운 아이들과 나누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하셨다 합니다.

이런 과정들은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쳐

우리가 덜 쓰고 더 어려운 이들과 나누어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했다지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낸 어머님도, 이런 마음을 먹은 아이도.

 

지난 학기 영어를 가르쳤던 학생 하나에게서

기도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아버지가 암이시랍니다.

수술을 앞두고 있다지요.

물꼬가 생각났다니 고맙습니다.

뭘 크게 도와달란 것도 아니고 그저 기도하는 일로도 도움이라니,

고마울 일이지요.

물꼬가 사람들의 어려운 시간에 그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어 기쁩니다.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소사아저씨 앞으로 문서 하나 왔더랬습니다.

소사아저씨는 부산에 당신 명의의 집이 있습니다.

명의만 그러하지 소유는 다른 형제가 하고 있어

변변히 주인 노릇도 못하는 집인데,

그것 때문에 건강보험료며 여러 불이익들이 적잖지요.

그래서 두어 달 전 농사를 짓고 있다는 확인서를 제출했더랬습니다.

농업인감면 혜택을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그게 해지되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다른 일에 밀려, 그렇나 보다 하고 지나치려다 다시 확인 절차를 거치는데,

기관들끼리의 불통 때문이었지요.

하여 다시 원래 자리로 가게 되었더랍니다.

늘 챙길 일입니다.

 

황간역에서 벗을 만납니다.

지난 12월부터 속을 끓이는 일이 퍽 어려운 상황으로 가자

멀리서 마음이 쓰였던 그가 얼굴이라도 보자 내려왔습니다.

대해리 들어왔다 묵어갈 형편은 아니라

역에서 서너 시간 보기로 한 것이지요.

뭐 달래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얼굴 보고 얘기 나누고

그런 게 사람살이 힘이란 걸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거지요.

식구들 밥상을 차리고 나서려다 한술 잠깐 뜨는데,

오는 그도 저녁을 먹지 않고 오겠단 생각에 미쳤습니다.

파득거리며 도시락을 쌌지요.

여름은 이래서 또 좋습니다.

비볐던 국수를 덜고, 밥 좀, 거기에 풋고추와 된장.

어두워오는 강가 너른 바위 위에서 그렇게 밥을 먹습니다.

멀리서 이렇게라도 걸음해 하는 응원도 좋고

물꼬의 좋은 뜻을 이어가고자 함도 좋고

강물도 좋고 녹음도 좋고 나누는 얘기도 좋고,

좋고, 좋고, 다 좋았습니다.

고마운 연들입니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웬 전화랍니까.

급히 연락할 길을 찾는데, 문득 무선인터넷이 생각나더라나요.

“그런 걸 어찌 알았대?”

앞으로 달골에서 그렇게 연락을 취해도 되겠습디다.

참말 종(種)이 틀린 세대들이란 말 나오지요.

그들에게 현재의 통신시스템들은 배우지 않아도 ‘그냥’ 아는 거란 말이지요.

그 세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가닥이기도 하다 싶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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