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6.불날. 맑음

조회 수 1143 추천 수 0 2011.09.12 23:56:52

 

 

 

“나도 엄마 짐이니까 여기 타야지!”

아이 때문에 오늘도 웃습니다.

아이가 열세 살이 되면 앉을 수 있다 했던 조수석이나

거긴 늘 책가방이나 책 혹은 여러 짐들이 쌓여있기 일쑤여

아이에게 앉을 기회가 쉽지 않지요.

오늘도 거기 책가방 먼저 두었는데,

굳이 앞에 타고 싶던 모양입니다.

잠깐이니 불편해도 괜찮다며

가방을 등 뒤로 밀고 의자에 걸터앉데요.

아이가 컸습니다.

어른들이 어른다워지려고 애쓰는 사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갑니다.

 

7학년 봄학기를 다른 대안학교의 또래 아이들과 이곳에서 보낸 아이입니다.

중학교 때는

전교생이 스물 넷 밖에 안 되는 면소재지 제도학교를 갈지도 모르겠다 했으나

결국 중학과정도 홈스쿨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하여 아이의 가을학기 읍내일정도 시작한 주가 되었네요.

두 차례를 나가 오전은

주로 은퇴 뒤 소일하는 어른들 틈에서 붓글을 쓰고 도서관 서가에서 보낼 테고,

체육관과 음악교실도 갈 겁니다.

때로는 버스를 타고 때로는 엄마 차를 타고 같이 들어오게 될 테지요.

나머지 날들은 반나절은 밭일이나 학교 일을 하고

반나절은 제 공부를 하기로 합니다.

혹여 머무는 아이들도 역시 그 흐름대로 함께 지내게 될 것입니다.

 

아이랑 우리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있었습니다.

“엄마, 세종대왕이 대외외교 생각은 짧았나봐, 한글을 만들면서.

(흉내도 내기 어려운 이상한 발음을 하며)이런 거 안 되잖아.

도대체 표기할 문자가 없네...”

우리가 나누는 모든 것이 그리 배움방일 겝니다.

 

가끔은 엄마의 삶이 아이와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나는 남들을 비판하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야.

  나나 똑바로 살자고 시작한 일이지.”

그런데, 자주 분노하고 화내고,

정말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가 좌절하기 일쑤입니다.

산골에서 농사짓는 아줌마라고 소개야 하지만

밭에도 한 번 못 들어가고 결국 책상 앞에서 종일을 보내기 일쑤이고,

농사 수년이라면서 속이 들어차지 않는 배추에 다 찌그러진 무, 알이 성긴 포도,

피가 더 많은 논, 쭉정이 투성이 콩, 타버리는 고추...

그렇다고 글이라도 제대로 되는가 하면 것도 아니고,

좋은 선생이기라도 하냐면 괜찮은 교사이지도 못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과 떡 하니 마주한단 말이지요.

어떻게 하면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던 고민의 귀착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로 모아지더란 말입니다.

“결국 내겐 물꼬가 어떻게 살 것이냐 묻는 장인 게지.”

 

그 속에 아이는 어느새 동료가 되고 동지가 되고 있습니다.

외롭기 덜한 게지요.

“엄마를 지켜야지!”

아주 어릴 적부터 류옥하다 선수한테 한 기락샘의 말은

어느새 그 아이의 자리를 그리 세워놓았더랍니다.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이렇게 번듯한 학교가 그렇게 적은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유지된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앞으로도 물꼬의 기적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여름 계자 마지막일정을 마치고 돌아간

품앗이 혁샘이 보내온 평가글 마지막 구절이었지요.

물꼬가 그렇게 이 가을을 시작했습니다.

자, 어떤 날들일지 ‘같이’ 한번 걸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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