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28.물날. 흐려가는 밤

조회 수 1264 추천 수 0 2011.10.12 10:45:32

 

내일은 비가 온댔다는 소사아저씨의 전갈입니다.

“삼촌, 오늘 날씨는 어떻대요?”

늘 당신이 물꼬의 기상청입니다.

옥상에서 고추와 호두를 내리고

고구마밭과 콩밭 잡초를 정리합니다.

곧 파고, 거둘 것이지요.

호박도 따 들입니다.

늦게 호박이 풍년입니다.

애호박전이며 호박나물이며 호박국이며

전골로도 찌개로도 부지런히 상에 오르고 있습니다.

제철 음식이 보약이지요, 아암요.

늙은 것들은 가마솥방 장 위에 자리를 잡았다가

겨우내 호박죽이 될 것입니다, 으레 계자에서도.

 

이번 주부터 주중엔 귀한 선생님 한 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멀리 계셔서 만남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짐작키 어려우나,

더구나 허리와 다리 때문에 긴 운전을 피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여,

우선은 마음과 시간을 내는 데까지 내려지요.

아이를 위해서도 그러합니다.

동물과 하는 교감을 통해 자폐아들의 재활을 돕는 분이십니다.

동물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고 그만큼 동물에 대한 태도 역시 그러하지요.

지난해 아이 때문에 시작된 만남인데

제게 더 큰 선생님이 되셨습니다,

개와 고양이에서부터 동물이라면 썩 가까이 않는 저였으니.

이 만남은 저를, 또 물꼬를 또 얼마나 변화시킬지요...

 

아침부터 우울했습니다.

아이 때문에 그런 날은 드뭅니다.

이 시대 학교교육으로부터 물러나있으면

아이 때문에 그럴 일 흔치 않다마다요.

갈등의 많은 문제가 교육문제에 절대적이니

그것을 벗어나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우리에겐

그만큼 우울도 덜합니다.

그런데...

컴퓨터 관련 용품을 인터넷으로 샀다가 그것을 반품하는 과정에서였지요.

글 쓰는 일 외에 컴맹인 엄마가 그걸 했을 리는 만무입니다.

헌데 기대했던 것과 달리 제품은 우리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제 인터넷으로 반품을 신청했고

오늘 아침 해당업체에 전화도 넣었지요.

역시 아이가 맡아서 한 일이었습니다, 어미가 아는 일이 아니니.

조목조목 반품 이유를 얘기하는 끝에

아이는 그 제품의 하자를 들먹였습니다.

옆에서 듣던 어미는, 아이는 통화 중인데 말을 찌릅니다.

“제품의 질과는 사실 상관없잖아.

무엇보다 분명 우리가 상품 정보를 충분히 생각지 못한 불찰이 먼저잖아.”

“어머니, 이런 일은 그 쪽의 책임임을 명확하게 해야 해요!”

아이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닙니다.

분명 새 물건인데 긁힌 흔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것이 그 제품이 지니는 고유쓰임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고,

더구나 아주 가볍고도 극히 적은 문제를 확대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택배비를 물지 않으려는 아이의 순수한 의도,

혹은 상품의 하자를 따지는 구매자로서의 적절한 태도를

어미는 마치 우리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라는 도덕의 문제,

아니면 까탈스런 성격문제로 몬 것이지요.

심지어는 택배비에 영혼을 판 것이라고까지 하는

험한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에구, 남 탓입니다요.

어미가 사는 일에 버석거리니

아이가 나서서 늘 이런 문제들을 다 해결하는 걸,

애쓴다고는 못할망정 그런 비난이라니요.

아이에게 내는 짜증과 화, 얼마나 쉬운 방식인지요.

수행, 그거 다 번번이 도로아미타불입니다.

우울한 날이었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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