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배쪽합니다.
비 온 뒤로 기온도 툭 떨어졌습니다.
화분을 들입니다.
썩 바지런하기라도 해 생긴 것들이 아니라
달골에 머물던 박성현님이 남겨주신 것들입니다,
어찌나 잘 자라는지요,
그 역시 제 부지런함에서가 아니라
새끼를 잘 치고, 물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열대성이라.
그러니 그것들이 게으른 손에서도 살아남은 게지요.
그저 여름이면 꺼내주고 겨울이면 들이는 게 전부라면 전부이지요.
10월 1일자로 내복을 입는 이곳(사실 다른 누가 아니라 저),
며칠 전부터 들여야지 했더랬습니다.
저녁, 하나 하나 정성껏 닦아 햇발동 거실로 들입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것, 그런데도 숙제 하나 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곳의 겨울 진입로에 들어선 듯한 밤입니다려.
서울의 한 대학에서 탐방과 강연을 의뢰해왔습니다.
공동체와 대안교육 관련이지요.
늘 그렇듯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동안 그리 잘 하지도 못했고, 지금도 활발하지 못하니.
그래서 할 말이 많고, 그런 만큼 할 말이 참 없기도 한 거지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살아봐라, 그런 겁니다,
마치 울 어머니들이 딸에게 하듯, 시집 가 봐라, 자식 키워봐라 듯이.
일단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100명, 적게 잡아도 80명이라지요.
먹이는 것도 일이고, 안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으로 방문은 어렵겠고,
언제 특강은 한번 가마고 내일 전화 넣어야겄습니다.
뜻밖의 손님이 다녀갑니다; 철우샘.
지난 여름 한동안 머물다 떠난 그입니다.
계자며 일도 많던 날들, 그렇게 갑자기 떠나게 되어 미안타 했습니다.
사람일이 다 그러하지요, 뭐,
더러 사정이 그렇기도 하고 이렇기도 하고.
괜찮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모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지요
그래도 미안한 일이 생기고 그렇습디다.
와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소사아저씨 긴 나들이 떠나셨습니다.
계자가 일정이 좀 늦었던 데다 줄줄이 일을 달고 있었던 시간이어
이제야 여름휴가 겸 한가위 나들이를 가신 셈이지요.
한주 일정입니다.
그리고 2011년의 9월도 봇짐을 짊어졌습니다.
“엄마, 일 년이 그리 긴 게 아니야.
올해도 석 달 남았다지만 일년의 4분의 3이 갔고, 12주 밖에 안 남았어요.”
아이가 상끗거리며 던지는 말입니다.
자주 그리 세월을 일러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