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6.해날. 갬

조회 수 1110 추천 수 0 2011.10.21 00:35:28

 

 

기본호흡과 대배 백배, 그리고 선정호흡으로 아침 해건지기.

그간 주말은 각자 알아서 수행하기로 했지만

슬슬 인 게으름은 잠으로 그 시간을 채우게 하곤 했지요.

헌데 이번 참에 하는 대배 백배는 날마다 이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하란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그렇게 삶에 닿았습니다.

하니 좋고, 좋으니 재미가 있고, 재미가 있으니 또 하게 되는 거지요,

죽자사자 하는 것도 아닌지라 마음도 수월하니 챙기기 쉽고.

무어라 해도 뭘 하나 재밌어야 계속할 수 있습디다.

장갑을 잊었더니, 마침 등산장갑이 보여 거꾸로 끼고 합니다,

좀 더워 반팔로 시작했다가 팔뚝이 슬려 긴팔로 갈아입어가며.

등줄기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모든 독소가 나가는 느낌입니다.

민감하지 않게 지나갔는데, 뾰루지 말입니다,

얼마 전 이마 몇 곳을 중심으로 얼굴 여기저기 우르르 일어났더랬습니다.

아,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몸 안에 나쁜 것들이 수행하며 빠져나오는 것일 수도 있었겠구나 싶데요.

 

류옥하다 선수는 오늘 상상아지트 앞 은행나무에 올라

은행을 털고 주웠답니다.

고래방 앞 은행도 주워

소사아저씨랑 고래방 뒤란 동쪽개울로 가 씻었다지요.

지난해 이맘쯤엔 sbs의 한 프로그램에서

류옥하다 그리 사는 양을 찍기도 했더랬습니다.

시간 참 성큼입니다.

돌아온 가을입니다.

 

다시 경복궁.

지난 주, 하루 서울나들이로 대신하는 몽당계자를 위해

답사를 다녀갔더랬습니다.

또 걷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그걸 시간 안에서 어떻게 배분할까,

동선도 가늠해보지요.

경회루 특별관람은 5일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합니다.

서둘렀는데도 아뿔싸, 그 사이 80명이 다 차 마감이었지요.

(신청이 가능한 날 아침 9시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들의 서울나들이를 위해서는 꼭 스무 명 신청을 해두리라 합니다!)

꼭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전각들을 돌고, 경회루 앞에서 기다려보았지요,

혹여 빠지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가겠노라 하고.

입장을 관장하는 이는 안 된다데요.

그 사이 숱한 사람들이

미리 신청해야 하는 절차를 몰랐다가 낭패를 보고 돌아서고 있었습니다.

묵묵히 꾸욱 기다려보았지요.

“열명 다 왔어요?”

최대 10명까지 한 사람이 신청할 수 있는데,

여덟만 온 패가 있었습니다.

“저도 붙여주셔요!”

아, 그렇게 들어갔더랍니다, 물꼬의 기적으로 해두죠.

누마루에서 서산으로 가는 볕 아래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기던 단종,

왕후를 그리던 중종과

중종을 그리며 인왕산 치마바위에 붉은 옷을 걸어두었다던 왕후를,

그리고 연산군의 흥청을 생각했습니다.

고궁박물관도 잠시 들어가 동궐도 앞에 오래 섰다가 나왔지요.

 

그런데, “꼭 왕비가 산책하듯 걸으시더군요.”

곁에 있던 낯모르는 이가 말을 붙였습니다.

벗인 줄 알고 깜짝 놀라 돌아보았지요,

노느작노느작 하는 걸음을 보고 그렇게 놀리던 이가 있었더랬습니다,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했던 내 사랑하는 이...

그 벗, 얼마 전 떠났습니다, 알지 못하는 곳으로,

도반이 되고자 했던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때로 그때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지나서 축복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하길.

헌데, 그는 왜 제 삶에 다녀갔던 걸까요.

배려라고 한 것이 상처를 남기는 경험을 그 관계에서 경험하기도 했더랬습니다.

결국 이해를 얻지 못한 채 떠나갔지요.

세상 일이 그렇습니다, 사람의 일이 그러합니다.

누가 누구를 안다 하겠는지요,

그리고 우리는 늘 ‘늦습니다’.

불자인 그는 자주 삼보에 같이 귀의하자고 했더랬습니다.

수행승들의 그 많은 이름자도 그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요새 해건지기로 하고 있는 수행, 그가 준 선물이었구나 싶지요.

불가에서 제자에게 도를 전해주던 걸 전의발이라던가요.

윤회를 끊고 이생에서 해탈을 얻고자 한 그였습니다.

하여 그는 다음 생으로 가지 않고 부처 곁으로 탈 없이 갔을까요?

가난한 통장을 헐고 부수어 

저승길 노잣돈을 내는 것으로 산자의 인사를 하는 거 말고는

그가 가는 길을 닦는 일에 달래 할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보내는 일은 가을 아니어도 처창(悽愴)하나

우리의 슬픔은 우리로부터 사라진 것들을 보기 때문이라 더욱 처처하지요.

하지만, 쓸쓸함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지만,

그가 살펴준 것들과 나눴던 격려들이 기쁘고 고맙습니다.

아, 그렇더라도, 역시, 남겨지는 일은 잔인합니다.

가끔은 마음이 몰강스런 사람이었더라면 싶지요, 맘 이토록 아리지 않게.

이 너머 생에선 손 꼭 붙잡고 거닐 수 있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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