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외곽에서 닷새째.

새벽, 들길을 걷습니다.

자줏빛 나팔꽃이 눈부십니다.

들 끝에 산이 있습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경치입니다.

너무 좋은 곳에선 그 절경에 취해 마음이 들뜨기도 하겠는데,

일상을 헤쳐 나가기에 고단치 않을 만큼의 위로가 될 풍경이었습니다.

이런 시간을 허락한 하늘에 감사.

 

대해리에선 계속 고추를 따고 말리고 있다 합니다.

대단한 양은 아니고 그저 하루 한 바구니씩

씻고 닦고 말리고...

소사아저씨, 오늘은 흐려 모둠방에서 펼쳐 너셨다는 소식.

 

재활승마를 진행하시는 선생님네와 곡주 한잔.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개 그러하듯 우리들 삶도 만만찮았습니다.

사람들과 사이에서 있었던 상처도 고스란히 서로에게 있었지요.

중요한 건 그때도 '여기' 있었고 지금도 '여기'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생에 길을 잃겠는지요, 문은 둘 뿐이라 했습니다,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

 지도를 가진 사람은 없지만 우리 모두 나침반을 갖고 있지요.”

아암요, 문제는 나침반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겠습니다,

어디를 가리키는가를 보기 위한.

 

선생님이 자폐범주성 아이들과 지적장애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작업은

기적, 그것이었습니다.

기적을 만드는 것은 그것을 보려는 우리의 의지라던가요.

선생님의 작업을 보며

새로운 걸 알았다기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알 필요가 있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고마운 한 주였지요.

지내는 동안 말도 좀 탔고,

아이에게 좋은 선생을 만나 좋았고,

언제부터 소망했던 일 하나를 그예 해서 기뻤으며,

마치 세 해를 아이랑 일곱 개 나라를 떠돌던

그 시절 같은 생활도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나 어떻게든 잘 해먹는다던 아이 말대로

어찌 어찌 잘도 지냈더랍니다.

“이렇게 떠돌아도 재밌지 않겠니?”

“엄마, 그냥 대해리서 잘 살자. 나는 집이 있는 게 좋아.”

그러지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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