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25.달날. 흐림

조회 수 1041 추천 수 0 2011.08.03 23:49:52

 

 

아침 안개에 잠긴 산마을입니다,

꼭 수몰된 마을이 거기 있는 것 같지요.

마음도 그리 잠깁니다.

학교 뒤 댓마 호호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내고 달포나 지났으려나, 뒤를 따랐고

오늘 상여가 나갑니다.

꽃가마 타고 시집오셨던 길을

꽃상여 타고 하직하십니다.

물꼬 식구 많다고 감자와 고구마를 캐서 나눠주시고

쪽파를 솎아 들여보내주기도 하셨던,

너무 환하게 늘 웃으셔서 호호할머니로 불렸던 당신입니다.

뭐 그리 중뿔날 생이 있으려나요,

그만큼만 하고 살리라 생각게하던 당신이셨습니다.

96년 가을 대해리로 물꼬가 터를 잡은 뒤

그렇게 한 분씩 한 분씩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 살다 그리 떠나게 될 터이지요.

그저 애쓰며 살리라 합니다.

당신들과 각별했던 소사아저씨는

상두꾼들을 따라 점심도 저녁도 그 댁에서 들고 오셨습니다.

가까운 이웃 하나 그리 보내고

맘 외롭기 더하실 테지요...

 

막바지 계자 준비를 집중적으로 하는 한 주간입니다.

마침 새끼일꾼 연규가 이틀을 남아 손을 먼저 보탤 것입니다.

초등 2학년 때 맺은 인연이 새끼일꾼으로 이어지고

그 아이 고 1이 되었습니다.

물꼬 영광의 얼굴들인 새끼일꾼들이 그 이름을 그저 얻은 게 아닙니다.

움직이고 있으면 웬만한 어른들의 몇 몫을 해내지요.

교무실 곳간정리부터 맡깁니다.

계자에서 쓰이는 모든 물품들이 거기 다 있지요.

그런데도 몇 해째 먼지가 쌓인 곳도 있고,

시간에 밀려 혹은 관성으로 쓰이는 구석도 있지요.

다 끄집어내고 바람을 쏘여주고 다시 자리를 잡아줍니다.

저녁, 읍내 나가 허리에 침을 맞고 조금 더디게 돌아왔더니

기다리지 않고 밥을 올려놓았데요.

이것들이 꾸리는 세상은

아무렴 우리 세대보다 나을 것이라 낙관을 주는 그들입니다.

 

류옥하다 선수는 제주도를 향해 떠났습니다.

외국계 은행의 지원을 받아 한 환경단체에서 여는 섬캠프에 선발되는 행운을 얻더니

어제 설명회를 갔고,

거기 한 구성원집에서 묵은 뒤 아침에 출발했다는 소식 들어왔네요.

요 몇 해 이 아이가 계자 준비를 적잖게 도와왔습니다.

하기야 어디 그것 만일까요.

그런데 이 아이 없이 계자 준비기를 보낸다 더럭 무겁더니

그걸 또 사람들이 와서 메워줍니다.

이름하여 물꼬의 기적!

 

어제 이번 여름계자에 쓰일 새끼일꾼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서른 가까이 되는 중고생들이 신청을 했더랬지요.

선발 과정은 이러하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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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새끼일꾼 활동이 실제 물꼬에도 도움이 됨은 물론,

여러분들에게 역시 귀중한 공부가 됨을 확신합니다.

머리만 키우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 불구의 시대에 맞서

몸과 머리의 균형을 맞추는 건강한 공부를 지향하는 활동이니 말이지요.

 

그런데, 어렵게 마음을 내고 시간을 내셨을 텐데

참가자로 확정된 명단에 이름이 있지 않아

속상한 분들도 적잖지요?

그러게요, 도대체 무슨,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고른단 말인가요.

사람이 참 안변하면서도

한편 끊임없이 또한 변하기도 하는지라

지금의 그가 낼모레의 그라고 할 수는 없을 겝니다.

가장 큰 까닭이야 그저 필요한 자리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지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계자마다 다섯 명의 새끼일꾼.

새끼일꾼이 되려고 밟았던 과정 자체로도 좋은 공부였음을 되짚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과정에는

지난 이틀간의(7월 23-24일) 청소년계자가 중요하게 작용을 했습니다.

물꼬에서 하는 생각, 삶들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있었으며,

일을 통한 새끼일꾼 훈련과정이 있었고,

짧으나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수행이 있었답니다.

아무래도 이 과정을 함께 한 이들에게 우선 자리를 주게 된 것은

그만큼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다음으로는

기꺼이 몸을 쓰는 이들, 흔쾌하게 움직이는 이들,

온 마음을 끌어내는 이들, 일을 찾아서 할 줄 아는 이들,

미세한 긴장을 유지해주는 이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아는 이들,

뭐 그런 기준들이 등장했습니다.

정리하면, 정말 일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이었지요.

어른들끼리 틈틈이 선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네요.

많다 보니 끝에서부터 안 되는 까닭을 붙여

탈락시키는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답니다.

무책임해서, 집중하지 않아서, 기꺼이 움직이지 않아서, 안내를 잘 듣지 않아서,

아직 다른 이를 살피기에 준비가 안돼서, 독립적이지 못해서, 준비물을 챙기지 않아서, ...

 

이번에 함께 하지 못하는 이들은 꼭 겨울계자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 그리고 사이사이

빈들모임과 여러 주말일정들에도 함께 할 수 있다마다요.

 

미안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언제나 기다리겠습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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