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으로 이른 아침을 열었습니다.

비 많았던 여름 긴 날 달골을 오래 비워두었던 터라

이불을 다 빨아두었는데도 퀴퀴했습니다.

이 좋은 가을날 그렇게 사람들을 재울 수 없겠다 하고

그제부터 부랴부랴 이불을 빨고 있었지요.

하루 종일 빨고 널면 될 일이겠으나 달골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사흘을 내내 빨고 널고

낮에도 몇 차례 달골을 오르내렸더랍니다.

일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지 않던가요.

미처 생각을 못하고 손발을 허둥대야 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도,

정작 맞이 준비에 필요한 다른 일들도 많은데 계획과 달리 뜻밖의 일이 생겼다 하여

마음이 상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때로 일보다 그것에 대해 하는 무거운 생각으로

우리 마음이 힘들어진다는 걸 모르지 않으므로

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거지요.

올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움직였습니다.

고솜한 볕냄새가 이불에 배여 마음 참 좋았더랍니다,

못 다한 요가 마음에 좀 걸렸으나.

 

산마을의 9월,

호도도 따고 밭에 들어 마지막 고추도 딸 참입니다.

숲도 거닐고 절명상 춤명상으로 수행도 하고,

글도 읽고 얘기도 나누며 산골마을에 안겨

찬찬히 마음밭에 물을 주려지요.

남은 포도가 있으면 따서

잼도 만들고 효소도 담아볼까나요.

시절 맞춰 나온 것들로 효소도 담아보고,

때가 잘 맞으면 표고를 따낼 수도 있을 겝니다.

 

그리 빈들모임을 알렸지요.

그리고 지난 19일 이번 빈들모임에 자리가 다 차버렸더랍니다.

일흔이 넘으신 분에서부터 뱃속 아이까지 함께 하는,

그러지 않은 적이 없었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가을날이 되리라 짐작한다,

그리 또 공지했지요.

 

종일 먼지풀풀이었습니다.

오전은 달골 대청소, 오후는 학교 대청소.

소사아저씨는 아직도 기세가 남은 풀들을 예취기로 돌리고 있었지요.

재호가 점심 버스로 들어와 류옥하다와 함께 일을 도왔습니다.

늘 요긴할 물건을 선물로 그 편에 보내오신 장지은님 마음도 함께 했습니다.

 

부엌을 정리하고, 속틀을 써서 붙이고, 같이 하고픈 일을 쓰고,

무엇을 먹일까 식단을 짜고...

어느새 사람들이 오수 버스에서 내려 교문을 들어섭니다.

“아아아아아, 소울아, 이렇게 컸어?”

지난해 6월 업혀왔던 소울이가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옵니다.

깊은 인연입니다.

서울 여성프라자에서 유설샘과 미루샘의 주례를 섰더랬습니다.

그들의 아이 소울이가 태어났고,

소울이의 첫돌, 이곳에서 보낸 축하글이 낭송되었고,

이제 둘째 앵두가 뱃속에서 대해리를 왔습니다.

미루샘은 마침 발에 떨어진 일이 있어

돌아갈 적 가족을 맞으러 역으로 오기로 했다지요.

그런데 유설샘의 벗 이성화님은 아이들 태임과 왕현이랑 오기로 하였으나

아이가 앓는 통에 오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꼭 오기로 합니다.

 

은교샘이 왔습니다.

가족들이 방문신청하기 여러 달이었으나

이곳사정이 허락치 않았다가 그예 지난 봄 빈들모임에 왔고

지난 여름 첫 계자의 밥바라지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친정 어머니 안세영님을 모시고 왔지요,

물론 섬세한 윤호와 단단한 건호가 같이.

마음이 어찌나 미쁘던지요.

밥해 멕이고 싶습니다.

계자에 밥바라지한 분들께 늘 마음 그러합니다.

 

은교샘의 벗 심은경님이 상국이와 상범이와 첫걸음을 했습니다.

지난 5월의 빈들도 같이 오려다 못 왔던 가정입니다.

“(인교샘한테 물꼬 이야기)너무 많이 들어서 너무 익숙해요.”

