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7.해날 / 11월 빈들모임

조회 수 1205 추천 수 0 2011.12.05 02:32:43

 

 

 

‘예비 안내를 드렸던 대로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2박3일로 잡혀있던 빈들모임을

11월 27일 하루 서울나들이로 대신합니다.

지난 달 있었던 몽당계자 뒤 그 밤에 모였던 샘들의 의견이 그러하였더랍니다.

서울에선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겠지 했지요.

 

옛적 놀이터라면

동대문 밖은 뚝섬과 광나루, 서대문 밖은 마포, 자하문 밖은 세검정이었다 했습니다.

피 묻은 칼을 씻던 그 세검정 물 위로 능금 꽃잎 떨어지고

종이죽을 쑤던 가마솥과 마전을 하러 나온 여인들,

그리고 물장구치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골짝,

부암동 뒤란 오래된 골목길과 백사실을 오르며

조선 역사의 한 모퉁이와 구한말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이 땅의 역사를 읽고,

탕카를 통해 티벳 독립운동 52년의 역사와 티벳 문화를 훑으며

오늘 우리의 좌표를 보는 자리로 삼아볼까 한다지요.

깊어가는 가을 속을 걸어만 다녀도 좋겠다마다요.’

  

그렇게 연 11월 빈들모임이었습니다, 오늘.

 

지하철 3호선 경복궁 5번 출구,

고궁박물관 앞뜰에서 10시에 만났습니다.

날이 좀 궂습니다.

충주에서 조영준님 김민주님 유나 정민 민식과 걸음을 했고,

인천에서 김미향님, 재우는 해외여행 중이어 홀로 왔으며,

일산에서 새끼일꾼 동휘가 엄마 조혜숙님이랑 동생 준하랑,

그리고 경이, 희중샘 서현샘 철욱샘 유진샘 유정샘이 왔습니다.

다정샘은 오전 일정에만 같이 걸을 것이고,

아리샘은 거의 막바지 일정에 합류할 것입니다.

아, 소정샘(주영샘)은 갑자기 오지 못할 일 생겼구요.

“엄마는 감기 기운 땜에 좀 쉬셨다가 점심 먹는 곳으로 바로 오신다고...”

보름 전 답사에 함께 하고 이번 빈들의 실질적 안내자인 신정원님은

그리 움직이신다는 전갈입니다.

모다 스물.

“날이 어쩜 이리 푹해요?”

흐리나 날이 다사로워 걷기에 좋은 날입니다.

고맙습니다.

물꼬의 ‘날씨의 기적’이 오늘도 그리 함께 할란갑다 하고

우리 모두 마음 환해졌더랍니다.

우리는 또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기에 주저치 않았지요.

 

고궁박물관 곁 커다란 은행나무 앞에서

조선 역사와 궁궐에 대해 개략적으로 훑고

경복궁 담을 끼고 효자로를 걸었지요.

청와대 사랑채에 들러 잠시 다리쉼을 하고

청운동과 청와대 사잇길 창의문로를 걷습니다.

걷기 참 좋은 길입니다.

윤동주 문학관에 이르지요.

왜 그곳에 그의 시비가 있고 시인의 언덕이라 불리는지 들려주고

식민지 조국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결 곱고 강직했던 젊음을 찬양했습니다.

윤동주의 ‘서시’부터

일제 강점기 3대 저항 시인의 대표시를 읊기도 하였지요.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별헤는 밤’ 가운데서)

“...사람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눈물에 터집니다...”(‘님의 침묵’ 가운데서)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이육사의 ‘청포도’ 가운데서)

그때 비 내렸고, 서둘러 창의문으로 올랐지요.

거기 우리 걸음이 이를 때 내려준 비에 감사해하고

간식들을 먹었습니다.

화답처럼 김미향님이 도종환의 시 한 편을 낭송해주기도 하였더이다.

가라앉은 하늘 성문 처마 아래서 누린 운치가,

그리고 절경이 우리를 풍요케 했지요.

 

창의문.

“서울에는 4대문 4소문이 있는데,

남대문인 숭례문, 북대문인 숙청문, 동대문인 흥인문, 지금은 사라진 서대문인 돈의문...

그 사이 4소문이 있지요.

창의문은 그 가운데 가장 온전히 옛 모습으로 남은 대문입니다.”

앞으로 봄가을에 이런 나들이를 정기적으로 하면 좋겠다 하는데,

어느 계절엔 성곽 길을 따라 걸어도 좋으련 하였지요.

인조반정의 역사와 세검정,

그리고 병자호란의 치욕과 세검정에 얽힌 이야기도 나누고

부암동으로 내려섭니다.

환기미술관에 잠시 걸음 멈추고

환기의 그림들을 들여다보기도 하였네요.

아, 그리고 오졸조졸한 골목길...

 

점심,

자하문터널 바로 앞 ‘하늘’이었습니다, 집 이름이요. 함바집.

공사현장 인부들에게 밥을 대는 집인데,

오늘 물꼬를 위해 장소를 다 내준 밥상이었습니다.

신정원님이 이른 아침 기별해놓으셨지요.

비로소 모두 서로 소개들을 하였습니다.

아이들만 내내 보다 수년 만에 얼굴을 보게 된 부모님,

대학 때 자원봉사를 왔다 이제는 한 여고의 국어교사가 된 품앗이가 제자들을 보내와

고교를 지나고 대학생이 된 품앗이,

이제는 군대를 간 대학생 오빠가 초등 2년에 다녀가고

그 동생이 초등을 거쳐 중학생이 된 새끼일꾼,

15년 전 대학 1년 때 강의를 들은 제자에서

이제 제도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10년차가 넘어된 교사,

초등 계자 아이로 와서 중고 새끼일꾼이 되고 이제 대학을 들어가 품앗이가 된 일꾼,

물꼬에 아이들을 보내며 벗이 된 어머니들, ....

