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 3.나무날. 흐림

조회 수 1103 추천 수 0 2011.11.17 03:18:58

 

 

은행을 줍습니다.

이 가을을 줍습니다.

단식 사흘째,

단식을 처음 시작하려는 한 기관장님을 보자 청해왔습니다.

다른 때라면 더 좋겠으나 워낙 간곡하여 뵙기로 합니다.

물꼬에 와서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공무원이 그러기 쉽잖지요.

물꼬의 단식 안내 문건을 전합니다.

먼저 하루라도 해보십사했지요.

주의사항을 잘 일러줍니다.

 

지역의 한 도서관에서 수확한 해바라기가 옵니다.

젤 실한 걸로 주셨다 싶을 만치 굵습니다.

늘 좋은 책들을 넉넉히 읽을 수 있는 것이며

아이를 믿고 맡겨둘 수 있는 것이며

여러모로 물꼬가 챙겨 드려야는 것을

늘 그리 관심 가져주시고 아껴주십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나가도록 하는 힘들이

참 별것 아닙니다.

그저 따스한 눈빛 한번으로도 다음 걸음을 걷게 하는 법이지요.

우리 아이들에게, 아니 살아가며 만나는 그 누구에게든

그리해야겠습니다.

 

느린 능엄주를 틀어놓고 대배 백배와 선정호흡,

오늘은 해건지기가 힘이 좀 듭디다.

간간이 단식하던 때를 빼고라도 해마다 내리 한지가 10여 년,

늘 수월하게 해온 단식입니다.

그런데, 종일 속이 미식거리더니 결국 토하고

거의 초죽음이 된 사흘째랍니다.

흉추 5번과 요추 1,2,3번을 아이더러 두들기게 합니다.

단식을 하면 더러 일어나는 현상 하나인데,

다만 제게 일어났던 적 없어 순간 좀 당황스러웠지요.

처음으로 맞이한 역류현상은 관장제로 마신 소금물을 다 끄집어냈습니다.

단식을 하면 그간 보낸 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지요.

지난 두 달여 무리한 일정과 막 먹었던 것들이 되짚어집디다.

특히 지난달은, 주말엔 서울로 주중엔 경주로,

게다 주에 다른 이틀은 인근 대도시까지 가서 하는 일도 있었고...

‘이건 열정이 아니라 혹사다!’ 싶었지요.

이 역류현상은,

어쩌면 요즘의 수행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안에 있는 모든 걸 뒤집어보고 있는 건지도...

내 생애에 이 시간들은 어떤 의미일 것인가,

정신을 놓지 않고 읽으려 합니다.

몸의 불편한 부위들도 통증으로 올라옵니다.

눈 부릅뜨고 현상들을 봅니다.

 

단식 사흘째를 마음 먹은 아이는 결국 거뜬히 해냈습니다.

오늘은 체육관에서 제법 격렬하게 움직이기 까지 했지요.

그래서인지 더 팔팔해져서

축 늘어진 어미를 외려 챙겨주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기대는 날들이 더욱 잦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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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3일 나무날 추움 / <단식 3일째>

 

  오늘은 조금 버틸만하다. 아니 기분도 많이 나아졌고 배고픔과 힘듦도 많이 사라졌다. 많이 걷거나 뛰거나 해도 힘들지가 않다. 힘이 온 몸에 있어서 몸이 컨트롤이 된다.

엄마가 내가 살이 빠져서 멋지다고 한다. 기분이 좋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대로 채식 감식을 해서 살을 더 빼야겠다. 몸도 한결 가벼워졌고 거울에 나를 봐도 V라인이 있어 기쁘다.

  오늘은 체육관에서는 완전 지옥훈련을 했다. 막 5분씩 뛰고, 발파기, 술기, 팔벌려 뜀뛰기도 수십 번씩 했다. 처음으로 턱까지 주르르 흘렀다.

  약간 피곤해도 기분은 좋다. 정신도 맑아진 것 같다.

  엄마는 완전 죽을 것 같다. 아무래도 오늘은 운동을 안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오히려 합기도를 해서 힘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고비를 넘겼다. 보식만 남았다.

 

  (열네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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