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환경단체에서 원고를 청탁받았던 아이는

글을 다 쓴 뒤 간밤 늦도록 몇 차례나 퇴고를 하고 이불 속으로 갔습니다.

읍내를 나가는 날이라 아이를 깨웠지요.

잠결에 아이가 외치며 세수를 하러 가는 소리,

“내가 힘들어서 엄말 힘들게 하면 안돼!”

잠을 이기려고 애쓰며 아이가 씻으러 갑니다.

아, 저 아이도 저리 힘을 내며 사는 구나,

맘 시큰해졌지요.

 

엊저녁엔 차에 두고 온 책이 꼭 필요했던 참인데,

다 씻고 속옷만 입고 글을 쓰던 아이,

귀찮기도 하려만 다시 옷 껴입고 차에 가서 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참 신통합니다.

세상의 많은 가치들로 보면 한없이 모자라는 아이이나

어미 보기엔 그것으로 충분하지요.

‘어미 보기에!’, 그렇습니다.

우리 아이들, 어미 보기에 다 훌륭하다마다요.

저부터 아이 닦달하기 그만하기!

 

신정원님의 문자입니다,

13일 빈들모임 답사 간다는 소식을 경이로부터 들었다고,

마침 집이랑 머잖은 곳이니 동행할 수 있다는,

그리고 가려는 곳 요새 공사 한참이던데

상황을 계속 사진으로 전송할까 하는.

무어라 다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늘 주시는 감동들...

경복궁에서부터 세검정으로 길을 잡는데 부암동도 지나지요.

“그 어디께서 뵈어도 좋고,

사진 주시는 것도 좋고,

빈들 때는 미술관 하날 들러도 좋겠고,

마지막은 상명대 마당서 공을 차면 어떨까 하지요.

뵐 수 있었음 합니다, 답사 때고 빈들이고.”

아, 물꼬가 얼마나 귀한 마음들로 손발들로 굴러가는지요.

그리고 그것은 또 저를 어찌 살리는지요...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거다마다요.

 

단식을 푼 날이라, 그것도 어렵게 보낸 이레 뒤끝이라

잠시 직장을 쉬고 있는 벗이 운전을 맡아 대전으로 오갔습니다.

죽도 챙겨다 주었고,

과일즙을 해왔지요.

이런 호사라니...

사람이 사람으로 삽니다려.

 

저녁 밥상에 손님.

안팎의 수도 동파로 고생한 지난 겨울이었습니다.

공사했던 아저씨를 불러다 이곳저곳 겨울날 준비를 한 오후였지요.

소사아저씨와 아이가 동행하며 단도리를 했습니다.

물론 우리 손으로 해얄 일도 쌓였지만

우선 큰 것은 그리 손 먼저 봐두었답니다.

맘이 좀 놓입니다.

 

대안학교를 지원하는 한 새끼일꾼의 활동증빙서와 추천서를 씁니다,

옴 마음으로.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닌 것을,

또한 물꼬가 당연히 해야하는 일인 것을,

외려 제가 일 많을까 어찌나 살피던지요.

해야 할 일이다마다요,

더구나 좋은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다마다요.

물꼬에 보탠 힘에 그리 뭔가 우리도 할 일 있어 고맙고,

한 아이의 성장에 함께 해서 고맙고 그랬지요.

 

불쑥 찾아온 부모가 있었습니다.

큰 아이를 대안학교 보냈고

이제 늦동이를 키우고 있는데,

참 어려운 아이라 맡기고 싶다 했습니다.

아이를 맡긴다...

이제 그런 거 안 합니다.

“예전에는 그러셨는데...”

그랬던 때가 있었지요,

그러나, 이젠 안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

물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

아니면 안 하는 거다,

그런 말씀드렸지요.

물꼬는 아이들의 학교로서의 짧은 학교들,

어른들의 학교로서의 수행,

그리고 쉼의 역할 정도로 현재는 집중하고 있답니다.

 

이레 단식을 마치고 회복식 이레 가운데 첫날.

대배를 할 기운은 내지 못하나 선정호흡으로 아침 수행.

밥 한 그릇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면

세상이치를 다 깨달은 것과 같다던가요.

그 밥 한 그릇 알려고 하는 단식이었고,

그리고 삶 속에 있는 죽음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역시 가장 큰 수혜는 성찰일 테지요,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가, 어떻게 먹고 있는가,

어떻게 생활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가 하는.

날씨가 흐리면 몸도 찌푸덩하고 무겁습니다.

비물질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음식, 그건 얼마나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영향일지요.

곡기를 끊고 깊이 침잠하며

그렇게 또 이 가을의 이레 단식을 지났답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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