오랜 인연들이었지요.

 

석파정 별관을 잠시 둘러보고

세검정을 지나 백사실(백석동천)로 듭니다.

신정원님 아니었더라면 이 좋은 길들을 전부 생각지는 못했을 겝니다.

그래서 답사도 홀로 가는 게 아닙디다려.

“조선 한양에 ‘동천(洞天)’이 둘 있었다는데...”

북악산 자락의 백사실계곡이 있는 ‘백석동천’과

인왕산 자락 청계계곡이 있는 ‘청계동천’이 그것이었다 합니다.

동천이라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했지요.

한적한 시골 마을 같은, 서울에 말이지요,

골목 골목을 지나 큰 바위들로 이뤄진 백사실은

자동차 굉음에서 20분도 채 걷지 않은 곳에 보석처럼 있습니다,

시골 마을 냇가처럼.

오밀조밀 지붕 낮은 집들을 지난 길 끝에

산속(산속이기도 하군요) 암자 같은 현통사를 건너 숲으로 들었지요.

저는 여기서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걸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요새 가끔 그렇게 맨발로 길을 다니는데,

정작 같이 걷는 사람들까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지요.

춥기도 덜하고, 감각도 아주 세밀해진답니다.

백석동천이 백사실이 된 것은

이곳에 거처했던 백사 이항복의 호를 딴 게 아닐까 한다지요.

웬만큼 걸어올라 가면 인공으로 꾸며 놓은 연못 흔적도 있고

그 옆으로 기둥을 받쳤을 것 같은 주춧돌도 있는

백사의 별터가 있으니 말이지요.

마침 거기서 현통사 주지스님을 만났습니다.

인사 여쭈니 그곳 이야기를 전하십니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백사실계곡을 다룬 뒤 사람이 몰려

이 계곡 끝의 산모퉁이 찻집은 하루 700잔의 커피를 판다나 어쩐다나요.

태평양 화장품의 사위란 말씀도 덧붙이십니다, 하하.

차를 내주시겠다는 걸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연락처를 묻고, 주셨네요.

그렇게 연 하나 지었습니다.

 

숲길을 넘어 평창동으로 넘어갑니다.

길 양쪽에 난 너른 터에서 난 채소들이

바로 세검정 앞 슈퍼에서 백사실서 나온 것들이라고 적혀 팔리고 있는 것들입니다.

고개 내려서니 화정박물관.

지난 번 답사에서,

파드마 삼바바의 행적을 그린 8변화 탕카 앞에서 전율했던 곳입니다.

인도 날란다 대학에서 티벳으로 불교를 전하러 간 그는

고타마의 환생자로 일컬어지지요.

‘티벳 사자의 서’가 바로 그로부터 나왔습니다.

세계에서 티벳 탕카가 가장 많은 곳이 아마도 이 박물관일 겝니다.

재계의 한광호 박사가 탕카를 수집한 그 뜻은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훗날 티벳인들을 위해서도

이렇게 모아진 게 좋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데요.

이 지구 위기의 시대, 달라이 라마 존자와 티벳 문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지금 티벳의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들이 되었더랍니다,

탕카가 둘러친 박물관 바닥에 둘러앉아.

 

박물관을 들어설 적 내리기 시작한 비가

문을 나서자 멎어 있었습니다.

다시 걸어 서울예고 운동장.

축구를 하고 피구를 하였지요.

어두워오는 하늘,

운동장 가 관람석에 자리를 잡고

따뜻하고 진 음식들을 사와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갈무리 했습니다.

5시에 매듭을 지으려던 일정이 좀 밀렸네요.

어둠은 서서히 내리지 않고 어느 순간 그만 세상을 덮치지요.

겨우겨우 갈무리글에 마침표를 찍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습니다.

자잘하게 얘기들을 나누지 못한 아쉬움이 좀 컸던 듯.

그래서, 또, 봐야지요!

 

유진샘 유정샘은 몇 걸음 건너 있는 경이네에 들리고,

나머니 샘들은 마침 아리샘 그제야 이 가까이 왔다는 연락 있어

부암동의 유명한 커피집인 선배네 가게에서 보기로 합니다; 철욱샘 서현샘 희중샘.

선배가 젊은 친구들을 위해 밥과 곡주를 사고,

아리샘이 차를 샀지요.

즐겁고 유쾌한 자리였습니다.

우리나라 2세대 바리스타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20년을 넘게 한 분야에서 자리를 지킨 이에게선 장인의 냄새가 났고,

그 세월이 녹아든 형의 이야기들은

젊은 벗들에게 길눈밝힘 되었을 겝니다.

선배가 커피를 볶은 20년 넘어 되는 시간을

물꼬도 그리 흘렀더군요.

“안도현이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집을 냈을 때,

제목이 딱 완전히 옥샘이었지.

거기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아, 그랬구나, 이네들에게 그랬구나,.’

제자였고 후배였으며 동료였고 이제 벗인 이들 가운데 하나인 아리샘이

물꼬의 지난 시간들을 그리 되새김질 해주었더랍니다.

 

귀한 가을 끝자락 하루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와 헤어진 뒤

12월 인천에 갈 강의 때문에도 아리샘과 이야기 길어

1시가 넘어서야 돌아왔네요.

그제야 비 떨어집디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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