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15.나무날. 늦은 폭염

조회 수 1297 추천 수 0 2011.09.30 21:20:09

 

밀양 35도.

온 나라가 난리였습니다.

정전에 엘리베이터는 멈추고 길은 막히고 기계는 멈추고 수술실 불이 꺼지고...

한전은 당일 최대전력수요를 6400만kw로 잡았는데

6728만kw로 예상량을 넘어섰더라지요.

Blackout.

전국적인 정전사태 직전이었던 겁니다.

우리나라 발전소의 최대 공급능력은 7800만 안팎인데,

여름철 풀가동했던 발전소들이 겨울을 대비해 순차정비에 들어가 있던 터라

지역별로 순차적 송전 중단을 피할 수 없었다지요.

지식경제부와 전력거래소, 그리고 한전이

이 혼란에 대한 책임소지를 놓고 시끄럽기 시작했나 봅니다.

헌데, 전력 소모량이 큰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지 않을지요...

 

무순이 제법 실해졌습니다.

솎아와 김치를 담습니다.

무밭에 거름도 뿌리지요.

주워온 밤을 어떻게 보관하나 말이 많습니다.

여느 일들이 그러하듯 마을 할머니들마다 의견이 팽팽한 거지요.

소금물에 담가둔다와 데친다가 주 의견입니다.

우리는 데친다에 한표 던졌지요.

살짝 데쳐 식혀서 그대로 냉동실로 넣습니다.

겨울계자에서 우리 아이들의 주전부리가 될 것입니다.

아이랑 소사아저씨는 오늘도 붉은 고추를 따와

씻고 행주로 닦고 말리는 일에 열중합니다.

 

늦은 밤 아이랑 영화 한편 봅니다,

티벳 관련 일을 하는 벗이 보내온.

눈이 시릴 만큼 푸른 하늘,

바람만이 자유롭게 하늘과 땅을 오갈 것만 같은 나라,

밤하늘의 별도 하나 둘이 아니라 신령한 분 하나, 신령한 분 둘로 세는 곳,

우주의 중심이라는 카일라스, 즉 수미산을 이고 사는 티벳.

마틴 스콜세지의 <쿤둔>(Kundun, 1997).

티벳어로 발음하자면 꾼뒨이지요.

14대 달라이라마의 탄생부터 인도 망명까지를 그렸습니다.

이 영화의 매력 가운데 큰 하나는

이야기를 매개하는 서양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티베트에서의 7년> <아라비아의 로렌스> <마지막 황제>들은

그 문화권을 설명하는 서양인이 꼭 있었지요.

하지만 이 영화에는 서양인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비록 대사는 영어이나.

 

큰 매력 두 번째라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들이 정말로 좋은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사실이 그러합니다.

왜 우리가 티벳독립을 지지해야하는가를 알려줍니다.

세 번째라면,

티벳인들에 대한 이해가 우리 삶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겠습니다.

단지 영화 속이어서 중국 공산당 침공이 중립적으로 처리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티벳인들이 적국인 중국인들에 대해

적개심이 아니라 오히려 이해하려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합니다.

정작 강자인 중국인들에 대한 연민을 부르기까지 하는 대목입니다.

제국 열강들 속에 살아남고 홍수와 기근으로부터 목숨들을 부지해야했던 그 역사에.

누구나 다 제 처지가 있기 마련이지요.

 

불과 다섯 살에 세상을 구원하는 꾼뒨의 자리에 즉위한 14대 달라이라마는

정치적으로 가장 불리한 시기에 그만큼 치열한 역사의 격동에 놓여집니다.

2차 대전 후, 중국이 일본에서 벗어나 혼돈을 겪고 있을 때 소년은 불과 열 두 살이었고, 공산화된 중국이 1957년 마침내 침공해와

자신의 동포가 아무런 무기 없이 무자비하게 죽어갈 때 사춘기를 건너고 있었으며,

1959년 열여덟의 그는 중국의 암살위협을 피해 긴 망명길에 오릅니다.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한 인간의 비폭력 교육에 관한 이야기.”

세상의 여느 아이들이 그러하듯 그는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다른 사내아이들이 그러하듯 병정에게 폭탄을 투하하는 놀이를 하지만

스승들의 기다림과 현실 안에서 그의 비폭력에 대한 믿음은 자연스레 깊어갑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역사적으로 전례 없고 불가항력적으로 도전’을 받지요.

이 도전은 티베트인의 평화에 대한 믿음과 그들이 실질적으로 처한 존립의 위협 사이에서

해결과 균형을 찾아야하는 부담을 그에게 끊임없이 지웁니다.

미국 대통령에게 낭만적인 편지를 쓰던 열두 살의 그는

갈수록 말을 잃는 대신 깊이 사유하고 기도하며

중국의 대규모 침략 직후 결국 뿔난 짐승이 아니라 그들도 사람이더라는

적국에 대한 연민과 평화염원을 지닌 지도자로 성장하지요.