마침내 오셨습니다.

 

그리고 새끼일꾼 연규가 왔지요.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만, 귀한 딸아이입니다.

여름에 마음에 내내 남던 자신을 향한 숙제를

질기게 더 파고 들고 싶다 연락왔더랬습니다.

같이 수행해보자 했지요.

반갑습니다.

기특합니다.

쉬어만 가도 좋으리, 싶습니다.

여름 얼마나 고됐던가요.

손에 물 한번 안 묻히고 보내고 싶습니다.

 

모다 반찬이며 먹을거리들을 정성껏 준비해오셨습니다,

인교샘은 사러나갈 일 없게 긴장하며 곡주 통들 한 아름까지,

거기에 장지은님은 재호 편에 밤을 위한 오징어로 장단을 맞추었고.

이 관계들이 어찌 흥겹지 않겠는지요.

아, 멀리 장성서 준샘이 몸 대신 포도즙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거기도 많겠지만, 이곳도 은근 포도가 많이 나요.”

빈들모임에서들 잘 나눠먹으라 했지요.

아니 그까짓 게 준샘을 대신한다구요?

온 세상 포도즙을 다 줘보셔요, 준샘을 대신할 수 있나.

(아니, 뭐 사실 그것의 절반의 절반이면? 마음이 달라지지요, 하하.)

 

저녁을 먹고 심은경님과 홍인교님 설거지를 합니다.

칠십노모 안세영님과 육십할머니 옥영경은 담소를 나누고, 하하.

그리고 모두 어둠 깊은 달골 자드락길을 오릅니다.

별빛이 밝습니다,

반딧불이도 보고.

소울이도 걸어 오릅니다,

아니, 안겨 올랐습니다.

진행차량에는 학교에서 달골로 갈 요가 실리고

야참이 실리고 사람들의 가방이 실렸습니다.

연규가 그 예의 새끼일꾼의식으로 무장된 움직임으로

차에서 어디로 무엇이 가야할지를 알고 움직여댔지요.

결국 일을 하고 마네요.

 

일상명상으로 저녁수행을 엽니다.

무언가에 집중한다면 그게 명상일 것입니다.

먼 곳으로 떠나지 않고도 우리는 일상 안에서 얼마든지 수행이 가능하다마다요.

바로 그거 했습니다.

귀찮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놀이로만 보는 듯한 아이들이 마음에 자꾸 걸리더라,

같이 하니 참 가뿐하더라,

해놓으니 마음 환하더라,

갖가지 든 마음을 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창고동에서 춤명상.

절기에 맞춰 추어온 춤입니다.

오늘은 추분, 밤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의 반대편에 있는 날입니다.

오늘을 넘기며 해는 노루꼬리만큼씩 짧아지고

밤은 동지를 향해 치달을 것입니다.

의미 있는 날 의미 큰 이들과 의미 깊은 춤을 추었습니다.

쑥부쟁이 꽃이 우리를 감쌌지요.

가을이 그렇게 내렸고

우리는 나무 한 그루들이 되어 살아온 지난 봄여름을 거두었더랍니다.

 

그리고 햇발동으로 건너가 ‘조각보’.

숙제검사; 같이 나누고픈 이야기나 글.

각자의 조각천들로 보자기를 만듭니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 생각들이 내내 거기 잠겨 있었지 싶습니다.

서로의 삶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삶을 북돋았습니다.

도반들이었던 게지요.

 

늦도록 아이들도 콩닥거렸고,

어른들도 그러했습니다.

산골의 밤이 마음속에도 걸어 들어왔지요.

우리들의 품이 숱한 존재들을 다 안아낼 만큼 넓다는 걸

이 밤에 또 알았습지요.

 

2시에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벗이 며칠 째 운전을 돕고,

치료에 집중했던 까닭에 가뿐한 몸으로 빈들을 맞았습니다.

“허리 아파 자꾸 일하는 속도가 늦어진다시더니...”

인교샘 보기 하나도 그렇지 않더라나요.

사람들이 준 기운이 컸겄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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