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4.해날. 빗방울

조회 수 1225 추천 수 0 2011.09.10 01:12:01

 

 

저녁, 대해리 들어오니 빗방울 떨어져 젖어들고 있습니다.

오늘에야 배추씨 뿌렸다 합니다.

소사아저씨, 해마다 올해는 일찍 해야지 하지만

결국 또 이제 와서야 하게 된다 아쉬워하지요.

홀로 학교 일이며 밭일까지 다 하자니 그럴 밖에요.

 

벗이 보내온 허리디스크증세를 치료할 한약이 기다리고 있고,

인교샘이 보낸 야외용 의자와 해먹도 와 있습니다.

필요한 것 살피고 챙겨준 마음이며

유용하겠다 살피고 보내온 마음들을 읽으며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무엇 한 것이 있어 늘 이런 사랑을 받는가,

마음 잘 세웠더라지요.

 

남도에서 실어온 것들을 부립니다.

늙은 호박들이며,

자잘한 항아리들이며

잘 다듬은 오징어며 게장이며 반찬들, 그리고 과일.

나이 얼마를 먹어도 그렇게 부모 그늘에 살 테지요, 지상에 계신 마지막 날까지.

그리고 우리 또한 그런 부모가 될 겝니다.

배운 대로 하고 살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만큼은 못하노라 탄식하며.

 

세상일에 서툽니다.

“엄마처럼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는 형아인데...”

어떤 사람을 설명할 때면 아들이 하는 말이 그럴 정도이지요.

그런데도 이제 어머니 앞에선

뭔가 척척척 해내야하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무식한 울 어머니' 늙으셨고,

두 아들은 멀리 사는 데다 사는 것 바쁘고,

장남 세우기에 여념 없으셔서 장남에겐 험한 일 절대 말도 안하고 시키지도 않는 어머니.

작은 오래비랑은 성격이 상극인 두 사람.

허니 가면 앉아서 따빡따빡 해주는 밥은 먹어도

뭔가 자잘한 일이 있기라도 하면 나 안다 하고 나서야 하지요.

오늘은 어머니를 옆 좌석에 태우고 어머니 차 있을 때 볼 일들 도왔더랬습니다.

집에 차가 없은 지 두어 달,

여간 불편해하지 않고 계셨습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하데요.

늘 사람 노릇 못하고 사는 삶이라니....

오전엔 그렇게 어머니 일을 거들고 함안 농장에 들렀다가

진주로 달려갔습니다,

눈 멀어가는 이모부를 뵈러.

아버지 없는 세월 우리 형제들의 아버지셨던 분.

30여 분이라도 머물려 들렀더랍니다,

성묘객들로 길이 밀려 그리운 벗이라도 보고 오자던 마음 일찌감치 접고.

그예 뵙고 왔지요.

눈물이 자꾸 그렁거렸습니다.

‘아, 어른들 좀 챙기고 살아야지...’

김천구미 KTX역에서 기락샘 내려주고

그렇게 대해리로 돌아왔지요.

 

어둠이 짙어지는 산길을 들어오던 길에 든 생각인데요,

가끔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사람으로든 일로든.

그런데, 누군들 죽자고 살겠는지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일일지라도

그것 역시 존재하기 위해 선택된, 혹은 선택한 방법일 것입니다.

운 좋게도 햇살을 한껏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분명 있지요.

하지만, 비록 그늘에 있으나 그림자를 보고 어딘가 태양이 있다는 믿음으로

햇살을 느끼는 이도 없지 않답니다.

어떤 일 앞에서든 우리가 그 햇살을 느끼는 쪽이었음 좋겠습니다.

구원은 자신만이 할 수 있지요.

누가 누구를 구원한단 말인가요.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걸리는 일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진정 돕는 길은 어줍잖은 길눈이 되는 게 아니라

기다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오늘이랍니다,

설혹 이해할 수 없는 사람 혹은 일일지라도.

 

아이가 읽고 있던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작품 하나,

아이 따라 읽었습니다.

한 문장으로 남는 책이었네요.

‘꿈이 있으면 행실도 다른 법!’

그렇겠습니다.

 

내일은 2011학년도 가을학기의 시작,

또 새날입니다,

새 걸음으로 걸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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