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5.달날. 맑음

조회 수 1139 추천 수 0 2011.09.12 23:56:18

 

 

 

보름이면 아직 한 주나 남았는데

달빛은 벌써 한가위내가 납니다.

 

가을학기 시작입니다.

이른 아침 가마솥방 먼지를 좀 털고

책방과 교무실 문을 활짝 열며 아침을 시작하지요.

이번학기는 머무는 아이들을 받지 않는다 공지하였습니다.

(그래도 예정 없이 머물게 되는,

급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없지 않겠구나 하는 맘의 준비야 늘 하지요.)

그렇다고 그리 여유 있는 학기는 아닙니다.

여전히 달에 한차례 빈들모임 혹은 몽당계자가 있고,

무엇보다 무게 있는 논문 한 편과 책의 일부를 될 글 한 편을 보내야하며,

몇 차례의 특강이 잡혀 있습니다.

변함없이 가을은

수확과 겨울 날 준비로,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으로

산골 삶의 앞에 놓여있을 테지요.

딸 것들 따고 말릴 것들 말리고 거둘 것 거둘 테고,

효소며 잼이며 장아찌들이 쟁여질 겝니다.

 

오늘은 식구들이 고구마줄기를 땁니다.

지난해도 치솟을 대로 치솟은 배추 값에 입 벌리며

고구마줄기로 김치 잘 담아먹었습니다.

여러 집에 나누기도 했더랬지요.

올 가을도 그러겠다 싶습니다.

낼은 김치를 담아야지 하지요.

 

‘...요즘은 미야베 미유끼의 소설을 읽고 있어요...

이번 건 시대소설이랄까 그래요.

얼핏 말씀드렸지만 샘한테는

대하소설이 어울려요.

그쪽으루다가 한번 맘을 둬 보셔요.’

교무실에서 학교메일이며 챙길 적

글쓰기를 잊지 말라 늘 격려해주는 속 깊은 벗의 글월도 읽습니다.

이런 독려라면 언젠가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지요.

그저 멀리서 말하기 좋은 인사가 아니라

자주 어려운 짬을 내 물꼬의 일을 같이 나누는,

밖에 있으나 식구 같은 그네여서 그의 말은 어느 누구의 말보다 귀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아고, 단편 하나 탈고를 못하고 사는데

대하소설은 언감생심이라지요.

그러나 아다마다요, 우리가 잊지 않으면, 바램이 차고 넘치면,

꿈이 어떻게 우리 앞에 현현하는지를.

 

늘 하는 것도 아닌, 어쩌다 올 여름은 그럴 기회가 잘 닿은,

여름 밥바라지 분들에 대한 복숭아 인사가

답인사로도 와 있습니다.

‘저한테 복숭아는

한창 탐스러울 때는 비싸니까 좀 지나서 먹어야지 하면

어느새 들어가고 없는 섭섭한 과일이었어요.’

복숭아를 받은 선정샘의 답입니다.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을 먹고 살 때는

밥 먹고 나도 두리번거리면 뭔가 먹을 게 있었고

과일 같은 건 야채실을 열면 항상

얼마간은 꼭 있는 먹거린 줄 알았지

장 볼 때마다 살까 말까 망설여야 하는

종목인 줄 몰랐었어요.’

그의 글은 늘 시(詩)랍니다.

삶이 시이구나, 그리 보여주는 글들이지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드라마에 나오는 가정집들이

무슨 명절도 아닌데

최소한 다섯 가지 이상의 과일을 깎아 둘러앉아 나눠 먹는 장면은

객지생활 20년차가 될 때까지도 거의 미스테리에 해당하는 거죠.’

 

삶이 시이리라 믿었던 시간도 있었는데,

삶이 시이니 굳이 시쓰지 않아도 충분히 글에 대한 욕구가 해갈되던 시절 있었는데,

이제 삶도 시가 아니고 시도 삶이 아닌 것만 같은 게으른 날들입니다.

다시 다부져야겠습니다.

새 학기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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