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3시 30분 빗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산마을이 온통 젖고 있었지요.

물이 불어 집 앞 도랑이 불어 내는 소리도 건너왔습니다.

그리고 청소년계자가 있는 아침, 갰습니다!

고마운 하늘입니다.

 

계자 준비를 돕기 위해 오신다는 분들이 계셨더랬습니다.

6시에 옥천을 출발한 도움꾼들, 전영호님과 그의 후배 김생수님 김철님 최효진님,

그리고 신영순님과 중등 전혜린이 함께 들어섰지요.

도와주러 오는 길 따로 마음 쓰지 말라며

아침과 점심거리, 게다 얼음물까지 다 챙겨 오셨습니다.

전영호님이 꼭 나누고 싶다고 언제부터 입에 올렸던

보리쌀이며 우리밀가루, 계자를 위해 담근 김치도 부려졌지요.

필요했던 음반이며 등산용품도 지나는 결에 들은 것을 잊지 않고 챙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달골과 학교를 둘러친 풀들이 쓰러지고 있었답니다.

뒤란까지 예취기 다 돌려주셨지요.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고, 그것을 위해 준비를 하고, 실제 와서 힘을 쓰고,

사랑하는 일은 그런 것이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단순히 추상명사가 아니라 동사인 것이지요.

고맙고 고맙습니다.

두고 두고 갚을 일이겠습니다.

 

1박 2일 청소년계자가 있습니다.

물꼬식의 행사라고는 하지만

작은 규모의 모임은 진행과 밥바라지를 동시에 하는 구조입니다,

도움꾼이 하나쯤만 있으면 되는.

그런데 유정샘이 못 올 일이 생겼음을 자정 넘어 알려왔네요.

이런!

철우샘도 어머니 생신이어 예산 갔는데,

하기야 그러면 그런대로 또 하지요, 물꼬니까.

그런데, 그 빈자리로 신영순님과 혜린이 메웁니다.

부엌곳간을 쓸고 닦고 자잘한 손을 놀리고

점심 밥바라지로도 신영순님이 움직였지요.

장마가 그렇지요, 사이 사이 볕이 든단 말이지요.

어떻게든 살아라 살아라 하는 거지요.

물꼬 일이 그러합니다, 어찌어찌 일이 되어가지요.

그래서 늘 낙관하는 겁니다,

‘주관적 전능감’ 같은.

어쩌면 그게 물꼬의 축적된 시간일지도...

 

점심밥상에는 중고생 스물과 이곳에 사는 류옥하다,

그리고 일바라지를 온 어른 다섯, 들어온 기락샘을 더해

서른 가까운 사람들이 국수를 말아 먹었네요.

사람들이 북적이면 북적이는 대로,

없을 때의 고즈넉함은 또 그것대로,

참 좋은 이곳입니다.

 

청소년계자는 문이 많습니다.

그것을 하나씩 열어젖히는 거지요.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왜 하는가를 짚고

전체 흐름을 훑어보는 큰 안내가 먼저 있습니다.

물론 물꼬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기본이었지요.

그리고 첫째 문 앞에 섰습니다.

숙제장펼치기입니다.

나누고픈 글을 들고 왔지요.

우리 삶을 흔들어주는 글들을 공유했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글 한 구절 읽는 진현의 목소리는

우리를 안정되게 했고,

경이가 낭송하는 시도 우리 맘을 데웠습니다.

윤지는 지난 겨울 수현과 옥샘이 권했던 평전을 읽고 왔노라고 했네요.

그렇게 앞의 청소년계자가 뒤의 청소년계자의 거름이 됩니다.

우리 세대가 젊은 날 읽었던 책들도 흔합니다.

“옥샘은 어떻게 그 책들을 다 아세요?”

누가 물었습니다.

고전이란 그런 거지요.

부모가 읽고 자식이 읽고

그렇게 공유하며 세대와 세대가 면면히 이어지는 거지요.

말하는 사람도 정리가 되어 좋다 하고,

듣는 사람들은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했고,

가만히 앉아서 스무 편의 긁을 읽었노라 했습니다.

하면서도 들으면서도 공부가 된다는 것을 확인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아, 저는 우리가 흔히 적대시하는 파리와 모기와 바퀴벌레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전해주는 것이었네요,

그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이롭게 하는가,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

하지만 우리를 불편케 하는 그들을

같은 존재로서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뭐 그런.

 

다음 문을 여니 일명상이 나옵니다.

두 곳의 공간 청소와 바깥에서 풀을 뽑는 일.

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마무리 되어야 하는가를 익히는 시간이었지요.

‘깨어서 청소를 바라보기’라고 하면 쉬운 이해가 되려나요.

 

다음 문을 여니 계곡이 나타납니다.

여기까지 와서 이 여름날 물에 발 한번 담그지 못하면 너무 아쉬울 일이지요,

게다 땀범벅 일도 했는데.

물에 빠진 생쥐들이 길게 늘어서서 들어오던 걸요.

 

저녁을 먹고 연 문 앞에는 춤명상이 놓였는데,

그 문을 닫고 다음 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영화 한편 보았지요.

류옥하다가 도움꾼이 되어 고래방에 영화관을 차려주었네요.

어떤 게 배움인가,

사람 사이의 돈독한 관계가 우리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하는가,

삶의 진정한 성공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물음들을 나누었습니다.

벌써 자정이었지요.

 

다음 문에 놓인 ‘실타래’에선 정문 대신 쪽문을 열었는데,

짧게 자기 삶에 든 여러 장면들을 꺼내 화두로 삼았더랍니다.

결국 자신의 이야기이고,

타인에 대해 귀 기울이는 시간이었으며,

그리고 사유하는 시간이 되었지요.

 

1시가 넘어 공식적인 시간이 끝을 맺었고,

야참을 먹는 이들이 있었으며,

밤의 산마을 고샅길을 걷는 시간도 있었더랍니다.

 

처음 온 친구들이 왁자한 캠프가 아니어 낯설다하다가

이렇게 조용하게도 재밌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했습니다.

즐거움이 웃고 떠들고 부산한 움직임에만 있는 게 아니다마다요.

이곳의 질감을 잘 안고 가는 아이들이 퍽 예쁩니다.

끼리끼리란 말 있지요.

모여 보면 딱 그 말 맞다 싶습니다.

이번 청소년 계자, 참 결 고운 아이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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