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계자 이튿날입니다.

안내한 대로 깨울 때 ‘싹 하고 몸 일으키기’를 한 아이들은

깔개를 챙겨 고래방으로 건너가

길게 줄을 서서 마주보고 앉았지요.

백배 절명상입니다.

절 한 배에 가슴에 새길 말 한 마디씩을 들으며

엎드리고 또 엎드립니다.

숙이고 또 숙입니다.

바램을 새기고 또 새깁니다.

 

아침을 먹은 뒤엔 숲에 갔습니다.

청소년 계자에서 계속 열어가고 있는 다음 문이 나무하기.

이웃 봉길샘 댁 산에서 베어놓은 나무들을

아래 도로까지 끌어내리는 일이었지요.

“거기서야 나무가 무슨 걱정이야.”

흔히 산에 살면 땔나무 흔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또 아니랍니다.

어디 그 산이 내 산이냔 말이지요.

“많이도 말고 두 번만 하자!”

나무를 들거나 매고 짝을 이뤄 서로 균형을 맞춰가며 비탈을 내려갑니다.

두 차례 그렇게 나무를 내렸고,

마을길을 서둘러 올라왔지요, 얼굴들 벌개져서, 팔을 주무르며.

이 나무들이 우리들의 겨울을 얼마나 배부르게 할 것인가요.

 

엊저녁 세 시간짜리 영화 한 편 보고 났더니,

의미 있고 재밌는 영화이긴 하였으나

역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모두 둘러앉으니 포기할 수 없겠는 문을 열어야겠다 싶데요.

서로를 향한 칭찬세례!

흠뻑 젖고 또 젖었습니다.

그래요, 찾고 또 찾는 그 끝에는

이미 충분한 자신의 존재가 있는 거지요.

이리 되니 갈무리 글을 쓸 시간이 겨우 이십여 분도 안 됩니다.

하기야, 글이 다 무어랍니까,

이 아이들 마음에 얹은 것들 생각하면 까짓 글 한 줄 없는 들 무슨 대술라구요.

 

밥도 챙겨 멕여 보내고 싶지요.

아침 먹은 지 멀지 않아도

때가 되면 한껏 또 먹는 아이들입니다, 이곳에선 모든 게 다 참 맛나다며.

빵을 굽고 미숫가루를 타고...

그리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서인 현진 수현 채민 혜린 윤지 창우 경이 명은 유환 여진

윤정 가람 민수 민승 진현 동휘 주인 주원.

연규는 이틀을 더 남아 계자 준비를 돕고 떠나기로 하였더랍니다.

모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제야 이슬비내리기 시작했지요.

늘 그러하듯 고마운 하늘...

 

저녁, 봉길샘도 내려와 식구들 곡주 한 잔 기울입니다,

학교 뒷마을 호호할머니의 부고를 받고.

또 한 죽음을 보냈습니다.

바깥분이셨던 신씨할아버지 보내고 겨우 한 달,

당신이 부르셨던가 봅니다.

이 순간도 어느 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누구는 또 이 지상으로 왔겠지요.

나고 죽는 일이 그리 일상이겠으나

살아있는 우리 존재 하나 하나도 어느 날 같은 길을 가리라는 환기가

삶을 눈 부릅뜨고 마주서게 합니다.

 

참, 류옥하다는 귀수술 부위 검진을 받으러

서울을 향해 이른 아침 차를 타고 나갔습니다.

그 아이 제 삶을 그리 챙겨주니

이 산골살이가 더욱 든든합니다.

전혀 굴러갈 것 같지 않은 큰살림이

어찌 또 그리 이어지더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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