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29.달날. 맑음

조회 수 1154 추천 수 0 2011.09.08 10:35:41

 

경주 외곽입니다.

식구들이 지낼 먹을거리를 챙기고,

한동안 비워둘 공간들 단도리를 하고

늦은 오전 대해리를 나섰더랬지요.

"거긴 안 더워요?"

어제 서울과 대전에서 그리 전화가 들어오기도 하더니

열기 심상찮다 하고 나선 길이었습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거라는 한 주네요.

 

경주라 하니 선배 왈,

계자로 애썼으니 고도(古都)에서 쉼이 마땅하다는 문자가 닿았지요.

웬걸요, 일하러 왔습니다.

한주 손 보탤 일이 생겼지요.

과부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손발 늘 아쉬운 물꼬, 사람들이 와서 숨통이 되듯

그 마음 헤아려 달려왔습니다.

돕는 일이 신세지는 것이어선 아니 되겠기에

침낭에서부터 베개까지 싣고,

또 밥을 해먹을 수 있도록 바리 바리 싸서 왔지요.

마침 오래 소망하던 바램 하나를 이 가까이에서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겨

겸사겸사 온 길 되었습니다.

 

그런데, 허리디스크증세로 인해 왼편 다리가 영 시원찮습니다.

계자 전 침과 뜸으로 다스리던 것을

계자 지나며 잊었다가 다시 일어난 게지요.

일단 내일 이곳 면소재지에 가서 침을 맞기로 합니다.

일이 될라는가 모르겠네요.

이러다 정말 잘 쉬었다가만 가는 건 아닐는지...

 

고속도로 가까운 곳이라 차 소리가 잠에 자꾸 끼어듭니다.

그러고 보니 물꼬는 산중이지요, 그것도 깊은.

새삼스럽습니다, 금새 그리워지는 대해리!

 

참, 우리 삶의 처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구절 하나 발견.

위스콘신의 메노미니 족은 오랫동안 나무를 베어 내다 팔았습니다.

1870년에 메노미니 족이 9510헥타르의 땅에 보유한 입목은 13억 보드피트.

(보드피트: 목재의 용적단위. 1보드푸트는 1제곱피트에 두께 1인치)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들이 벌채해낸 양은

그 숫자의 두 배에 가까운 22억 5천만 보드피트.

만약 이들이 흔히 목재회사들이 하는 ‘완전벌채’방식으로 나무를 벴다면

야생동물도 나무도 남아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메노미니 족의 숲엔 1870년보다 많은 17억 보드피트의 입목이 있고,

생태계가 온전함은 물론입니다.

그들의 벌채방식은 무엇이었던 걸까요?

튼튼한 어미나무는 건드리지 않고 동물들이 살 수 있게 나무 윗부분은 충분히 남겨둔 채

약한 나무만 베어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들의 요구사항만 내세우기보다 숲에서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람에서 요람으로>(윌리엄 맥도너, 미하엘 브라운가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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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8.29.달날. 더움

 

  여기는 무지무지 열악하다. 일단 1주일 간 머무는 우리들의 생활공간, 부엌, 화장실, 숙소를 살펴보자.

  숙소는 컨테이너다. 속이 거의 텅 비었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옷장 여러 개와 책장이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는 언제나 덥다. 선풍기가 하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덥다. 또한 여기는 파리가 너무 많다. 지금까지 오늘 21마리를 사살했는데도 일기를 쓰는 지금도 생존 파리들이 덤비고 있다. 이불은 더럽고, 방은 닦아도 닦아도 먼지투성이다. 그렇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정이 가고, 좋다.

  부엌은 엉망이다. 한쪽 벽은 동물축사고, 냉장고는 냄새나고, 전반적으로 더러우며, 가스레인지와 책상은 20년 묵은 때가 안 벗겨진다. 그나마 우리가 청소해서 지금은 엄마의 맛있는 밥이 생기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린, 어딜 가나 잘 먹는다.

  화장실은 조금 깨끗하지만, 그래도 호스뿐여서 샤워가 어렵고, 곰팡이 냄새가 조금 난다.

  조금 더러워도 좋다. 우리가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하다. 엄마랑 함께라서 더욱 행복하다.

 

(열네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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