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28.쇠날. 맑다 흐려가는 저녁

조회 수 1475 추천 수 0 2011.11.11 17:33:21

 

새들 어찌나 부산스러운 아침이던지

바람이 아직 나무에 붙은 마른 잎들을 스치는 소리인 줄 알았습니다.

 

여러 날 전 콩을 거두었습니다.

베 와 며칠 말렸고,

도리깨질을 하여 콩을 털어내고

덜 마른 것들은 깎지를 일일이 손으로 떼어낸 뒤

키질을 하였습니다.

아이가 제법합니다.

우리 메주 쑬 만치는 되겠습디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49210&PAGE_CD)

아름에 차는 아주 커다란 늙은 호박 셋도 들어왔습니다.

밭 너머에 있어 주인도 모르게 저들끼리 자란 것들을

마른 풀들 걷다 보았더라지요.

저들끼리 도란거리며 그리 잘도 컸더이다.

 

무를 뽑아와 무채, 무나물을 합니다.

올해는 마지막 볕이 도와 수확물들이 낫습니다.

작년 같은 흉작이면 사람들이 어찌 사나고들 하더니

살아라고 또 하늘이 그리 도왔나 봅니다.

물꼬 것들 역시 어느 때보다 질이 좋지요,

워낙 규모가 적어 수확량이야 대단치 않지만.

 

오후, 밖에서 망치소리입니다.

처져있던 아이가 힘을 내더니 소사아저씨랑 개집을 만든다 뚝딱거립니다.

간밤엔 그 아이의 날적이(일기)를 들여다보며

녀석도 안간힘을 쓰는 구나,

산골에서 저는 저대로 고민이 많구나

(넘들 다 가는 길을 가지 않을 때 겪는 고민을

이 나이 먹어도 또 하게 되는 것을

학교 가지 않는 열네 살 저는 얼마나 고민이려나요),

그래도 나아가는 구나, 그리 읽었더랍니다.

아이라고 제 생의 무게가 없을까요.

너무 소홀했다는 반성이 입디다.

 

여름 끝물에 빨아 널어두고도 신발들을 들이지 못한 시간 오래,

산오름에서 사람들이 물꼬로부터 빌려 쓴 신발들입니다.

던져놓고 미처 챙기지 못하고 떠난 신발도 더러 있겠지요.

비로소 들여 끈을 매고 깔창을 깔고

신문 잘 구겨 넣어 형태를 잡아 상자에 넣습니다.

귀하게 또 쓰이리라 하지요.

 

언제부터 찾아보리라던 천연농약자료가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들여왔던, 혹은 있는 줄 모르고 사기도 했던

공산품 먹거리 한 재료가 유통기한이 지난 채 시간 마냥 흐르고 있었는데,

오며가며 또 들은 풍월 있어 농약을 만들면 되겠다 했지요.

그거 하나 찾는 걸 이적지 미루다

오늘 그예 한 것이지요.

잊지 않으면 끝끝내 하는 날이 오기도 합디다.

소사아저씨께 잘 전하였더랍니다.

 

얼룩진 치마 하나 옷감 물을 들이자던 일을

대야에 담은 채 던져놓기 역시 여러 날,

마침 호두껍질 한켠에 좀 남아있던 참이어

오랜만에 물도 들였습니다.

 

“마침 잘 왔어. 좀 도와줘.”

교무실에 들린 아이를 불러 앉혀 사진도 정리하라 합니다.

9월 빈들모임과 10월 몽당계자.

성빈의 아버지 철기샘이 서울나들이를 찍어주셨습니다.

오는 가을이 예쁘게 담겼습니다.

아이가 정리하여 홈페이지에 올렸지요.

 

아, 물론 아침수행 했습니다.

다라니 가운데 가장 길다는 능엄경 독송 CD를 얼마 전 갖게 되었지요.

우리나라에선 그것을 지극하게 염송하고 불가사의한 경험을 더러들 하여

원을 위해서도 많이들 외는 경인 듯하더이다.

사실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어찌 되었건 다라니 가운데 하나이겠거니, 언제 들어봄직 하겠지 하며 받아서

책상 곁에 두었다 가끔 시선만 보냈더랬는데,

오늘 쥐고 나와

둘 가운데 하나인 느리게 독송한 능엄주를 대배를 하며 틀었지요.

기본호흡과 대배 백배, 그리고 선정호흡을 하며

듣기 좋았습니다.

가마솥방에서도 늘 흐르는 음악 대신 빠른 능엄주를 틀어보았네요.

“이게 뭐야?”

“이상해.”

그러다 어느 순간 누군가 그러데요.

“은근히 중독성이 있네.”

그런 생각 드는 겁니다,

뭔지 잘 몰라도 들으니 산 깊숙한 산사에서 거닐기라도 하는 기분.

좋은 기운이란 그리 퍼질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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