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 4.불날. 맑음

조회 수 1217 추천 수 0 2011.10.14 14:57:47
 


소사아저씨의 한주 부재에 걸음이 바쁜 아이입니다.

밭을 돌고

통로를 쓸고

붕어밥과 장순이와 쫄랑이 밥, 그리고 닭모이 챙기고

고추와 호두 말리고

학교 안팎 돌아보고...

 

꽃게 먹는 요령을 아시는지요.

귀를 막고 눈은 오직 꽃게를 향할 것,

벨을 눌러도 전화가 울려도 식탁에서 아이들이 아무리 불러도.

왜냐하면 자상한 아빠가 있으니까,

혹은 따뜻한 삼촌이

아니면 누구라도 그 순간은 너그러운 마음을 지녔을 것을 믿을 것.

비로소 귀는 게를 다 발려먹은 다음 열고 눈도 그때 떠서

게딱지에 밥을 비벼 아이들에게 내밀 것,

참기름 넣어.


쓸쓸한 가을 저녁이었습니다.

날은 빨리 어둑해지고

찬 기운은 겨울에 머잖았음을 알렸지요.

이런 저녁은 다른 때와 다른 밥상을 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울을 걷어주는 데 도움이 되지요.

오늘 실려 온 꽃게를 쪘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이런 것도 위로가 되는 짙은 어둠의 산골 밤이라지요.


아침, 읍내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대뜸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는 좋겠네. 아들이라 산후조리 안 해줘도 되고...”

어머니 없으면 우리 삶이 안 된다,

키워놓으면 잊는가 했더니 학교 보내야지,

학교 끝나면 그만인가 했더니, 웬걸, 시집장가 보내야지

그러면 걱정 더니 했더니 이런, 산바라지에 애 봐줘야지,

오늘도 어느 이와 그런 얘기 나누는 걸 들었던 모양이지요.


침을 맞으러 가는 길에 어딜 들릴까 하였습니다.

벗은 멀리 떠났고, 그의 노모가 장애를 앓는 아들과 사는 댁입니다.

빵과 잼을 실어갔지요.

그러나, 서성이다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돌아선 걸음이 우리 얼마나 무성할까요.

흔히 연애를 하다 실패한 이들을 위로할 때

사람으로 빈자리는 사람으로 채우는 거라며 새로운 이를 소개시켜줍니다.

그럴까요?

아닌 듯싶습니다.

그 사람의 자리는 늘 비어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자리이니까.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지만

마음의 사람 자리만큼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을은 홀로 보내기에 너무 가혹한 시간이고,

떠난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일은 죽음의 시절에 다름 아닙니다.

그리하여 지금부터 벌써 봄을 기다리는 거지요... 

그런데, 빈자리를 빈 것으로만 보고 채우려드니 사단이 나지요.

비었거니 하면 될 겝니다.

그리고 그를 추억하면 될 겝니다, 아프면 아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래도 정히 견디기가 힘드걸랑

가을 들꽃을 꺾어 앉혀두는 건 어떠려나요...


가을이라 더욱 그랬던가 봅니다.

저녁답에 같이 공부했던 벗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돌아보니 먼저 연락을 했던 적이 거의 없나 봅니다.

그나마도 오는 전화를 잘 못 받기 일쑤.

이 가을엔 먼저 하는 날도 있으리, 그리 마음먹습니다.


관내 한 초등학교의 특수학급에 담임부재주간이 한 주 있어

지원을 가기로 합니다.

한 주라 해도 달날은 서울서 특강이 있고,

흙날은 놀토이니 나흘이면 됩니다.

달날은 제 사정 살펴

아이들이 원적학급에서 특수학급으로 내려오지 않기로 했지요.

일이 될라고 그랬나 봅니다.

올 가을 몽당계자 원래 일정대로라면 택도 없는 이야기였지요,

쇠날부터 해날까지 사흘이니.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만났던 아이들이니

벌써 3년차가 되네요.

가을날의 유쾌한 나흘을 보내리라 합니다.

 


                       ---------------------------------------------------


 

2011년 10월 4일 불날. 더움 / < 장순이 임신 >


 

  엊그제, 장순이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배가 불뚝하고, 젖이 나오고 해서 그냥 살이 찌거나 털이 나서 그렇게 보이는 건가 생각했는데, 앞집 할머니가 ‘새끼뱄네’하고 나서야 임신한 걸 알았다.

  문제는 누구랑이냐는 것이다. 그냥 떠돌이 개와 했을 수도 있지만 풀어놓은 저 위 곶감집의 풍산개 ‘선풍산’이랑 결혼했을 수도 있다.

  대형견은 7~9마리를 낳는다고 하는데, 뒷감당이 걱정이다.

  당장 더 따뜻하게 해줘야하고 미역, 고기 등도 먹여야 하고, 장순이를 건강하게 해줘야할 필요가 있고, 장순이가 아이들을 낳을 때 돌봐줘야 한다.

  그리고 강아지들은 우유 먹여야지, 밥 줘야지, 접종 맞혀야지, 관리해야지......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강아지들이 쫄랑쫄랑 다니며 월월~ 하는 귀여운 모습이 기대된다. 빨리 강아지 새끼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장순이하고 새끼강아지들 건강하면 좋겠다.


 

(열네 살, 류옥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114 2011. 6.25.흙날. 비 옥영경 2011-07-11 1227
5113 2008. 3.30.해날. 비 옥영경 2008-04-12 1227
5112 2007.10.14.해날. 맑음 옥영경 2007-10-26 1227
5111 108 계자 열 이튿날, 2006.1.13.쇠날. 가랑비 옥영경 2006-01-15 1227
5110 2011. 9. 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1-09-10 1226
5109 2010. 9.12.해날. 밤새 내리던 비 개다 옥영경 2010-09-29 1226
5108 2009. 7. 9.나무날. 흐림 / <내 마음의 상록수> 옥영경 2009-07-16 1226
5107 2007. 4.15.해날. 맑음 옥영경 2007-04-24 1226
5106 2006.2.15.물날. 비였다가 눈이었다가 옥영경 2006-02-16 1226
5105 2006.1.1.해날 / 물구나무서서 보냈던 49일 - 둘 옥영경 2006-01-03 1226
5104 5월 21일 흙날 흐리더니 개데요 옥영경 2005-05-27 1226
5103 2012. 2.15.물날. 맑음 옥영경 2012-02-24 1225
5102 2011.10.31.달날. 맑음 옥영경 2011-11-11 1225
5101 2011 여름 청소년계자 갈무리글 옥영경 2011-08-01 1225
5100 2009. 2. 9.달날. 맑음 / 정월대보름 옥영경 2009-02-24 1225
5099 2007.11.13.불날. 맑음 옥영경 2007-11-21 1225
5098 2007.10.19.쇠날. 비 지나다 옥영경 2007-10-29 1225
5097 2006.12.28.나무날. 눈발 옥영경 2007-01-01 1225
5096 105 계자 닷새째, 8월 5일 쇠날 참 맑은 날 옥영경 2005-08-13 1225
5095 2012. 8. 4.흙날. 맑음 / 153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12-08-06 122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