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 1.불날. 맑음

조회 수 1024 추천 수 0 2011.11.17 03:14:55

 

 

본관 신발장을 채우고 있던 신발들이며 실내화란 실내화는 다 꺼내

커다란 들통에 세제를 풀어 담근 뒤

애벌세탁을 합니다.

앞치마도 그리고 행주도 삶고 빨지요.

사람들이 훑고 간 자리들을 정리하며

지나간 계절과 그 속의 숨소리를 느껴봅니다.

사는 곳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잘 헤쳐들 나가고 있을 터이지요.

그러다 힘에 부치거나 그립기라도 할라치면 또 모여들 겝니다.

다음 만남을 기다리는 맘이 기쁨입니다.

 

“엄마, 엄마, 꿈에 신이 나타나서...”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아이를 바라봅니다.

자주 꿈 얘기를 진지하게 하는 그이지요.

“우리 엄마가 너무 예쁘다고...”

그렇게 눙치는 아이로 아침부터 유쾌합니다.

이제는 능글거려 야단도 칠 수 없는 나이이지요.

그리고 우리들은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만큼 그리 금새 늙을 테지요.

그리하여 어느 순간 그들이 어린 날 그랬듯

우리가 그들을 기대고 살아갈 겝니다.

아름다울 일입니다.

 

한해 두 차례 봄가을로 이레 단식을 합니다.

오늘 여는 날.

저마다 자기 규모에 맞게 하루도 하고 사흘도 하고 닷새도 하고,

굳이 예까지 오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터에서 해나가지요.

따순 가을볕이 한참이라 하니 고마운 하늘입니다,

단식할 땐 추위를 더 예민하게 느끼니.

기본호흡, 대배 백배, 선정호흡으로 해건지기.

 

근자에 정신없이 채워 넣고 살다가,

(특히 수제비 칼국수 쫄면 국수 같은 면 종류들 앞에서는

도대체 끝 간 데 없이 먹겠듯 했고,

가벼웠던 아침밥도 무겁게 먹던 요새였더랬지요.)

오늘 하루 곡기를 넣지 않으니 몸이 가뿐해서 기분 좋은,

참으로 오랜만의 가벼움이었습니다.

여러 날의 단식이 아니어도 달에 하루는 그리 비우자 합니다,

식구들 모다.

저녁, 식구들과 좋은 동영상 하나 나눕니다.

절망에서 일어선 한 영혼의 사투와,

걸음에 관한 연구였지요.

 

이번에는 마그밀로 관장을 돕는 대신 소금물로 해봅니다.

왜냐면 세상의 모든 약은 밥 먹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거니까,

마그밀도 제산제가 들었으니까.

하지 않았던 방식이라 조금은 조심스러운데,

먹을 것으로 들어오는 독기를 끊고 있으니

문제가 생겨도 그리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으리라 하지요.

단식을 보조하는 합장합척운동 등배운동 모관운동 붕어운동,

그리고 풍욕을 합니다.

뒤통수냉각법은 두통이 올 때만 하려지요.

 

아이도 함께 사흘 단식을 합니다.

지난 해 가을 단식에서 사흘을 해봤던 아이,

해봤다고 수월해보입니다.

살을 좀 빼고 싶다는 불순한 의도가 보이긴 하나

권한 것도 아니고 저가 해본다 하니 하라 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단식 끝난 뒤 먹을 것을 읊고 있습니다.

“엄마 보식 때 된장죽 듬뿍 해서 헤헤...”

 

하루를 선정호흡으로 마무리.

먹는 것, 호흡하는 것,

사는 데 그보다 중한 게 어딨을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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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일 불날 추움 / <단식 1일째>

 

  오늘부터 사흘 단식이다. 지난해 처음 단식을 할 때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배가 고파서 울기도 하고, 힘들어서 말도 못하고, 이걸로 글도 써서 원고료로 받고, 사람들이 단식 끝나고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돈도 주었다. 올해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오늘의 변화! 오늘은 장의 찌꺼기들을 빼기 위해 소금물을 1L가까이 마셨다. 그랬더니 하루 종일 배가 뒤틀렸다. 저녁에는 급기야 설사를 오줌같이 눴다. 거기다가 바지에 설사를 싸 곤욕을 겪었다.

  오늘의 느낌! 오늘은 밖에 나가는 날이다. 밖에 나가니 다들 무언가를 먹고 있다. 참 부럽다. 너무 배가 고프고 먹는 생각만 난다. 단식 끝나면 피자, 스파게티, 된장죽, 돈까스, 빵, 아이스크림, 꼬치, 핫바 등 다 먹고 싶다.

  너무 너무 춥고 힘들고 배고프다.

  빨리 자는 게 약이다.

 

(*표: 단식 감식표)

 

(열네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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