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5.쇠날. 날은 흐리나 푹한

조회 수 1157 추천 수 0 2011.12.05 02:28:41

 

 

 

날이 푹해

매단 곶감은 마르지 않고 곰팡이가 슬거나 홍시가 되어 흘러내리는데,

추위가 거의 공포에 가까운 저로서는

다사로우니 살기가 한결 낫습니다.

일찍 마늘을 심은 댓마 한 할머니 댁은

봄이면 올라야할 싹이 우르르 올랐는데,

그게 겨울 나며 죽고 나면 무사히 다음 싹이 오를까 아니 오를까로

오가는 마을 사람들이 입이 바쁘고 있지요.

 

여름에 잠시 쓰고 비워둔 간장집을 다 털어내고 정리합니다.

주로 달골 햇발동에 올라 자오던 터라

다시 아래로 내릴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계절에 따른 집중(겨울)과 분산(여름)이기도 한 것입니다.

계자 때문이기도 하고 긴 겨울을 날 준비이기도 한 게지요.

눈에 막혀 달골로 오르는 자드락길은 오래 사람 지나기 힘이 들 겝니다.

계자 닥쳐서도 다시 불 넣고 먼지를 털어야겠지만

이렇게 전체적으로 한번 뒤집어 정리하고 나면

계자 앞두고 종종거리는 발이 좀 낫지요.

 

오늘은 멋도 모르는 아줌마와,

든든하다고는 하나 아직 어린 7학년 아이와,

지적수준이 좀 떨어진다고 의심이 가는 중노인 하나가

학교 뒤란 보이러실에서 머리 맞대고 여러 시간을 있었습니다.

서로 기대는 마음이 고맙고,

산골에서 이러저러 마음을 추스르며 살아가는 일이 고맙고

어찌 어찌 문제를 놓고 해결을 해보자고 답도 없을 것 같은 일에

그래도 머리 맞대고 궁리를 해보는 거지요.

허술하게 한 흙집 공사는

해마다 겨울 우리를 불안하게 해왔습니다.

올해 또 벽이 터지는, 같은 문제를 겪으려나,

어떻게 하면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으려나,

물을 계속 데우면야 간단히 해결될 일이나

그렇다고 그 큰 온수통의 물을 데우는 전력을 어찌할 거나,

그러다 수도설비 아저씨의 조언을 떠올리며

수도관에 열선을 깔고 이불을 돌려 감쌌지요.

그러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또 해결하며 나아갈 테지요.

“저 훤한 지붕도 메우자.”

그것도 김장 해두고 하려구요.

 

글쎄, 오늘요, 대배 백배도 못하고,

아침엔 선정호흡도 하질 못했습니다.

서울로 경주로 차를 끌고 다녔더니 그예 널부러진 아침이었지요.

그래야 오늘 밤의 서울행이 가능하겠기도 하고.

서울에 실어가야 할 짐도 좀 있는데다,

학교 일을 종일 챙기고 가면 하루를 버는 것이기도 하니

오늘도 지난주처럼 차를 끌고 갈 것이지요.

 

서울행,

오는 길에 아이가 한 뉴스를 전하는데,

운전하던 손이 벌벌 떨리고 눈물이 흘러

결국 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마 옮기기 험합니다만 고교생이 어미를 어찌 했다는 얘기였는데,

그 아이도 어미도 아비도 가련하여 어쩔 줄을 모르겠더이다.

어이하여 세상이 사람들을 그리 밀고 가나 싶다가

업에 대해 생각게 되더군요.

자정에 도착해 김치를 담아두고

그네를 위한 자비명상을 했습니다.

나 좋자고 하고 나아가 그네도 좋으라 합니다.

제 식으로 한 죽은 어미의 천도제쯤 되려나요.

자비명상을 알게 되어 어찌나 고맙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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