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9.쇠날. 흐림

조회 수 1281 추천 수 0 2011.09.18 20:55:39

 

이른 아침 잠자리로 들어오는 빗소리였습니다.

아침 먹고 나니 갰지요.

 

엊저녁 택배아저씨,

물한리 들어가는데, 학교 있냐고, 생물이라 지금 들어가얀다 연락주었습니다.

저녁 먹고 일찌감치들 학교를 비운 터라

소사아저씨 교문에 나가 섰다가 받았지요.

“뭐였어요?”

주소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 무엇 한 것이 있다고 이런 선물들을 때마다 따박따박 받는지요.

황선미님이 보내오신 수산물입니다,

손 하나 가지 않도록 잘 다듬어져 바로 요리할 수 있는.

어쩜 보내오시는 것들마다 그토록 요긴한 것이던지.

늘 마음을 얼마나 썼는지가 읽히는 것들입니다.

“참 감각 있으신 분이야...”

우리 성재는 안녕할지...

지난 봄, 뵙고 갔습니다.

몇 해를 아이만 보고 얼굴 뵙기 처음이었습니다.

뵙고 가깝기 더했지요.

후로 고민 담긴 긴 메일을 받고도 인사 한마디를 못하고 지나왔습니다.

성재는 너무나 오고 싶어하였으나 올 여름 보지 못했습니다.

공부에도 바빴으리라 짐작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살겠습니다.

 

마당의 포도를 따고, 알 따서 씻고 건졌습니다.

그 포도, 잘라낸 포도 줄기를 꺾꽂이하여 잎을 내고

그걸 교무실 앞 꽃밭 너머에 한 줄로 옮긴 소사아저씨였습니다.

작년에 첫 포도를 얻었고,

올해 그 두 번째이지요.

올해는 봉지도 씌웠더랬습니다.

포도주를 담으리라 합니다.

 

지난 첫 계자를 시작할 적 품앗이 유진샘의 어머니 다녀가시며

전기 안 쓰려는 건 이해하지만

이런 곳에 전자레인지 하나 있으면 부엌살림 하는 이가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며

가셔서 당장 보내오신 전자레인지가 있습니다.

바로 쓰면 안 되냐며 몇 날을 조르던 류옥하다 선수,

오늘은 그예 꺼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추석에 엄마도 없는데...”

그걸 써보고 싶은 마음이 기회를 얻은 게지요.

며칠 그 아이의 최대 관심거리는 단연 그것이었습니다.

“어머니, 달걀을 넣고 돌리게 되면...”

“어머니, 보통 찌개를 끓이거나 하면 두꺼운 걸 바닥에 놓잖아요. 그런데...”

이곳저곳에서 얻은 정보에 제 깜냥을 더해 들먹이기도 하고,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소사아저씨한테도 설명도 해주고 있습니다.

절대적 기계치인 저도 그걸 쓰게 될 날 오겠습니다요.

 

작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한승원 선생의 말에 오래 고여 있습니다.

작가가 되려면 좋은 눈을 가져야 한다지요.

보는 것도 여러 가지겠지요.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見),

손으로 눈썹 차양을 하고 지나쳐가면서 슬쩍 보느냐(看)

그냥 보여주기만 하느냐(視),

보되 그냥 보는 것이 아니고

대상의 의미와 가치를 따지고 가리고 비판하면서 보느냐(觀).

좋은 작가는 좋은 눈이 만드는 것이라 합니다.

좋은 눈은 착한 생각, 좋은 책읽기,

그리고 세상을 살아갈 만한 곳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의지에서 나온다 했던가요.

혁명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꽃 한 송이 되어 세상에 장식되려 하는 노력이 세상을 바꾼다는...

스스로 꽃 한 송이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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