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13.물날. 비 오다가다

조회 수 1313 추천 수 0 2011.07.18 21:35:43

 

마늘을 패 내고 던져져있던 마늘밭을

오늘 잘 정리해두었습니다.

거기 가을 무배추를 심으려지요.

남자샘들이 빨래방 낡은 빨랫줄도 걷었습니다.

술 조금씩 하자, 결의도 하던 걸요.

그렇잖아도 요즘 Three idiots(소사아저씨, 철우샘, 봉길샘)의 술이 길다 싶더라니...

“옥샘 서울 가고 1주 가까이 내내 흐리고 비오고...”

그래서 별 한 일 없이 곡주만 바닥을 냈더라나요.

된장찌개만 끓일 줄 알았던 소사아저씨는

처음으로 오뎅국도 콩나물국도 끓이셨더랍니다.

하면 되지요.

되는 대로 먹으면 되지요.

무식한 울어머니 그러셨습니다.

다, 다 세치 혀끝이다,

그리 먹는 것에 연연할 것 없다셨지요.

 

철우샘의 오늘 그림일지엔

흙더미에 지렁이가 와글거렸습니다.

그의 그림일지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오래 머물면 좋겠습니다,

같이 그림도 그리게.

 

사람들은 곳곳 풀을 잡고,

교무실에선 계자 준비가 이어집니다.

가마솥방에선 장마 지나는 흔적들과 씨름도 하고.

어쩌면 별일인 게 없는 우리 생이려니 싶기도 한

비 감기는 산골 낮밤이랍니다.

 

어쩌다 배리 하인즈의 <케스-매와 소년>(녹색평론사/1998)이 눈에 듭니다.

펼치지요.

매를 훈련시키는 빌리를 들판으로 찾아간 파아딩 선생과 나누는 이야기에

밑줄이 그어져있습니다.

 

“...매가 날 때에는 뭔가 기인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 글쎄, 매가 날 때에는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하는 점이 있다는 말이야.”

...

“선생님이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겠어요. 세상이 아주 조용해지는 것 같다는 말씀이죠? ...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걸 알아봐요. 농부를 한 사람 아는데요, 그 사람 말이 올빼미도 그렇대요. 자기집 마당에서 밤에 쥐를 잡는 걸 봤다는데요, 올빼미가 쏜살같이 내려올 때는 귀가 먹먹해진 것 같아서 귓구멍을 쑤셔서 터지게 하고 싶대요. 그렇게나 조용해진대요.”

“그래, 맞아. 나도 그런 기분이었어. 마치......마치......정적의 골짜기, 그래, 정적의 골짜기를 나는 것 같아. 참 이상해, 그렇지?

... 이런 기분이, 이 정적이 옮겨지나 봐. 우리가 얼마나 낮은 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는지 아니? 내가 목소리를 높이니까 얼마나 이상하게 들렸어?”

“그건 매가 신경이 예민하니까 그래요. 목소리를 낮춰야 하거든요.“

“아니야, 그것만이 아니야. 본능적인 거야. 그건 일종의 존경심이야!”

“알아요, 선생님. 제가 매를 데리고 나갔을 때 누가 ‘저 봐라, 빌리 카스퍼가 애완용 매를 가지고 있다’ 하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나는 게 바로 그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한테 이건 애완용이 아니에요, 매는 애완용이 아니라구요 하고 소리치고 싶어요. 길드는 거 좋아하지, 훈련을 받은 거뿐예요. 매는 사잡고 거칠다구요. 매는 아무한테도 상관 않아요. 저한테조차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리구 그게 바로 근사한 점이에요.

... 선생님, 모르시겠지요. 저는 이렇게 서 있게 해주는 것이 매가 저한테 선심을 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끔찍이 무시무시하게 보이지도 않아. 사실 어떤 때는 정말로 아기같이 보일 때도 있어. 그러니까, 그럼 뭐가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걸까?

... 내 생각엔 일종의 자부심, 그리고 소위 독립심인 것 같아. 자신의 아름다움과 용맹을 알고 그것에 만족하는 거 말이야. 그건 마치 똑바로 눈을 마주 바라보며 ‘넌 도대체 뭐냐?’라고 하는 것 같아. 그건 로렌스의 ‘만일 인간이, 도마뱀이 도마뱀인 만큼 인간이라면 바라볼 만한 가치가 있을 터인데’ 하는 시가 생각나게 해. 매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처음 읽었던 그때도 같은 생각을 했던 듯합니다.

서부로 서부로 걷던 인디언을 떠올렸고,

존재의 자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오래된 영화 제목을 기억해냈습니다.

그래 영화가 있었습니다.

찾아봅니다.

세상에나! 켄 로치 감독 거였지요.

<빵과 장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랜드 앤 프리덤> <레이닝 스톤>의 바로 그 켄 로치.

그리고 또 다른 빌리(<빌리 엘리어트>)의 발레도 겹쳐졌습니다.

아이랑 조만간 영화 <케스>를 챙겨 봐야지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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