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ma Chödrön의 책 한 구절을 읽습니다.
‘우리는 뗏목을 타고 강 한가운데에 떠 있다. 강이 어찌나 크고 넓은지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수평선뿐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뗏목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붙잡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사방에 보이는 것은 오직 수평선뿐이다. 어느 쪽으로 헤엄쳐야 뭍에 닿을 수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자. 어떠한 행동도 다 소용이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깨달음은 이처럼 모든 것을 포기한 데서 오는 자유로움을 닮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비로움이기도 하다.’
장순이가 새끼를 밴듯합니다.
2001년 네 살 아이 손을 잡고 한국을 떠나,
2003년 일곱 개 나라의 공동체와 자유학교를 떠돌고 들어왔던 그해,
고교 은사님의 시아버님, 제가 할아버지라 부르는 당신께서
개 족보와 함께 실어오셨더랬습니다.
주인 잘못 만나 여태 어미였던 적이 없는 그.
살이 쪘나 했는데, 참견쟁이 할머니 와서 소리치셨지요.
“개가 새끼 뱄나벼어! 새끼뱄어, 뱄어!”
아, 그렇구나...
묶여있는데다 나이 너무 많아 그럴 일 있을 줄 상상도 못했던 게지요.
얼마 전 뱃속 아이를 잃은 나이 적잖은 어미 소식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남의 일 같지 않게 쓸쓸하더니
이런 소식으로 위로 삼게 되나봅니다.
누군가 가고 누군가 오는 게지요.
오늘 한 명상공간에 갔습니다.
신실한 수행인들이 모이는 그곳은 이미 그들끼리 집단의식이 강해서
그들 어법 혹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낯선 이가 어깨 겯기에
적이 불편한 구석이 더러 있었지요.
게다 너무 먼 곳이어 언제 또 여길 오겠는가 했는데,
뜻밖의 광경이 마음을 붙들었습니다.
아주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야했던 이들을 위해
주최 측에서 빵을 준비하였는데,
먹으며 더러 빵부스러기가 방석 위로 떨어졌습니다.
대개는 그런 경우 방석 밖으로 부스러기를 털어내지요.
왜냐하면 천에 떡 지는 것은 빨래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겠지만
방바닥은 치우기가 더 편하리라 생각하기 쉬우니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나름 배려이기도 하다는 태도들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검지로 떨어진 빵부스러기를 꾹꾹 눌러
제 필통에도 속으로 넣는 겁니다.
‘누구인가, 저이는?’
물꼬의 반듯한 새끼일꾼들과 품앗이일꾼들 말고
세상 밖에서 그런 젊은이를 본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그 젊은이를 통해 그 공간을 다시 보게 되데요,
응당 반성과 함께,
저 역시 툭툭 털어내 버리는 사람이었으므로,
어차피 행사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이 치울 것이라 여겼기에.
또 가지 싶습니다.
아이를 홈스쿨링 하고 있는 가정이 가진 최대의 긍정성은
교육 문제로부터 일정정도의 자유로움이 있다는 것.
왜냐하면 초중고생을 둔 한국의 일반적인 가정에서
교육 문제라면 거의 절대적 범위를 차지하니까요.
교육 문제를 빼면 문제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게지요.
며칠 전 대구에서 들어온 전화,
담임이 애 데려가라 했답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이나
자라는 동안 그 댁 아이가 그 시절 최고의 메이커로 입고 다녔는 줄 압니다.
고액의 과외비가 늘 딸려 다녔음도 물론입니다.
아이에게 모든 것에서 최고를 안겨주었더랬지요.
대안교육, 관심 있은 적도 없고
혹 알았어도 그저 문제아들이나 가는 곳인 줄 알았으리라 짐작합니다.
그간 사돈댁의 가까운 친척이라 하나
이 시대 그런 친족의 거리가 그리 큰 의미일 것도 아니고,
삶의 양상이 워낙에 달라 거의 접점이 없었던 관계였는데,
그런 일을 맞닥뜨리자 부리나케 연락이 왔지요.
갑자기 부르터난 일 앞에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냐, 물꼬에다 애 좀 맡기면 아니 되겠냐,
한 다리 건너 말을 넣어온 것입니다.
급기야 한 밤에 찾아오기까지 했지요.
무엇을 해줄 수 있으려나요...
학교를 찾는 게 먼저가 아니라 내가 아이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그렇게 먼저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고,
아이는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했던 걸까 하고
아이의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점심에 서울 올랐다 서울발 기차를 타고 자정 다 돼 다시 영동역으로 귀환.
한 티벳 스님의 법문이 있었습니다.
순전히 밀교명상이란 낱말 때문에 간 걸음이었지요.
커다란 산골 학교에는 열네 살 아이가 홀로 있었습니다.
소사아저씨는 일주일 출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