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서니 아침달이 걸렸습니다.

해건지기; 기본호흡, 대배 백배, 선정호흡.

 

오후의 라디오에서 <조주어록>에 있는 <끽다거(喫茶去)>(차 한잔 하시라?)가 나왔습니다.

조주선사께서 새로 온 두 납자에게 물었지요.

“그대는 여기 와 본 적이 있는가?”

한 납자가 대답했습니다.

“없습니다.”

“그럼, 차나 한잔 마시게.”

곁의 납자가 대답합니다.

“저는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럼 자네도 차 한잔 하시게.”

원주가 물었습니다.

와 보지 않았다는 스님도 차 한잔 하라 하고

왔다는 이에게도 역시 차나 한잔 하라 하니 무슨 연유냐는 물음이었겠지요.

조주선사가 소리쳤습니다.

“원주야!”

“예!”

“(자네도)차 한잔 드시게!”

그래요, 우리 차나 한잔 들지요...

 

초등 통합학급 지원수업.

아이들과 어제 따온 감을 깎아 매달았습니다.

소근육을 쓰지 못하는 아이도

하나를 쥐어주고 깎게 하니 좋은 운동이 됩니다.

작년에 플라스틱으로 감을 매다는 것들 다 있었다는데,

대부분 다 없어졌다고 교무실에서 올해는 끈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여 마침 물꼬에서 가는 끈을 챙겨갔더랬지요.

감 매다는 적절한 끈이 통합학급에 있다 소문이 나서

여러 학급에서부터 교무실에서조차 얻으러 왔더랍니다.

“이 학급이 젤 많아!”

학교아저씨가 매단 감을 들여다보며 한 마디 하십니다.

운동장에서 교사를 올려다보니

정말 우리 학급 감이 젤로 많이 걸렸더랍니다.

아이들이 아주 신나했지요.

다른 이들보다 뭘 많이 했다는 것에 대한 기쁨,

가끔은 잠시 생각해봐야할 문제입니다요.

 

그런데, 학교 뒤쪽으로 드나들어 보지 못했던 광경,

세상에! 그 많던 운동장의 나무들이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어찌 이리 휑해졌단 말인가요?

“저거!”

인조잔디를 까느라 다 패냈다 합니다.

학교의 역사만큼 서 있었을 나무들이 그리 잘려나갔거나 패였습니다.

무엇이 최선인지야 충분히 생각해들 보았겠지만,

그 나무들을 다 베 낼 만큼 가치 있었던 게 맞는 건지...

 

오후, 아이들 데리고 공원에 나갔습니다.

아직 어린 느티나무 어찌나 불타던지요.

김영랑의 ‘오메, 단풍들겄네!’가 절로 읊조려지지요.

서로 서로 붉은 빛을 반사해 더욱 붉었습니다.

홍시도 따먹고,

아이들과 시소도 타고...

작년엔 그토록 널려있던 도토리가 올해는 하나도 뵈지 않습니다.

어쩜 그리 하나도 뵈지 않을까요.

도토리가 그러하니 올해 곡식은 풍년이겠지요.

그렇게 해갈이를 하고

여기서 비면 저기서 채우며 자연이 굴러갑니다.

 

방과후강사샘이 간식으로 핏자를 배달시켰습니다.

한주 수고했다는 인사이기도 하셨네요.

물꼬 살림을 헤아려 두 샘들이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하셨습니다.

즐거운 한주였습니다.

또 이럴 기회가 있지 싶어요,

물꼬 사정이 어쩌려나 그때 가봐야 알 것이나.

이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이렇게 함께 할 기회가 되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요.

모다 건강하길.

학급 담임샘과도 여러 해 좋은 연을 짓고 있습니다.

젊은 샘이나 자기관리며 깔끔한 일처리며 배울 게 많았지요.

드나드는 몇 해 보조샘들과도 좋은 벗들이 되었습니다.

밝고 후덕한 사람들은 상대에게도 여유를 주지요.

고맙습니다.

 

대해리로 돌아와 감을 썰어 넙니다.

감을 따고 곶감을 만드는 과정에서 깨진 감을 다 버리겠단 걸 들고 왔습니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얇게 썰어 널면

금새 먹을 수 있는 곶감이 되지요.

올해는 대해리가 감 흉년인데,

이리 또 감 구경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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