많은 이들이 그랬지요,

티벳 문화의 도덕적 순수가 결코 승산 없는 싸움에서 티벳을 살아남게 했다고,

그리고 달라이라마의 지도력이 바로 그 중심에 있었다고.

“이 무상한 삶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키는 것이 첫째요!”

 

1959년 독립시위에 대한 잔혹한 진압으로

티벳은 전체인구의 20%인 120만 명이 학살되었습니다.

문화 대혁명 때는 홍위병들이 4500여 개 사원을 폐쇄했고,

수많은 티벳인이 정치적 이유로 감옥에 갇히거나 행방불명되었습니다.

UN을 비롯 세계 열강들은 티벳을 외면했고

꾼뒨과 티벳인들은 ‘외롭고도 기이한 저항’을 시작했지요.

거지처럼 이역을 떠돌고 시간은 더디 흐르리라던,

13대 달라이라마가 그의 환생자 14대를 향해 남긴 편지처럼 그들은 떠돌지만

외려 중국인들이 하려는 말이 무엇일까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러자 세계도(정작 나라를 잃고 떠돌자 그 나라에 대해) 티벳인들에게 귀를 열고

1989년 노벨상 위원회는 평화상을 달라이라마에게 수여하기에 이릅니다.

2008년, 중국은 독립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시 티벳 땅을 피로 물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티벳인들은 비폭력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비폭력을 포기했다는 외신이 있었지만

그것은 중국 측의 비방이었다는 소식이 이어 달려왔지요.

“신이 잠들었다는 생각을 할 적이 있어요

 그러나 신이 잠에 빠졌다면,

 깨우는 것도 우리의 의무입니다.

 현실은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이지요.”

 

영화는 귀여운 티벳 동승으로 살풋 웃음이 나오는 잠시를 빼면 내내 쓸쓸하다가

막바지에 눈시울을 붉게 합니다.

망명단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국경에 닿아 길을 안내했던 티벳인들과 헤어질 때

달라이라마는 돌아가는 그들이 피 흘리는 환영을 봅니다.

어쩌면 평화를 지키려는 그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그 한 장면으로 집약된다 싶지요.

동시에 그것은 앞으로 전개될 역사가 만만찮을 것이란 걸 말해주기도 합니다,

아직도 인도 다람살라의 망명정부는 티벳땅을 밟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달라이라마의 화해와 용서에 존경을 표하고 따르고자 하나

중국의 압력에 달라이라마의 방문을

한국 정부처럼 번번이 반대하는 나라 역시 아직 적잖습니다.

심지어 달라이라마가 몽골을 가기 위해 경유지로서 인천공항을 밟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지요.

반면 오스트레일리아처럼 국민들의 내적 평화와 영적 성장을 위해

중국이 주는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는 나라도 또한 흔치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국경수비대가 다가와 달라이라마에게 묻습니다.

“감히 여쭈오니 그대는 누구십니까?”

“보시다시피 비천한 비구일 뿐이오.”

“당신이 부처이시옵니까?”

“아니오. 다만 물위에 비친 달처럼 나를 통해서 그대들 자신의 선한 그림자를 보기 원할 뿐...”

 

한편,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티벳의 문화 속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 영화의 네번째 미덕으로 꼽겠습니다.

(아, 신 달라이라마가 아니라 고뇌하고 여린 인간 달라이라마 이야기라는 것도

영화의 미덕으로 꼽겠습니다.)

축하와 공경의 뜻으로 걸어주는 하얀색 얇은 비단 천 까닥과

바람의 말이라는 오색의 천 룽타(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퍼져가기를),

이른 아침 부처님 전에 물을 올리고 불을 피우고 만드는 버터차,

거친 그들의 식사 짬빠,

그리고 천둥 같은 목소리로 질문을 토해내는 동시에

손뼉을 치며 한 손바닥을 앞으로 쭉 내밀며 하는 그들의 토론.

게쉐(불교철학박사쯤 되려나요) 시험을 치르는 과정도 그렇다지요.

그러나 그 무엇보다 우리를 흔드는 건 그들의 장례식입니다.

물론 돌산과 쉬 녹지 않는 동토의 거친 자연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그들의 삶에 대한 신념체계가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하는

천장(조장이라고도 하는) 말입니다,

시신을 새들에게 먹이로 주고 뼛가루마저 짬빠와 함께 섞어 던지는.

 

여섯 번째의 미덕?

그냥 보는 내내 (안타까움과는 다른) 순순한 마음이 입니다.

좋습니다.

 

오는 겨울은 뚝빠와 뗀뚝(우리의 칼국수나 수제비쯤?)을 해먹으며

창(티벳술)을 기울이겠습니다.

그리고 따씨델렉(행운을 빕니다)이라고 외쳐보지요.

FREE TI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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