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뚝 떨어졌습니다.
늦더위 요란했던 며칠을 지났지요.
간간이 빗방울 날리기도 하였습니다.
가을입니다려.
식구들 달골 올라 호두나무 둘레 풀을 정리했습니다.
소사아저씨가 예취기를 돌려놓으면
아이가 풀을 걷고 치워냈지요.
아이가 자라니 어찌나 든든한 일꾼인지요.
또래 아이들이 교실에 있는 시간,
아이는 그렇게 산골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후엔 익은 고추들을 땄다지요.
달골을 내려온 식구들은 고물상 트럭과 함께 학교로 들어섭니다.
지난번 교문 현판을 해체한 뒤 남은 잔해와
뒤란에서 이러저러 모여 있던 철물들을 챙겨 보내고
우리들에겐 화장지 한 꾸러미가 안겨졌네요.
관공서에 서류가 들어갈 일 있어 읍내에 있었습니다.
다른 한 기관과 함께 하는 작업이었는데,
형식을 갖추는 일로 여러 시간을 보냅니다.
다행히 행정 쪽과 긴밀했던 다른 기관 쪽 사람이 노련하게 처리해준 덕에
여러모로 수월하였습니다.
그런 일들에 좀 익숙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왜 그리 형식을 따지냐 짜증스러워할 것도 아니지요.
물꼬 역시도 물꼬식의 형식이 있기 마련이고
그게 또 낯선 이들에겐 불편함일 수밖에 없을 겝니다.
장애아들을 만날 일이 잦고,
비장애아들 혹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아 이해를 위해 얘기를 할 기회 역시 자주입니다.
흔히 우리는 들을 수 없음을, 볼 수 없음을, 걸을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불쌍히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건 오직 비장애인의 처지에서 장애인을 생각하는 것일 뿐이지요.
들어서, 보아서, 걸어서,
우리는 때로 더 불행하기도 합니다.
타인을 안다고 생각지 말지니...
어찌 ‘너’를 알겠는지요, 나 자신도 모르는데.
우리는 너무 자주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착각합니다.
차라리 물어볼 것!
“네게 어떤 게 도움이 되니?”
“무엇을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배려와 지나친 관용 사이도 종이 한 장이겠습니다요.
침을 맞는 대전까지 벗 하나가 오며가며 운전을 돕습니다.
물꼬를 돕는 방식이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누군들 남의 일에 그리 마음 쓰기 쉽겠는지요.
힘내야지 합니다.
치료가 이제 고비를 넘긴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